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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구자]싫어했던 문익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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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주완 댓글 0건 조회 971회 작성일 03-06-22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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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구자]싫어했던 문익환 목사
글쓴이:김주완2003-06-22 11:12:00
view]<선구자> 싫어했던 문익환 목사


김주완(위클리경남부장) /




새삼 생전의 문익환 목사가 그리워지는 요즘

통일운동의 ‘선구자’였던 고 문익환 목사는 어찌된 일인지 가곡 <선구자>를 싫어했다고 한다. 그냥 좋아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89년 방북의 뜻을 나누면서 정경모 선생이 <선구자>를 같이 부르자고 제안한 걸 거절할 정도였다는 것이다. 문 목사는 그때 <마른잎 다시 살아나>를 대신 불렀다고 한다.

민족주의자였고 <선구자>의 배경인 중국 용정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던 문 목사가 하필 그 노래를 싫어했던 이유가 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러나 문 목사도 <선구자>의 원곡이 독립운동가의 기상과 꿈을 표현한 노래가 아님을 알고 있었던 것만은 확실하다. 어쩌면 작곡자인 조두남과 작사자인 윤해영의 친일혐의까지 알고 있었을 지도 모르겠다.

문익환 평전에는 이런 구절도 나온다. “지상에서 가장 가까운 친구(윤동주와 송몽규)를 한꺼번에 2명이나 잃는 슬픔 속에서 문익환은 4월에 첫 아이를 낳았다.

그러는 동안에도 여전히 협화회(協和會) 일당은 ‘천황의 성덕’이니 ‘황국신민’이니 하는 따위의 말을 멋대로 지껄이고, 일본 사람의 조종으로 조선인·중국인·일본인을 서로 친화시킨다는 미명하에 알량한 식민지정책을 선전하고 고무했다.”

이 글에 나오는 협화회는 당시 일제의 괴뢰정부인 만주에 살던 다섯 민족, 즉 만주족·몽고족·한족·일본족·조선족 등 5족이 협조해야 한다는 일본의 통치이념을 실천하기 위해 만든 친일조직이다. 윤해영은 이 조직의 간부였다.

이쯤 되면 문익환 목사가 왜 <선구자>를 싫어했는지 이해할만 하다. 그가 살아있다면 최근 마산시에서 일고 있는 조두남기념관 논란을 어떻게 볼까. 그리고 친일작가가 지은 <선구자> 노래로 치장한 기념관의 모습을 보면 과연 뭐라고 할까. 새삼 생전의 문익환 목사가 그리워지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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