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쟁이에게 고함" > 기사/사설/성명서/논평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기사/사설/성명서/논평

  1. Home >
  2. 옛집가기 >
  3. 기사/사설/성명서/논평

"거짓말쟁이에게 고함"

페이지 정보

작성자 희망연대 댓글 0건 조회 1,036회 작성일 01-10-17 09:32

본문

"거짓말쟁이에게 고함"
글쓴이:백남해2001-10-17 09:32:00
우리사회가 공식 언로를 보장받고 지금처럼 자유롭게 말하고 쓸 수 있게 된 시기는 그리 길지 않다. 흔히 말하듯 군사 독재 시절의 암울한 시기에 말한다는 것, 글쓴다는 것은 한 집안이 망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이런 사회 분위기는 논쟁이나 토론이라는 것을 불가능하게 했고, 자신의 주의 주장을 정권자가 용납하지 않는다면, 그냥 이불 덮어쓰고 고함 한번 지르고 말든지, 패가망신할 굳은 각오로 투쟁을 하든지 선택의 폭이 좁았다.

그러나 역사의 흐름은 사회를 발전시키고 진보시켰다. 이제 다양한 생각이 거침없이 표출되고, 자신의 주장을 분출하는 시기가 되었다. 논쟁이나 토론이(아직 미숙하기는 하지만) 활발해졌다. 선택이 다양해졌다. ‘이것’ 아니면 ‘저것’이 아닌 ‘이것일 수도’, ‘저것일 수도’ 아니면 또 다른 ‘제3’의 선택이 가능하게 되었다.

이런 변화는 개인간, 혹은 집단간의 갈등과 분쟁조차도 다양하게 만들었다. 각각의 이해관계는 서로 다를 수밖에 없고 그 이해관계의 충돌은 표면적으로 갈등, 혹은 분쟁을 일으킨다.

아직 우리 사회는 이런 갈등.분쟁을 해결해나가는데 미숙하다. 역사의 진보 시계가 이르기 때문이리라.

갈등과 분쟁에 대한 해결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 방법중의 하나는 ‘중재’다. 사람과 사람이든, 단체와 단체든 막다른 골목이다 싶을 때는 중재자를 찾게 마련이다. 분쟁과 갈등의 두 당사자 사이에서 완충역할을 하면서 서로의 최대 이익을 도모하고 상생(相生)을 꾀하는 이 중재 역할은 오늘 그 중요성이 날로 더해지면서 학문의 한 분야로까지 자리잡고 있다.

지난 7월 민주노총의 단병호 위원장이 명동성당에서 농성을 하다가 김승훈 신부의 중재로 경찰에 자진 출두하자 많은 언론들에서도 환영을 표시하였다.

특히 1970~80년대를 거치면서 ‘투쟁’으로만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노동계의 성숙을 엿볼 수 있었고, 대화와 중재를 중요시하는 정부의 자세에 신뢰를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모두의 기대는 처참하게 짓밟혔다. 정부가 약속을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다시 단병호 민주노총 위원장을 수감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

개개인간의 약속을 깨는 것도 허물임에랴, 하물며 정권과 그 하수인이 스스로의 약속을 일방적으로 짓밟는 것을 무엇이라 표현해야 할까!

이런 정권의 백성이 된 우리의 모습이 처참하기만 하다. 김승훈 신부를 중재의 대표로 내세웠던 천주교 정의구현 사제단과 노동계, 그 외 뜻 있는 사람들은 김대중 정부에 대해 실망을 넘어 분노를 감추지 않는다.

김승훈 신부는 천주교회 성직자로서 중재에 나섰던 것이고, 노.정 양측 모두가 교회에 신뢰를 두고 중재가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는 그 신뢰를 바탕으로 한 중재를 자신들의 이해와 정치 논리에 이용하고 폐기해 버린 것이다. 이것은 갈등과 분쟁을 평화적으로 해결하려 했던 노력에 대한 배신이며 정부와 노동계, 그리고 교회 사이에 이루어졌던 신의에 대한 배신이다. 정책에서 실패한 정권은 용서받을 수 있다. 그러나 신뢰를 짓밟은 정권은 결코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거짓말쟁이를 멸하시며, 사기치는 자를 하느님께서는 역겨워하십니다.(시편 5.6)”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후원계좌 :

열린사회 희망연대 / 경남은행 / 207-0065-6502-00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오동동14길 29 기산프라자 217호
Tel:055-247-2073, Fax:055-247-5532, E-mail:186@hanmail.net
그누보드5
Copyright © 희망연대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