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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부처님 오신 날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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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희망연대 댓글 0건 조회 1,012회 작성일 04-05-03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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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부처님 오신 날이기를 바란다
글쓴이:조영숙2004-05-03 09:28:00
이런 부처님 오신 날이기를 바란다


조영숙(주부·43·창원시 대방동) /



불교의 5대 관음성지 가운데 북으로는 강원도 양양 낙산사의 홍련암, 남으로는 여수 돌산도의 향일암이 으뜸이라고들 말한다. 인간의 힘으로 건립되었다고 하기엔 의심이 갈 정도로 험준한 기암괴석사이에 자리한 암자이기에 도심 인근의 사찰과는 달리 불심을 돋우기에 충분하다.

연중 끊이지 않는 수많은 참배객과 관광객이 어울려 그런 곳일수록 가음정동 시장처럼 인산인해를 이루고 법당에는 지전이 수북이 쌓여있다. 3월 하순에 내가 가본 향일암은 겨울과 가을이 교차하는 자연의 앙상블까지 겹쳐 한 마디로 탄성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날씨가 좋은 날엔 멀리 대마도가 보인다는 남해바다가 초록의 데생처럼 발밑에 펼쳐 있고 관음굴로 오르는 길목에 핀 동백의 수줍은 자태는 짙게 립스틱을 바른 3월의 신부처럼 어이 그리도 가슴에 통증이 올 정도로 고와 보이던지.

그러나 내 다정불심은 법당에 들어 선 순간 무참하게 부서지고 말았다. 법당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법당보살로 보이는 초로의 보살이 참배도 하기 전부터 좋은 도량이니 소원성취가 빠르다며 기도금을 내라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도 그 곳은 인적이 끊긴 빈찰도 아니고 최고의 관광지사찰로 거액의 시주금과 불전금이 들어올 것 같은 부자 절로 보였는데도 법당에서의 구걸타령은 권선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추하게 보였던 것이다. 더욱 기가 막혔던 것은 그 보살이라는 분은 우리가 참배할 때도 의자에 터억 걸터앉아 감독관처럼 우리를 째려보다가 참배가 끝나기 바쁘게 다시 여러 가지 권선문을 들이밀며 기도비를 강요하는 게 아닌가.

내가 배운 불교의 상식으로는 복이란 마음을 닦는 선행에서 비롯된 것이지 시주금 많이 낸다고 복을 받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보다 못해 동행했던 분이 “당신 같은 사람들 때문에 불교가 망한다!”고 호통을 치자 부끄러운 듯 날쌔게 법당 밖으로 줄행랑을 치더니 도량 안을 한바퀴 돌고 나올 무렵에도 법당에는 종적을 내밀지 않았다.

이 지구상에 성인을 모신 전각 안에서 연중무휴(?)로 복을 파는 티켓장사는 불교 외에는 없을 것이다. 내가 불교신자라는 게 그 날처럼 부끄럽게 여긴 적이 없었다. 같이 동행한 분들 가운데 타교도가 있었기에 내 얼굴은 종일 수치심으로 향일암의 동백꽃처럼 붉어 보였다. 이제 채 한 달도 남지 않은 부처님 오신 날을 앞에 두고 불교신자로서 스님들과 불교종단에 간청하고 싶다. 꼭 그렇게 추하게 구걸해야 스님들이 생활하고 수행이 되는지 말이다. 좀 종교인다운, 수행자가 머문 도량다운 여법함을 보여줄 수는 없는 것인지 말이다.

초파일이면 지천으로 걸리는 그 많은 연등들. 스님들이 타고 다니시는 최고급 승용차들. 불전 함을 채운 중생들의 정성어린 시주금. 그것 외에 부처를 팔아 치부할 게 또 남아 있는지 여쭤보고 싶다. 가난한 여인이 밝힌 연등의 의미를 새기는 초파일. 이제는 부처님 오신 날을 잡스런 축제처럼 만들지 말고 불교의 수행자들이 진정한 보살의 대도를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경제가 어렵다는 요즈음, 초파일 하루만이라도 부처님의 출가정신을 음미하면서 서민들의 얼굴에 주름살이 펴졌으면 하는 게 내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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