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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토론-마산수원지 표지석 문제 놓고 공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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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경남도민일보 댓글 0건 조회 1,063회 작성일 05-06-29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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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토론-마산수원지 표지석 문제 놓고 공방
글쓴이:경남도민일보2005-06-29 20:22:57
[315광장]쟁점토론-마산수원지 표지석 문제 놓고 공방
일본 마산근대화 기여 과대포장 Vs 역사적 사실 알려주기 위한 시설물

 

여론팀

 


일본 마산근대화 기여한 것처럼 과대포장
새해 벽두부터 우리 지역에 잔잔한 파장이 일고 있다. 작년 말부터 마산시 봉암동 수원지 입구의 해괴한 비석 때문에 논란이 시작된 것이다. 자칭 역사학자라는 대학 교수들과 과거 시민단체에 활동했었던 관계자들까지 가세하여 그 해괴한 비석을 옹호하는 희한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그 비석에는 “이 수원지는 1928년 11월에 일본인 혼다 쓰지코로우가 건설 하였다. 이 수원지는 근대 마산 일원의 생활용수 및 공업용수를 공급해오다 1984년 12월 31일 폐쇄되었다.” 고 기록되어 있는데, 마산 시민들 중에 그 수원지가 일제시대 때 만들어진 것은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수원지 근처에 가보면 조그만 옛날 기록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이 오고 가는 길목에다 혈세를 낭비하면서까지 일본인들이 마산의 근대화에 크나큰 기여를 한 것처럼 과대 포장하여 자랑을 하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일까.
나는 역사학을 전공한 사람도 아니지만, 살아가는 과정 중에 알게 된 것은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역사교육이 그 동안 잘못된 지식인들의 장난에 의하여 얼마나 뒤틀어지고 왜곡되었는지를 똑똑히 알게 되었다. 우리 사회에는 지금 잘못된 역사교육을 부끄러워하거나 반성하기는커녕 오히려 그것을 지적하고 바로 잡으려는 사람들을 매장 시키려는 이상한 풍토가 조성 되는 것을 보고 참으로 걱정이 앞선다.
일제 시대 때 일본인들이 조선에 철도와 다리를 놓고 댐을 만들어 조선인들이 그것을 일부 이용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와 같은 일을 벌인 이유를 분명히 알지 못하게 우리는 역사교육을 배울 때 일본인들이 무지한 조선인들을 개화시키고 근대화에 기여한 공로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고 듣고 자라왔었다. 그것은 일본이 대동아공영의 기치를 내걸고 중국대륙까지 진출하여 아시아를 호령하려는 제국주의 야욕으로 한반도를 병참 기지화 한 것에 불과함을 우리는 훨씬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지금 미국이 이라크에 주둔하면서 도로 건설하고 다리 놓는 것도 미국의 필요에 의한 행위일 뿐이다. 그것을 이라크 백성들을 위한 것인 양 포장하여 홍보하는 것이나 일본의 조선 근대화론이나 뭐가 다를 것인가. 이제는 적어도 스스로가 과거의 부끄러웠던 기억들과 잘못된 것은 잘못된 것으로 인정하고 털면서 갈만큼 사회가 성숙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반복되게 거짓된 정보를 흘리면서 왜곡된 역사의식을 국민들에게 심으려는 자들이 있기에 분노를 금할 수가 없다. 그것도 학식과 권위를 겸비한 자들이 더 몸이 달아올라서 난리를 치니 참으로 가관인 것이다. 권위와 자존심은 좀 별개로 생각할 수는 없을까. 자신들의 논리에 오류가 있었음을 인정하게 되면 그 동안 지켜오던 학계의 권위와 자존심이 일순간에 뭉개져서 두려운 나머지 왜곡된 진실을 계속 반복 재생산 하려는 것일까. 근대화라는 것은 일제의 한국 지배를 미화한 것에 불과한데 아직도 그러한 허구의 논리를 써먹는 학자들이 있다는 것이 동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부끄러움과 함께 심한 역겨움이 든다.
모르면 무지해서 그렇다고 이해는 가지만, 공부를 할만큼 한 지식인들이 그것도 학계에서 나름대로 권위를 인정받는다는 학자들의 입에서 그런 망언이 나오다니 이것은 도저히 용서 받을 수 없는 행위인 것이다. 또한 그 논리에 동조하는 사람들 중에는 나름대로 예전에 시민·사회단체에서 활동했던 경력이 있는 분들도 있다. 그러기에 더더욱 한심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일본이 아니었다면 조선이 강대국들에 의해서 초토화가 되었을 것이다” 는 말과 “미국이 아니면 다 망하게 된 걸 살려준 게 누군데” 는 말이 같은 맥락이듯이 일본의 조선 근대화 기여론과 1980년 5월 광주에서 군인들이 민간인들에게 총을 쏜 것은 정당했다고 강변하던 사람이 다름 아님을 생각해본다. 이제 그 지겨운 자신들을 합리화하려는 거짓말 좀 안 할 수는 없겠는지.
-예외석(희망연대 회원)

