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서울의 인권운동사랑방 서준식 대표로부터 희망연대는 뜻밖의 전화 한 통을 받았습니다. 마산이 초행길인 그곳의 여성 실무자 한사람이 마산교도소에 수감중인 사람을 만나러 내려가니 안내를 부탁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서울손님과 함께 오랜만에 마산교도소로 향하는 기분이 참으로 묘했습니다. 교도소로 들어서는 입구에 시커먼 입을 벌리고선 굴다리는 여전히 내 마음을 답답하게 했습니다. 굴다리를 빠져나와 곧장 올라서게 되는 개천의 다리를 건너면서 바로 이마에 닿일 듯 버티고 선 높은 담벼락과 철망, 제복 입은 사람들. 이 모든 것들이 한눈에 들어오는 순간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던 기억들이 되살아나 나도 모르게 나즈막이 아! 하는 한숨 같은 소리가 흘러 나왔습니다. "내가 그 동안 정말 법을 잘 지키는 소시민이 되어 살아왔었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말입니다. 대학을 다닐 때만해도 교도소는 자취방만큼이나 눈에 익었던 곳이었지요. 만감이 교차하는 속에 얼마 전 구속 수감된 창원대 총학생회장이자 한총련 조국통일위원장인 송재혁 후배의 얼굴이 머리에 떠올라 콧잔등이 찡해졌습니다.
교도소 담을 넘어 인권운동사랑방에 편지를 보냈다는 주인공을 만났습니다. '1159번' 이라는 수감번호로 불린 까만 뿔테안경을 낀 까까머리 남자였습니다. 철창 살에 이중으로 된 접견창 너머 그의 얼굴은 그저 평범하게 생긴 20대 젊은이었습니다. 사연인즉 수감 중 교도소 측으로부터 억울하게 징벌을 당한 사연과 부당한 처사를 관계처에 호소하고자 보내는 '소송장' 과 '청원서'를 보안과에서 매번 차단시킨다는 것이었습니다.
접견을 마치고 곧바로 보안과 담당자를 만나 "자세한 내용을 알아본 후 시정조치 하겠다"는 대답을 듣기는 했지만 못내 미덥지 못해 다음 주에 본인에게 확인하러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돌아섰습니다.
그날 이런 저린 과정에서 어떤 교도관이 서슴없이 '글마 누구냐?' 고 했습니다. 그의 말투 속에 교도소의 인권 현실이 그대로 담겨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왜 그런 식으로 말을 하느냐?"고 따지자, 어물거리며 황급히 사라지는 교도관의 뒷모습을 보면서 그 동안 세상 많이 변했다고 생각해온 자신을 자책했다.
서울에서 내려온 실무자는 "일제시기를 모델로 삼고있는 우리 나라 교도행정은 인권에 대한 기본의식이 부재해서인지, 사회적인 관심이 부족해서인지 재소자들의 인권은 지금도 여전히 열악하다"며 매우 안타까워했습니다. 그래서 인권운동사랑방에선 재소자들의 인권향상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기구를 따로 준비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21세기로 접어들면서 바깥세상에선 인권문제가 일상적인 화두로 떠오르고 있지만 어느 세상에서도 사각지대는 있는 법, 바로 높은 담장 너머 교도소 안이 대표적인 곳입니다. 엄중한 감시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그들은 비록 사회에서 죄를 짓고 법의 심판을 받아 지금은 죄의 대가를 치르고 있는 수형자이지만 그들도 사람이기에 그 속에서도 보장받아야할 인권은 있는 것입니다.
그날 중으로 '진주교도소'에도 꼭 만나야 할 사람이 있다는 서울 손님의 말에 서둘러 교도소 문을 나서면서 쳐다본 하늘은 너무나 맑고 깨끗했습니다. 이 아름다운 가을 하늘은 담장 안이나 밖이나 다를 바 없건만 교도소를 나서는 우리의 마음은 먹구름이 낀 하늘처럼 어둡기만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