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상의 행적에 대한 시비는 늘 두 가지가 문제가 되었다. 하나는 친일 혐의요 또 하나는 독재정권에 대한 부역이다. 이런 문제제기는 우리지역에서 이은상 기념관 건립에 대한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히고 나온 시민단체인 '열린사회 희망연대'에서 나온 최초의 논평과 성명서를 보면 잘 나타나 있다.
'일반에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이은상씨는........... 친일혐의가 짙으며 박정희 독재정권 시절에는 통치이데올로기를 제공하여 독재정권 협력자로써 그의 행위가 세인의 입에 끊임없이 오르내리고 있었다' (99년 8월 26일자 나온 논평의 일부)
'이은상은 마산을 대표할 수 있는 존경의 인물이 결코 아니다. 그것은 이은상이 친일 혐의가 있고 나아가 독재정권에 부역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12월 15일자, 기념관 건립 반대 성명서 중에서)
이렇게 처음부터 '친일혐의'와 '독재협력행위' 두 가지를 동시에 문제삼고 있다. 특히 친일문제에 대해서는 행위가 아니고 혐의라는 용어를 썼다. 다시 말해 혐의는 어디까지나 혐의일 뿐이며, 이은상의 친일혐의는 그것을 입증하거나 부정할 확실한 증거자료가 나오지 않는 다음에야 계속 혐의로 남을 뿐이다.
이번에 만주제국조선인(남창용 저)이라는 책을 통해 밝혀진 '리언(俚諺)의 전와(轉訛)에 대한 일고(一考)' 라는 이은상의 글만 해도 그렇다. 이 글은 만주제국 건국 10주년을 기념하여 신징(新京)에 있었던 친일 우리말 신문인 만선학해사에서 발행한 '반도사화와 낙토만주'라는 책자에 실린 글이다. 책의 제목만 봐도 짐작이 가겠지만 半島史( 조선사를 비하한 말) 와 만주사를 비롯한 식민지 민족의 언어, 종교, 예술 등에 관한 논문들이 실려 있다.
일제의 입장에서는 이런 글들이 식민지를 효과적으로 지배하고 통치하는데 유용하게 쓰일 학술적 자료일 뿐이다. 이 책에는 일본관동군 사령 장관의 '북진의 중책'이라는 글도 있고 만주제국 황제조서와 소기 조선총독유고도 실려있다. 더 이상 무슨 설명이 필요한가?
이런 일을 두고 그가 마치 애국적 행위나 한 것처럼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진정한 민족의식과 독립의지를 가진 사람이라면 일제가 세운 만주괴뢰국 창건 10주년 기념하기 위해 반민족 친일분자들이 벌인 축하잔치의 초대에 응하지 않았어야 한다.
또 하나 문제가 되는 것은 이은상이 이 원고를 제출할 당시 그이 직함이 조선일보사조광 주간으로 되어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보고 김봉천 마산시의회 전문위원은 1943년부터 45년 해방 때까지 모호했던 그의 행적이 마치 명쾌하게 밝혀진 것처럼 말하고 있어나 이것은 매우 성급하고 신중하지 못한 판단이다. 아직은 원고제출일시나 조광의 근무기간에 대해 전혀 밝혀진바 없으며 재직기간을 최대로 잡는다 해도 조광이 폐간된 44년 말까지 이다. 그렇다면 그 이후의 행적에 대해서도 정확하게 밝혀져야 한다. 따라서 이은상의 혐의가 이로 인해 명쾌하게 밝혀진 것이 아니고 오히려 그의 친일혐의에 대한 의구심만 더해진 셈이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이은상이 친일혐의만 벗으면 아무 문제가 될 것이 없는 것으로 생각하는 일부 인사들의 사고구조이다. 민중들이 받는 억압과 고통은 일제통치 아래에서나 독재정권 아래에서나 다를 바 없다. 이은상이 독재권력에 부역한 다른 사실들은 다 그만두고라도 3.15와 4.19를 촉발시킨 장본인인 독재자 이승만을 이순신에 비유하여 구국의 인물임을 떠벌리고 다닌 이은상의 행위는 도대체 어떻게 할 생각인가? 누구 말마따나 "그때 나라도 별수 없이 그렇게 했을 거다"는 억설을 늘어놓을 셈인가?
3.15의 정신이 시퍼렇게 살아있는 이곳 마산에 그의 기념관을 짓겠다고 하는 것은 역사의 두려움을 모르는 사람들의 행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