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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율아, 내 더우 좀 사가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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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희망연대 댓글 0건 조회 531회 작성일 01-06-26 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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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율아, 내 더우 좀 사가래이"
글쓴이:박 철 (자문/한의원장)2001-06-26 01:25:00
내일이 정월 대보름이다.
사십이 훌쩍 넘어 어릴 적 추억이 점점 가물거리고 남은 날이 벌써 짧은데도 아직 앞가림 못하는 처지이고 보니 보름이라고 별 수 있겠냐 만은, 휘영청 둥근달을 보고도 아무 감흥이 없다면 이미 죽은 모습과 무엇이 다르랴.
갈수록 건망증이 심해져 엊그제 일을 까먹는 것은 예사이고, 열쇠 들고 열쇠 찾으러 온데를 다 뒤지는 중에도 철 모를 나이의 기억은 갈수록 또렷해지니 심사가 여간 뒤숭숭하지 않다.

열나흗날 저녁이면 벌써 보름준비 하느라 집안이 부산해진다.
액운이 오지 마라고 짚으로 '제웅'이라는 허수아비를 만들어 속에다 돈과 쌀,집안식구들의 사주를 써 넣어 개천에 버렸다. 또 팥을 자기 나이대로 세어서 밭에다 묻으며 "올해는 배아프고 머리 아픈 것 다 가지고 가라" 고 주문을 왼다. 이러면 팥이 병을 다 가져 간다고 믿었다.

아버지대에 까지 몇대 독자를 거듭한 끝에 낳은 두 아들 잃고 누나, 형 낳고 난 뒤 내 위 또 아들을 잃은 우리 어머니는 자식을 위해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지 다 하셨다. 양의한테 가면 자식 죽이고 돈 든다고 눈앞에서는 절대로 주사나 양약을 못 쓰게 했던 할머니 때문에 한번은 겨우겨우 약을 사오기는 했는데, 아버지가 대문에 들어서는 중에 방에서는 숨이 넘어가드라나....
그런 슬픔 중에 내가 났다. 어지간히 공부도 잘하고 딴에는 착한 짓 해도 어머니는 늘, 앞에 죽은 형들을 들먹이며 "얼굴이 보름달 처럼 둥그름하고 울매나 잘 생겼던지 업고 나가면 동네사람들이 서로 안아볼라고 사서 우리는 아아 볼 새도 없었던기라...." 어머니는 지금도 한번씩은 눈시울을 붉히신다. 그리 컸다. 그래도 나는 효자다 살아 있으니.

그 해 농사가 잘되라고 '볏가리대'도 세우고 감나무나 밤나무가지에는 돌을 끼워 '나무 시집'도 보냈다. 우리동네에서 연을 내가 제일 잘 만들었다. 한참 청년때에도 겨울에는 연하고 살았지.사금파리를 곱게 먹여 손이 베일 것 같은 연실도 내일로 마지막이다. 온 동네 당할 애가 없을 정도로 당당하던 연도 올해는 끝이다. 보름지나 연 날리면 흉년이 든다.얼어 터져 핏물이 줄줄 흐르는 손으로 연자세를 잡고 검은 고무신이 벗겨지든 말든 논으로 들로 뛰면 뒷 꽁무니를 따라 다니던 내 방패연에다 아버지는 '송액'이라고 한자로 탁 적어신다. 액을 띄워 보내야 내가 오래 산다니....
아침에 일어나 잠에서 덜 깬 채로 부럼 깨물고 귀밝기 술을 마셨다.한잔하고나면 더 몽롱해진다.

술 못하는 내가 어지간 할까?
여름날, 일꾼 준다고 막걸리 가져 가면서 조금씩 빨다가, 한모금 한모금에 취해 논두렁에 엎어져 소나기 맞은채로 잔 적이 있다. 해가 어둑해 지고나서야 집에 와서 또 얼마나 맞았는지. 이번에 고등학교 동무 그림 전시회에 마침 그 그림이 있더라, 슬프고도 그리운 어린 시절.

오곡밥에다 묵은나물에 들깨찜 먹고 약밥도 밀어 넣고 제일 먼저 동무네 집에 간다. 살금살금 다가가서는 담너머로 부른다. "성율아!" "와?" " 내 더우 사가라." 불알에 요롱소리가 나도록 달아난다. 이러면 내 대신 지는 이번 여름에 더워 죽는다더라. 점심은 집집이 얻은 '조릿대 밥'으로 떼우고 연 날리러 갔다.

초 사흘부터 간간히 치던 풍물도 보름날은 제일 크게 친다. 아침부터 동네마다 캥자캥자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어머니는 시부모에다 줄줄이 시누이, 남편없는 윗동서, 아들 죽은 설움 등으로 울화가 가슴에 켜켜히 쌓인 사람이다. 얼마나 남자에 한이 맺혔으면 아버지 양복을 입고 멕고모자 쓰고 넥타이 메고 구두까지 신고는 풍물패를 따라 나섰을까? 사람들은 어머니를 보고 "어이! 박교감" 하고 논다. 쇳소리는 점점 달아오르고 어지럽게 팽팽도는 상모꼬리, 탈바가지 쓰고 공중에다 총질해대는 대포수, 빠르게 휘감아 도는 다드래기 장단에 술이 취해 흐느적 거리는 사람들. 운다, 어머니가 운다, 남자춤을 추며 운다. 어머니가 뭇 사람들과 어울리는게 싫어 꽁무니 잡고 따라 다니던 나도 괜히 서러워 운다.

이윽고 달이 떠올라 달빛이 달집문을 비추면 달집에 불을 지핀다.
달이 떠 오를 때 쯤이면 사람들은 미쳐 있다. 반쯤 풀린 눈, 벌어진 입, 가슴이 드러나도 감출 생각 안하는 아낙들.아무나 붙잡고 늘어지듯, 넘어지듯 춤을 춘다. 타오르는 불길, 땀과 술과 눈물에 젖어 번들거리는 얼굴들.달이 서쪽산으로 기울고 불이 사그러질 때까지 놀고 놀았다....

"가세 가세 달맞이 가세 이산 저산 너머 달맞이 가세'

세월 흘러 나도 어쩌다 쇠를 치게 되었다. 신명도 한도 없는 나는 무슨 연유로 치나? 알 수도 없거니와 뜻대로 안되는게 인생살이, 그냥 쇠 치고 날나리 불면서 산다.

"성율아, 내 더우 좀 사가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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