후손에게 역사적 사실 알려주기 위한 시설물

마산 수원지의 문구가 연말부터 새해벽두에 이르기까지 많은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그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사람 중의 한 사람으로 침묵으로 일관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오해가 있기에 의사를 개진하고자 한다. 우선 본인부터 밝히도록 하겠다. 본인은 현재 경남대학교 박물관 학예연구원으로 재직하고 있으며, 당시 표지석 문구의 작성에 실무적으로 참여하였던 사람이다.
일반인의 오해를 줄이기 위해 먼저 우리나라의 문화재보호 실태부터 간략하게 언급하도록 하겠다. 실제적으로 우리나라에 문화재라는 개념이 자리잡은지 벌써 50년이 넘었다. 실제 우리나라의 문화재보호법이 만들어지게 된 것도 일본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는 점에서 본다면 이번 사건과 관련해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이러한 사항도 희망연대의 측에서 본다면 일제의 잔재요, 어쩌면 ‘친일세력’으로 보일는지 모르겠다. 그것은 차치하고서라도, 어쨌든 그동안의 문화재보호법의 시행으로 지금 우리는 다양한 전통문화의 유산을 전국 곳곳에서 느낄 수 있고, 또한 학습자료로 활용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문화유산으로 지정, 보존되어 왔던 것이 대개 전통문화유산, 즉 개항 이전의 문화유산에 집중되어 왔다. 때문에 현재 희망연대측이 문제로 삼고 있는 ‘근대’라는 접두사를 붙인 문화유산은 산업화의 과정에서 숱하게 파괴되어 왔다. 그로 인해 시대적으로 본다면 훨씬 많이 남아 있어야 할 ‘근대’문화 유산은 오히려 얼마 남아 있지 않은 상태이다. 때문에 일부 학자들은 이제는 더 이상의 파괴를 막고, 남아 있는 문화유산을 적극적으로 보호하자고 하는 활동이 전개되고 있고 그러한 일환으로 얼마전 일제시대 때 설치되었던 남지철교도 문화재청에 의해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민간인들을 중심으로 근대문화유산을 보호하기 위한 시민단체까지도 성립되어 있다(http://www.docomomo-korea.org, 도코모모코리아). 이 단체에는 우리나라의 유명 역사학자와 건축학자 등이 참여하여 활동하고 있으며, 특히 일제시대에 설립된 건축물의 보호를 위해 정기적인 모임과 학술행사도 개최하고 있다. 물론 희망연대에서 이야기하는 마산 수원지는 별개의 문제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마산수원지는 마산에서 최초로 수도를 건설하고, 그 용수의 활용을 위해 건설된 분명한 목적이 있는 저수지임에는 틀림이 없다. 이 역사적 사실까지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여기에 대해서도 문제 제기가 가능할 것이다. 즉 희망연대측이 제시하고 있는 것처럼 마산의 수도는 누가 사용하였는가. 당시 한국인은 모두 우물물을 사용하였고, 수돗물은 일본인들만 사용하였던 일제의 ‘추악한’ 약탈 수단이지 않느냐고? 물론 그렇다고 인정한다. 누가 그런 부분까지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현재 마산을 가로지르는 철도는 어떻게 생겼는가? 그것은 바로 1904년 러일전쟁 대 한반도에서의 일본의 지배체제를 관철시키고, 러시아와의 전쟁 수행을 위한 일본군의 수송을 위해 설치된 것 아닌가? 이 철도는 근대가 아닌 현대 마산의 발전에 어떤 영향력을 미쳤는가? 여기에 대해서 일제의 잔재요 ‘근대 자본주의 시혜’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는가? 그렇다면 남지의 철교며, 전국 각지에 등록문화재로 등록된 급수탑(기차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 설치)이야말로 일제 침략의 전형적 산물이 아닌가? 그런 것들은 조선인을 위해 설치하고 하였는가? 물론 희망연대에서 문제를 삼고 싶은 것은 그렇다면 왜 그곳에다 표지석을 설치하느냐일 것이다. 특히나 일본인의 이름까지 넣어서 말이다. 그런 지적에 대해서는 작업을 담당하였던 한 사람으로서 깊이 감사드린다. 