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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악의 근원이 미국이라고? 아냐! ‘학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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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희망연대 댓글 0건 조회 961회 작성일 04-06-17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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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악의 근원이 미국이라고? 아냐! ‘학벌’이야
글쓴이:정문순2004-06-17 10:40:00
만악의 근원이 미국이라고? 아냐! ‘학벌’이야


정문순(문학평론가) /




[정문순 칼럼]학벌 없애기 혁명이 필요한 때

“우리 사회 만악의 근원은 미국이다.”

80년대 운동권 학생들이 입버릇처럼 하던 말 중의 하나다. 한 사회의 복잡한 사정을 가볍게 무시한 이런 말이 먹혀들던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은 물론 어림없다. 그러나 단순 무지하다는 욕을 들을지언정 이런 식의 논법을 여전히 써먹어야 하는 경우가 아직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다름 아닌 ‘학벌’이다. 그러므로 나는 이렇게 말하겠다. 한국 사회 만악의 뿌리는 학벌이라고.

이 악의 근원은 모든 한국인을 위 아래로 나누는 계급이요 신분이다. 인간 위에 인간을 쌓아올리는 이 탑의 구조는 또 얼마나 견고한가. 누군가의 미래가 궁금하거든 그 사람의 출신학교만 알면 점쳐보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다. 저 사람은 무슨 일을 해도 밥을 굶지는 않겠구나, 또는 저 사람은 아무리 똑똑해도 억울해할 일이 많겠구나 하는 추정이 가능하기에 말이다.

아래위로 나누는 계급

내 주변에 있는 30대 중반 무렵의 또래 여성들 중엔 ‘잘 나가는’직장이나 직위를 가지지 못한 채 나이 먹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이들이 많다. 자질에 문제가 있어서 빛을 못 본 게 아니다. ‘알아주는’ 대학을 나오지 않았다는 것은 경쟁력을 갉아먹는 치명적 요인이었다.

학벌이 인맥을 만들고 인맥이 사람을 키우는 사회에서 그들이 피라미드 아래에서 치고 올라올 가능성은 불투명하기만 하다.

서울의 유수한 대학을 나오지 않으면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는 나라에서 사전에도 없는 ‘지방대’라는 이름의 대학 출신은 그 지역 주민한테도 모멸을 당하기 일쑤다. 그러니 학생들은 떠나고 대학은 빈다. 밤이면 캠퍼스에 적막감만 감도는 중소도시의 대학은 심야에 유흥가를 방불케 하는 서울의 대학가 풍경과 너무도 대조적이다.

서울과 지방의 대학 서열화는 지방 내부에서도 우스꽝스러운 줄 세우기를 부추기고 있다. 지역에서라도 왕 노릇하고 싶은 지방의 몇몇 국립대학은 자신을 ‘지역의 서울대’로 대접해 달라고 당국에 요구한다. 독선과 배제만 활개칠 뿐 그 어디에도 공존은 보이지 않는다.

학벌에 미쳐 돌아가는 사회에서는 보수든 진보든 별 차이가 없다. 진보 운동 쪽에도 학력 차별이 있다는 건 알 만한 사람은 안다. 우리 지역에서 이름만 대면 아는 어느 진보 인사는 서울대 출신이 아닌 사람과는 교분을 쌓지 않는다. 교사 출신인 지금의 민주노총 위원장도 예외가 아니다. 그는 교육 운동을 하던 해 자신이 가르친 학생들의 명문대학 진학률이 다른 때보다 높게 나와서 보람을 느꼈다고 한다.

우리 모두가 정녕 학벌에 미쳤는가.

어떤 이들은 불행인지 다행인지 사회 민주화에 기여한 일류대 출신들의 존재가 학벌 폐해의 심각성을 가렸다는 지적도 한다. 박종철과 이한열이라는 이름은 우리에게 민주주의의 표상일 뿐 아니라 목숨을 다해 시대의 양심을 지킨 숭고한 명문대생의 이미지를 심어주었는지 모른다. 80년대 운동권의 ‘메이저 캠프’로 불린 쪽은 대개 서울의 이름난 대학들이었고 안기부의 용돈을 받고 움직인 비운동권 학생회는 학생 조직력이 낮은 비명문대에 간혹 등장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대학생들의 정치적 무관심이 만연된 오늘날은 명문대생이 도덕과 양심의 이름을 차지할 근거도 자취를 감추었다. 그들의 허상이 사라졌으니 학벌 없애기를 가로막는 걸림돌 하나는 치워진 셈이 아닌가.

입시제도 보완으론 안된다

새 국회 개원을 맞아 개혁에 대한 시민적 기대감이 드높은 때문인지 최근 학벌에 관한 논의도 부쩍 활발해지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서울대 폐교나 국·공립대 통폐합, 더 나아가 추첨 배정을 통한 대학 평준화 같은 혁신적인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공상적이라고· 비현실적이라고? 그러나 입시 제도를 보완하는 식으로는 학벌 체제에 균열은커녕 빗금도 그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학벌의 광기를 없앨 수만 있다면 상상력이 허용하는 한 어떤 발상도 논의되지 못할 것이 없다고 본다. 사람 위에 사람이 군림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혁명적인 학벌 철폐 논의에 나서라. 뿌리를 뒤엎는 근본적 전환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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