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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들이 농약을 아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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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희망연대 댓글 0건 조회 964회 작성일 04-07-29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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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들이 농약을 아느냐
글쓴이:서정홍2004-07-29 10:30:00
너희들이 농약을 아느냐


서정홍(시인·한국가톨릭농민회 경남연합회 사무국장) /




1970년대 정농회(正農會) 초대회장을 지낸 오재길 선생님은 올해 여든 네살입니다. ‘정농회’란 말 그대로 바른 농사를 짓고 싶은 농부들의 모임입니다. 바른 농사란 농약과 화학비료 따위를 쓰지 않고, 사람과 자연을 살리면서 건강한 먹을거리를 짓는 농사지요. 그러나 우리나라는 수십 년 동안 수확량을 늘리기 위해 농약과 화학비료를 많이 쓰도록 가르쳤습니다. 농부고 노동자고 학자고 가리지 않고 나라에서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끌려가서 고문을 당하거나 감옥살이를 해야 하던 어두운 시절이었지요. 그 어두운 시절에 농약과 화학비료를 쓰지 않고 농사를 짓겠다고 정농회를 만들었으니, 어찌 가난과 고통이 따르지 않았겠습니까.

농사를 짓는 오재길 님을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 선생님이라고 부릅니다. 저는 선생님보다 스승님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사람을 사랑하고 자연을 지키고 싶은 마음이 이십 대 젊은이들보다 더 뜨거워서, 나이도 잊고 지난해 유기농업을 배우기 위해 비행기를 네 번이나 갈아타고 쿠바에 함께 다녀왔습니다. 농사일은 몇 번 죽었다가 다시 깨어나도 배울 게 많다고….

나이 여든넷이면 이제 편안하게 지내실 때지만, 뭍에서 삶을 정리하시고 이제는 멀리 제주도에 내려가서 정농회를 조직하고 젊은이들과 유기농업을 실천하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생명 병들게 하는 주범

제가 농약 이야기를 하려다가 왜 오재길 선생님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 쿠바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 잠을 깰 때마다 들려오기 때문입니다. “나도 70년대에는 나라에서 시키는 대로 농약을 뿌리면서 농사를 지었어요. 지금 생각하니 얼마나 무섭고 어리석은 짓이었는지 후회를 해요. 그때 내가 농약을 마구 뿌려서 지은 농산물을 먹은 사람을 만날 수만 있다면 보상이라도 해 드리고 싶어요.”

‘내가 농약을 마구 뿌려서 지은 농산물을 먹은 사람을 만날 수만 있다면 보상’을 해 주겠다는 농부를 저는 한번도 만난 적도 없고 그런 말조차 처음 들어보았기 때문에 한해가 지난 지금까지 생각이 나는지 모릅니다. 길을 지나가다가 이런 농부를 만나면 큰절이라도 하고 지나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농약, 무서운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농약을 뿌리면 하늘로 날아가기 때문에 괜찮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작물이 어릴 적에 치면 저절로 농약이 없어진다고 합니다. 정말 그럴까요? 몇 달 전에 하늘로 날아간 농약이 가면 어디로 가겠습니까. 몇 달 전에 땅으로 들어간 농약이 가면 또 어디로 가겠습니까? 비가 내리고 눈이 오면 결국 땅으로 떨어지고, 땅으로 떨어지면 다시 논밭을 병들게 하고, 개울과 지하수를 병들게 하고, 강과 바다를 병들게 하고, 자연에 기대고 살아가는 온갖 생명들과 사람들이 병들게 될 것인데….

이름도 제대로 알 수 없는 수 백가지 농약들이 얼마나 독한지 아는 농부들은 자기가 농약을 쳐서 지은 농산물은 먹지 않습니다. 농약을 친 농산물은 도시에 팔기 위해서 짓습니다. 자기가 먹고 자식들이 먹을 농산물에 농약을 마구 뿌리는 농부는 거의 없습니다. 왜 농약을 뿌리는지 궁금하지 않습니까? 왜냐고요?

벌레먹은 배추 맛있게 먹자

이야기를 늘어놓자면 속이 터져서 몇 밤을 지새워도 다 못할 것입니다만 첫째, 농업을 경제논리로만 바라보는 어리석고 잘못된 정부정책 탓이지요. 그래서 돈이 안 되고 힘만 드는 농업을 모두 포기하는 것이지요. 떠나지도 못하고 떠날 수도 없는 늙은 농부들만 남아서 농사를 지으려니 어찌 농약과 화학비료 없이 농사를 짓겠습니까. 청산가리보다 수 백 배나 더 독하다는 풀약(제초제)을 논밭에 한 번만 치면 풀이 뿌리째 말라 죽어버리는 줄 잘 아는데, 어찌 땡볕에 나가 김(잡초)을 매겠습니까. 둘째, 도시 사람들은 더구나 젊은 어머니들은 배추벌레 한 마리만 눈에 보여도 뒤로 나자빠진다고 하니 어찌 농약을 뿌리지 않겠습니까. 벌레 먹고 못나고 빛깔이 좋지 않은 과일과 채소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으니 농약과 화학비료 따위를 뿌려서 빛깔을 곱게 만들고, 크게 만들고, 곧게 만들고, 보기 좋게 만들어서 도시에 내다 파는 것입니다. 농약과 화학비료를 써서 농사를 짓든 말든 그나마 그 분들이 땅을 버리지 않고 아직도 농사를 짓고 있기 때문에 도시 사람들은 목숨을 이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아닙니다. 물까지 돈을 주고 사 먹어야 하는 ‘대한민국’ 땅에서는, 먹을거리가 온통 병이 들어서 아토피니 알레르기니 비만이니 온갖 병들이 어른들과 아이들을 괴롭히고 못 살게 구는 ‘대한민국’ 땅에서는 더 이상 농약과 화학비료 따위를 마구 써서 농사를 지어서는 안 됩니다.

옷이 소중합니까? 아니면 먹는 게 소중합니까? 하고 물으면 바보가 아니면 모두 먹는 게 소중하다고 하겠지요. 그렇다면 무엇을 먹고 마시겠습니까? 사람과 자연을 병들게 하는 농약과 화학비료 투성이인 농산물을 드시렵니까? 아니면 벌레 먹고 못나고 빛깔이 좋지 않더라도 우리나라 농부가 지은 건강한 농산물을 가려서 드시렵니까? 선택은 또 여러분들의 몫입니다.



* 경남도민일보는 언론개혁을 바라는 시민들이 힘을 모아 만든 신문입니다.
기사게재일자 : 2004/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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