은상이샘을 당장 철거하라!!!
지난 5월 18일 오전 11시, 바로 이곳에서 북마산 3.15의거 기념비에 있는 화단과 은상이샘을 철거하라는 열린사회 희망연대의 기자회견이 있었다. 이 기자회견이 끝내자마자 곧 바로 창원시 관광문화국장이 나와 미리 준비한 보도 자료를 통해 ”은상이샘 철거 불가“의 입장을 발표했다. 시민단체의 이야기는 들어 볼 것도 없다는 태도다. 이는 너무나 경솔하고 오만한 행동이었다. 그 내용 또한 유치하기 그지없었고 100% 이은상을 추종하는 문인들(이하 이추문)이 오래전부터 주장해온 그대로였다.
지역에서 큰 논란거리가 되고 있는 이런 사안에 대해 시청 담당 공무원들이 취해야 할 자세는 매우 중립적이고 객관적이라야 한다. 그리고 상반된 두 입장과 논리를 공정하게 판단하기 위한 여러 가지 절차, 즉 의견청취, 토론, 조사, 고증 등의 과정을 거쳐 양측이 어느 정도는 승복할 수 있는 결과를 찾아내려고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창원시는 그 어떤 것도 하지 않았다. 허종길 국장은 오로지 이추문의 입장만 충실히 전달한 이추문의 대변인이었을 뿐이다. 우리는 허국장의 이런 작태를 강력히 규탄하면서 그가 불가 이유로 내세운 몇 가지 억지 주장을 반박하고자 한다.
1. 은상이샘은 이은상의 생가 우물터다. 이런 표현은 이은상의 집안에 샘이 있었다는 말이다. 잘 못된 말이다. 이 샘은 교방천 바로 옆 길가에(차량이 지나다니는 큰 길에서 교방천 옆쪽으로 계단 서너 개를 딛고 내려가는 낮은 위치에 있었음) 있었고 동네 사람들이 이용하는 공동우물이었다.
2. 은상이샘은 현위치에 1999년 5월에 먼저 옮겼고 3.15의거기념비는 6월에 옮겼다 이 말은 은상이샘이 현 장소를 선점했기 때문에 우선권이나 기득권이 있다는 뜻이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유치한 발상이다. 도로공사를 하기 전 둘 다 비슷한 장소에 있었고, 도로공사를 하면서 당연히 둘 다 현재의 장소 외는 달리 옮길 곳이 없었다. 그러나 위치 이동 일자의 선후가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은 은상이샘 모형 공사는 인부 한두 명이 반나절만 일해도 가능한 규모이지만 3.15의거비는 그에 비해 대공사였다. 장비를 가진 건설업체에서 옮겨 그대로 다시 원상태로 복원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고 더욱 그 공사를 무상으로, 또는 저렴하게 해줄 건설업체(사림건설)를 찾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따라서 5월이냐 6월이냐를 따진다는 것 자체가 바보 같은 짓이다. 당시 두 기념물을 똑 같이 6월이라 새겨놓은 것은 이전 복구의 선후가 아무 의미 없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졸렬한 논리를 은상이샘 철거 불가 이유로 버젓이 내세우는 공무원들의 한심스러운 수준을 보면서 앞으로 창원시를 어떻게 문화예술 특별시로 만들 것인지 심히 걱정스럽다.
진실은 관련 공무원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정 반대 일수도 있다. 실제 그런 이야기가 있었다. 두 기념물의 위치를 보라. 기념비가 바깥쪽이고 샘은 안쪽이다. 더 이상의 이야기는 우리도 구차스러워질 것 같아 그만둔다. 3.15의거기념사업회는 2004년 4월 23일 마산시에 ‘은상이샘을 철거하라’는 강력하면서도 상세한 의견서를 제출했다.
