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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누구 은퇴할 사람 없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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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희망연대 댓글 0건 조회 936회 작성일 04-06-22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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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누구 은퇴할 사람 없소
글쓴이:김소봉2004-06-22 09:47:00
거기 누구 은퇴할 사람 없소


김소봉(자유기고가) /




은퇴란 인간의 삶 가운데 가장 감동적인 흔적이며 마감이다.

과거 시절 올곧은 선비들이 후학과 후세에 남긴 발자취는 바른 처신의 벼슬아치로서의 명성도 있었겠지만 가장 우러러보이는 것은 물러날 때를 스스로 알아 미련 없이 향리로 낙향한 다음 백성들과 더불어 씨뿌리고 김매는 귀거래사의 아름다운 마감 때문이었다.

은퇴의 뜻은 스스로 물러나 은거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속적 지위에 집착하여 아등바등 하다가 타의에 의해 밀려나는 것은 숙청이겠지만 자신의 때가 지났음을 알고 가차없이 자리를 박차고 물러나는 것은 참으로 신선하고도 경쾌한 출격장부의 대도라고 볼 수 있다. 성자의 죽음을 열반이나 부활로 칭송하는 것처럼, 따스한 햇볕이 쪼이는데도 가을나무가 성큼 그 몸을 떨구어 뿌리로 돌아가는 것은 죽음이 아니라 혹독한 겨울을 이겨내고 다시 새로운 삶을 준비하는 참다운 지혜가 아닐까.

후진에게 길 터 주자

자연은 영고성쇠를 반복하므로 새로운 시작을 쉬지 않고 잉태하는 것이다. 생존의 법칙에서 영원한 승자는 없으며 그러므로 영원한 생을 누리는 자도 없다. 상고사에서 가장 오래 살았다는 ‘대춘(大椿)’이란 나무는 삼천 번의 봄과 삼천 번의 가을을 목격했지만 결국 죽고 말았고 ‘팽조’란 전설의 인물도 오백 년, 불로장수를 위해 해동으로까지 선약을 구하러 보냈던 진시황은 고작 백 년도 살지 못했다.

좀 코미디 같은 얘기지만 염라대왕까지 속여 삼천갑자를 산 동방삭의 나이가 삼천 년이라고 우기는 친구와 설전 아닌 설전을 벌이고 땅 칠판에다 빼고 더하기의 산수를 나열한 끝에 겨우 500년으로 이해시킨 적이 있었다. 일 년에 여섯 갑자가 들어 있으니 삼천 갑자를 여섯으로 나누면 500년인데도 거의 대다수 사람들이 동방삭의 수명을 삼천 년으로 안다는 데 깜짝 놀랐다. 그렇듯 염라 왕을 속일정도로 도술에 능통했다는 동방삭도 500년 이상을 살지는 못했다.

모든 사람들이 호시탐탐 노리는 세속의 영달이나 영화라는 것도 그렇다. 그 알량한 권좌를 독차지하고 세습시키기 위해 편법을 양산하고 정적을 죽이고 민초의 삶을 공포로 몰아넣은 자들 치고 천명이나 누린 자들이 있었던가. 그분들의 종말을 들여다보면 총 맞아 죽거나 민중혁명에 의해 축출되거나 아니면 군사쿠데타의 수괴라는 꼬리표를 달고 영어의 몸이 되어야 했다. 태양은 그 몸을 황혼으로 만들어 마감하므로 밤을 불러들여 삼라만상을 쉬게 만든다. 이것을 ‘혼구정토’라고 하는 것이다.

일본 역사상 최고의 덕장이자 수백 년 동안 막부정치를 구현한 도쿠가와 이에야스 역시 당대에 아들과 손자의 시대를 대비한 은퇴의 철학을 밀고 나갔기에 자신의 이상을 실현할 수 있었다. 그가 사람을 죽이지 않고 이기는 활인 검법을 터득하기 위해 검객 ‘야규우 무네노리’를 스승으로 삼아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제자의 예를 표했을 때 조야가 나서서 반대했지만 자신은 개인에게 무릎을 꺾은 게 아니라 사람을 죽이지 않고 이기는 활인검이라는 무도승법을 배우기 위해 무릎을 꿇은 것이라며 오히려 설득하고 나섰다. 그가 실현하고자 했던 정치철학 또한 ‘혼구정토’였다. 전쟁에는 칼을, 갑옷을 벗고 은퇴한 다음엔 농기구를 다룰 줄 알아야 최고의 무사라는 이에야스의 통치철학이자 은퇴철학이 덕천막부 300년의 성공적 시대를 연 것이다.

명예·물욕 지나치면 화 자초

어쩌면 합종연횡의 숫자논리를 내세워 국민의 대통령을 마음껏 조롱하고 사사건건 빗장걸이로 국가정책을 혼란에 빠뜨린 정당의 지도부들이 꼭 귀담아 들어야 할 고사는 이에야스의 정치철학이 아닌지 모르겠다. 힘은 상대를 무차별 제압할 때가 아니라 상생할 때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고. 그리고 또 하나, 시장 군수와 도백을 지내고 장군과 장관을 거치고 국회의원을 비롯한 그 좋은 자리를 할 만큼하고 평생 부족하지 않을 부를 축적한 다음에도 은퇴는커녕 국민적 여망이니, 지역민의 여망이니, 라는 허울 좋은 논리를 늘어놓으며 더 많은 권좌와 영화에 탐닉해 불나비처럼 설치는 우리 시대의 염치없는 정치인과 관료들이 은퇴라는 혼구정토에 깃든 무사철학의 의미를 새겨들었으면 좋겠다. 끝날 줄 모르는 그 야망 때문에 후진과 자식들의 세대는 토착할 땅이 없어 영양실조에 허우적대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아마 멋지게 망하지 않을까? 사회 지도층의 지칠 줄 모르는 명예욕과 물욕을 향한 무지한 날갯짓 때문에 대한민국은 ‘혼구 정토’가 아닌 ‘망할 정토’로 추락할 것이란 예견된 불안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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