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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미, 우리가 넘어야할 숙명의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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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희망연대 댓글 0건 조회 340회 작성일 03-01-08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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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미, 우리가 넘어야할 숙명의 산
글쓴이:김영만2003-01-08 10:39:00
반미, 우리가 넘어야할 숙명의 산

[김영만 칼럼]나의 반미는 순수한 초심이다

“선배님,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어요·” 새해 첫날 아침, 경기도에 사는 후배에게서 오랜만에 전화가 왔다. “나, 요즘 반미하면서 지내고 있잖아” “하하하… 그러셨겠네요, 나도 요즘 반미하고 있어요.” 장난기 어린 내 대답에 장난기 어린 그의 대꾸였다.

아마, 광화문 촛불시위에 그도 먼발치에서나마 동참하는 심정으로 한두 번 구경을 했던 모양이다. 이런 저런 덕담과 안부를 나누다 전화를 끊었다. 이 후배는 평소에 불의한 일을 보면 못 참는 의기남아이지만 정치·사회적인 문제에 대해선 꽤나 보수적이었다. 이런 친구와 ‘반미’라는 단어를 스스럼없이 사용하게 된 세상이 기특해서 혼자 실없이 미소지으면서 얼마 전, ‘여중생범대위’ 공동대표인 한상열 목사가 우리지역의 촛불시위에 초청 받아 왔을 때의 일을 떠올렸다.

“요즘 반미하고 살잖아”

그 날, 새벽같이 마산에 도착한 한상열 목사는 하루 종일 마산시민들에게 인기스타였다. 그 시점이 한 목사가 ‘여중생범대위’ 대표단으로 방미투쟁을 하고 온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고, 길게 기른 수염과 한복에 검정고무신을 신은 그 분의 개성 있는 모습 때문에 길을 지나던 시민들이 단박에 알아보고 “수고하셨습니다” 하면서 반갑게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젊은이들보다는 나이가 지긋한 어른들이 훨씬 적극적이었다. 식당과 찻집에서 공짜 대접도 받았다. 밤 11시50분쯤 광주행 기차를 타기 위해 마산 역에 들어서는 순간 전혀 예상치 못한 사람들을 만났다. 역의 대합실로 들어서자마자 여기저기에 앉아있던 노숙자들이 다가와 “아이구! 목사님, 반갑습니다. 여길 어떻게…”하면서 인사를 하는 게 아닌가.

그 중, 스무 살도 채 안 돼 보이는 왜소한 체구의 앳된 노숙자가 상기된 얼굴로 달려와 어눌한 말씨로 “나… 나… 목사님 테레비에서 봤어요. 아아…… 목사님! 부채, 부채요”하면서 두 손을 앞으로 쑥 내밀었다. 백악관 앞에서 혈서로 ‘민족자주’라고 쓴 부채를 보자는 것이다. 바로 그 청년 노숙자 뒤에 나이가 지긋하고 풍채가 당당한 한 노신사가 불교식으로 두 손을 합장하여 공손히 인사하면서 “목사님 정말 고생이 많았습니다. 미국엔 날씨가 매우 추워 보이던데요, 우리민족의 자존심을 목사님이 세우고 오셨습니다. 오만한 미국은 언젠가는 망할 겁니다”하면서 조리 있게 말을 이어갔다. 자기 스스로 노숙자라고 소개하지 않았다면 도저히 노숙자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말씨와 태도가 의젓하고 지적이었다.

이미 미선이 효순이 사건의 본질을 정확히 꿰뚫고 있는 그들과 한 목사의 대화를 듣고 있노라니, 그 날 집회연설에서 “우리의 반미는 국수주의적인 닫힌 반미가 아니라 열린 반미입니다. 우리의 반미는 결국 미국 바로 세우기운동입니다”라고 거듭 강조하던 한 목사의 말이 생각났다. 국민들에게 반미의 상징적 인물이 되어버린 자신이 집회에 참가한 어린 학생들에게 부담으로 느껴지지 않을까 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만일 이들 앞이라면 그런 설명이 필요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 목사가 개찰구를 빠져나가는 순간 그들은 머리를 깊이 숙여 “목사님 제발 건강하게 오래 사셔야 합니다”하던 모습에 콧등이 찡해졌다.

신정을 쇠고 사무실에 출근하여 평소에 자주 들르는 인터넷 사이트 몇 군데에 들어갔다가 깜짝 놀랐다. 광화문 촛불시위가 두 개로 나누어진다는 이야기로 온통 난리가 났다. 짐작컨대 촛불시위가 운동권적 방식으로 주도되어 가는 것에 대해 정서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시민들도 있었던 모양이다. 그 정도라면 충분히 있을 법한 일이라 생각된다. 그러나 나는 네티즌들이 ‘반미와 반전평화’‘폭력과 비폭력’‘불순한 의도와 순수한 초심’이라는 이분법으로 논쟁을 이끌어 가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 이렇게 되면 범대위와 따로 집회를 하겠다는 쪽의 진의도 제대로 전달이 안 된다.

반전평화 운동은 곧 반미 운동이다. 지금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과 각종 분쟁의 주역이 바로 미국이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반미운동이 다 평화적이지는 않다. 지금 무력으로 반미투쟁을 하는 나라도 많다. 그들에게도 나름대로의 정당한 이유가 있다. 그러나 그 동안 우리의 촛불시위는 세계인들의 눈으로 볼 때, 지극히 평화적인 시위였다. 미 대사관을 에워싸고 촛불시위를 하자는 사람들 손에는 오직 촛불 하나만 들려있었을 뿐이었다.

초심 다잡아 촛불시위해야

더더욱 ‘부시의 공개 사과’와 ‘소파개정’ 등 한국민들의 요구가 단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여중생 압살의 주범인 주한미군에게 “물러가라!”고 분노를 터뜨리는 것 또한 순수한 감정의 발로일 따름이다. 우리는 그 동안 숭미에 등이 굽고 종미에 허리가 굽을 대로 굽은 국민들이다. 굽은 허리와 등을 펴려면 굽은 반대쪽으로 힘을 주어야 몸을 곧추세울 수 있다. 반미는 우리가 반드시 넘어야 할 숙명의 산이다. 이제 우리는 비장한 각오로 반미의 험준한 산을 넘지 않고서는 미선이 효순이 문제도 극미도 친미도 반전평화도, 그 무엇도 제대로 할 수 없다. 나의 반미는 순수한 초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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