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조 순조대왕 28년(무자년·1828년) 4월. 묘당이 주청한 중종과 인종, 명종, 3대에 걸쳐 조정에 봉사한 청백리이자 현신이며 목민지관(牧民之官)이었고, 하늘이 낳은 효자였던 전 예조판서 신재 주세붕(愼齋 周世鵬)선생께 대왕이 그의 유덕과 정신을 긴 미래로 유포케 하여 벼슬아치와 백성들의 귀감이 되게 하라는 전교와 아울러 문민공(文民公)이라는 시호(諡號)를 내렸다. 조선조를 통틀어 오리 이원익 선생과 더불어 가장 존경받는 청백리로 사초에 올랐으며 이 땅에 미국의 명문대학인 하버드보다 60년이나 앞서 최초의 공립학교인 소수서원(紹修書院)을 세워 공교육의 초석을 다진 선생의 고향은 우리가 사는 바로 지척의 함안 칠서면 무릉리. 선생이 주창했던 사상은 말과 행동이 완연하게 다른 허구에 찬 이론이 아니라 백성을 실질적으로 배부르게 하고 목을 추기게 하는 관중(管仲)의 법가사상(法家思想)이었었다.
존경받는 청백리
선생께서 관료로서 세상에 나가 평소에 배운 목민의 대도를 직접 펼친 시대는 조선조 11대 왕인 중종으로부터 13대인 명종 조에 이르기까지 3대의 혼란기. 혼군인 연산군을 몰아냈으나 자칭 혁명군의 우두머리였던 공신과 권신들의 세력싸움이 끊일 날 없었던 중종 조와, 문정왕후의 섭정과 음모로 8개월 정도의 가장 짧은 치세를 마감한 인종, 임꺽정을 비롯한 도둑들의 창궐로 민란이 끝이지 않았던 명종 조는 조선 500년 가운데 가장 백성들이 기아와 학정에 시달려야 했고 당쟁과 사화(士禍)로 조광조를 비롯한 수많은 선비와 학자들이 죽어나간 피의 잔혹사로 얼룩진 시대였다. 선생도 그 시대의 관료이니 잔혹한 시대의 흙탕물을 피할 수는 없었다. 중종 시대의 세도가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김안로를 선생 홀로 나서 탄핵하다 오히려 수세에 밀려 관직을 박탈당했다. 당시 김안로의 심복이었던 심언광이 조롱하는 서신을 보내기를 “세 번 삭탈 당해도 성내는 기색이 없으니 초나라 영윤에게 뒤지리오·” 하니 선생이 답하기를 “삼십 년을 글을 읽고도 남을 모함하는 간교한 술수로 일관하니 이것이 더 부끄럽지 않느뇨” 하자 김안로의 무리들이 선생에게 원한을 품었다.
중종 대왕 36년 (신축년·1541년) 5월. 영남 북부인 소백산 자락에 기근이 들어 민심이 흉흉하여 민란의 조짐이 보이자 임금이 선생을 불러 풍기군수에 명했다. 임지에 부임한 선생께서 먼저 세금을 경감하고 관곡을 풀어 구휼하고 부역을 덜었으며 무속인들의 혹세무민을 형벌로 다스린 다음 주자학(朱子學)을 더욱 더 가르치니 인륜의 도가 미풍양속으로 아름답게 자리 잡아 형틀과 감옥 안은 벌을 받는 백성이 끊겨 먼지가 끼고 거미줄이 쳐질 정도였다. 선생이 세수를 다하신 해는 명종 9년(갑인년·1554년) 칠월 초이튿날. 선생이 죽자 제방의 선비들이 다투어 통곡하고 문상했으며 퇴계(退溪)선생은 문집에 발문을 쓰길 자청했고 본향의 사림들은 동림서원(桐林書院)을 세웠으며 황해도의 백성과 선비들은 선생의 덕을 사모해 해주에 양근서원(楊根書院)을 세우고 인조 11년, 조정이 주청하여 선생의 영정을 소수서원에 모시게 하고 숙종 대왕은 덕연서원(德淵書院)의 사액현판(賜額懸板)을 내리고 예조판서를 추증했다. 또한 우의정 허목(許穆)이 신도비(神道碑)의 비문을 짓고 당대의 명필인 이명은(李命殷)은 비문을 써 선생의 뜻이 영세불망(永世不忘)토록 했으며 합천의 선비들은 도연서원(道淵書院)을 세워 선생의 위패 앞에 향을 피워 사모의 정을 기렸다. 선생의 업적을 낱낱이 기록하려면 몇 번의 봄과 가을을 맞고 낮과 밤을 얼마나 지새운 다음이라야 가능한 일이랴.
주세붕 선생 봉안 마땅
그러나 희대의 역적 전두환의 조상인 전제장군은 5공 추종세력들에 의해 경남도청 회의실에 떡하니 걸려있고 우리 고장 출신으로 만고에 빛나는 경세가이자 청백리였고 역사의 이정표이자 거울이었던 주세붕 선생의 대접은 빈약하니 슬픈 마음과 분을 달랠 길 없었으나 좁은 지면에 대략 기술하고 나니 그나마 분기가 풀리는 느낌이다. 경남도청의 관계자들은 하루속히 전제장군의 초상을 떼 내고 신재(愼齋) 선생의 초상을 봉안하길 바란다. 그리고 그대들이 진정으로 위정(爲政)과 목민(牧民)을 배우려거든 선생의 영정과 문집을 모신 함안의 무산서당을 찾을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