3. 은상이샘은 “오랜 시간 시민들과 함께해온 문화자산이며 지역민의 정서를 반영해 안고가야 할 역사다” 1970년대 들어와 마산시내 일원에 수도시설이 확충되어 동네 우물의 이용자가 급격히 줄어들기는 했지만 오랫동안 인근 주민들이 애용해 왔던 이 샘을 주민들은 아무도 은상이샘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우리지역에서는 샘을 새미라고 한다, 통새미, 논새미, 수통새미 같이 말이다. 도대체 은상이샘이라는 발음자체도 너무 어색하다. 만일 은새미라는 이름의 우물모형이 3.15기념비 옆에 있다면 우리가 철거를 말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은상이샘은 지역민의 정서를 반영한 것이 아니라 이추문의 이은상 신화 조작을 수용한 것으로 창원시가 이 조작물을 계속 안고 간다면 두고두고 말썽이 생길 골칫덩어리를 안고 가게 될 것이다.
4. “이은상의 과거행적에 대한 평가는 문학계 등의 정확한 고증을 통해 논의할 사안이다” 문학계는 문학적 차원에서 평가하면 된다. 우리에게 문학계의 평가는 관심 밖의 일이다. 그러나 이은상의 친독재 행적에 대한 사실은 누구도 조작할 수 없는 자료들이 남아있어 고증이 아니라 사실 확인만하면 되고, 민주성지의 도시에서 시민의 혈세로 이은상의 기념사업을 하는 것을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 하는 것은 시민들이 평가하고 행동할 할 일이다.
1999년부터 2005년까지 옛 마산에서 6년 동안 찬반 양측에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치열한 논쟁을 벌였고 결국 시민의 대의기구인 마산시의회에서 ‘이은상 문학관’을 ‘마산문학관’으로 바꾼 것으로 평가는 이미 끝난 것이다
오늘 이 자리를 빌어 그 동안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자료 하나를 공개하고자 한다. 1910년 조선총독부에서 발행한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이다. 여기에 놀라운 기록이 있다. 소위 은상이샘이라고 하는 샘 바로 옆에 흐르는 교방천(상남천, 상남내, 성남천, 서원천, 교방천 등 여러 이름으로 불려왔다)을 당시에는 운상천( 雲上川)이라 했고 사람들은 '운생이내'로 부른다고 기록해 놓았다. 마치 지도를 보는 것처럼 위치를 정확하게 표기해 놓았다. 비고란에 설성남교(設城南橋) 성산상남계(城山上南界)라고 되어 있는데 운생이내(운상천)라는 하천에 성남교라는 다리가 설치되어 있고 그 하천은 성산리와 상남리의 경계라는 뜻이다, 옛 북마산파출소와 북마산 가구거리 사이에 있는 다리 이름은 지금도 그대로 성남교이다. 즉 은상이 샘이라고 하는 샘의 본래 이름이 '운생이내' 옆에 있다고 해서 자연스럽게 '운생이새미'로 불렀을 것이라는 것은 쉽게 짐작이 된다. 이후 은새미로 부르게 된 것은 이와 관련이 있거나 아니면 샘의 또 다른 특성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히 말해두고 싶은 것은 위의 논쟁과는 별개로 소위 은상이샘이라고 하는 우물모형 철거를 주장하는 본질적 이유는 독재의 편에 서서 3.15의거를 폄하하고 불의와 독재에 항거한 마산시민을 모독한 이은상을 기리는 은생이샘과 3.15의거 기념비가 이렇게 한 공간에 공존하는 것을 우리는 절대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마치 이은상이 3.15의거를 강제 추행하는 것 같은 꼴을 더 이상 두고 볼 수는 없다. 나아가 민주성지라고 자부하는 도시에서 시민의 혈세로 독재자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에게 영혼을 판 이은상의 기념사업을 하는 것도 절대 반대다 이와 관련해 안상수 시장은 우리의 면담요청을 외면하지 말기 바란다.
은상이샘 당장 철거하라!!! 이추문의 대변인 허종길 국장은 반성하고 사죄하라!!!
2016년 5월 24일
은상이샘 철거를 위한 시민연대 (사단법인 부마민주항쟁기념사업회/ 사단법인 3.15의거열사김주열기념사업회/ 3.15정신계승시민단체연대회의/ 열린사회희망연/ 6월항쟁정신계승경남사업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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