앞으로 어떤 일을 해 나가든 아주 사소한 것마저 놓쳐서는 되지 않는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영만씨를 만났을 때도 표지석의 문구에 오해의 소지가 있고, 시민들이 충분히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마산시에 의견을 개진하여 문구를 고치겠다고 말씀드렸고, 마산시 역시 그러한 의뢰를 미리 해와 그게 좋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그래서 이름은 삭제하였던 것이다. 그럼 왜 표지석을 설치하였느냐가 문제가 될 것이다. 희망연대 측에서는 그곳에 가면 작지만 나름대로의 안내문구가 있는데 굳이 다시 ‘공적비’(?)를 세울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분명 이야기하지만 그것은 공적비는 아니다. 우리가 그곳에 표지석을 설치한 이유 중의 하나는 현재 마산시내에 일제시기에 만들어진 공공건물로서 나름대로 원형을 보존하고 있는 것은 단 2건 밖에 없다. 하나는 헌병대 건물이고, 다른 하나가 바로 수원지이다. 바로 이러한 역사성과 희귀성에서 표지석을 세울 필요는 충분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희망연대 측에서는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고 하였다. 그러나 본인과 연락을 취했던 도민일보 기자나 심지어 마산경찰서의 담당관, 문화방송의 기자, 경남방송 기자 등 나름대로 마산에서활동하고 있는 사람들 중 수원지의 역사나 기능에 대해 알고 있었던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그리고 역사유물에 대한 표지석은 당대의 알고 있는 사람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미래의 후손들에게 옛 역사 사실을 현장감 있게 알려주기 위한 하나의 시설물일 뿐이다.
때문에 일제시대뿐만 아니라 몽고가 고려를 침탈하고 일제시대보다 더 오랜 시기를 지배하며 우리 민족과 역사를 짓밟았던 상징물인 ‘몽고정’에도 안내판(이것은 국가에서 설치한 것이다)이 서 있고, 지금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불멸의 이순신’이라는 드라마의 대상이 되고 있는 임진왜란 때 일본인들이 세운 ‘왜성’에도 문화재 안내판이 서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표지석을 설치하였을 뿐이지, 일본인의 공적을 기리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는 것은 너무나 확대해석이고 오히려, 학문적 연구를 정치적 논리로 재단하려는 든다는 느낌이다.
여기서 마산이란 도시의 성격에 대해서 말해보자. 마산이란 어떻게 형성된 도시인가? 이 문제를 두고 몇 년 전부터 많은 논란이 있어왔다. 어쨌든 마산이라는 도시는 일제의 침략과 함께 발전되어 온 도시가 아닌가? 물론 일제가 있었기 때문에 발전하였던 도시라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일제의 침략이 없었더라면 보다 민족적인 도시로 형성되고 발전하였을는지도 모른다. 우리의 역사 자체가 그렇다. 그러나 어쩌겠나? 일제에 의해 지배되었고, 그 과정에서 여러 시설물들이 만들어지고 한 것을….
그렇다고 그런 모든 것을 없애버리겠는가? 나 역시 그럴 수 있다면 그렇게라도 했으면 좋겠다고 여기는 사람이다. 누구 못지않게 일제에 대한 적개심도 많고 친일청산에 대해서도 찬성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렇게는 할 수 없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표지석을 설치하지 않으면 되지 않는가? 그럼 왜 헌병대에 설치한 것은 그만 두어야 하는가? 그것이 현대까지 계속된 일제의 잔재를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에? 그리고 그것이 독재정권의 하수로 지속되었기 때문에? 그래서 그러한 독재정권의 부도덕성을 파헤쳐 그들의 죄상을 낱낱이 까발리기 위해서? 그럼 마산수원지도 지금까지 그러한 역할을 해 왔으면 표지석을 세워도 괜찮은가?
나는 희망연대와 감정적으로 대하기 싫다. 그들 역시 지금까지 세계평화와 친일청산 등의 활동을 통해 지역사회에 아주 중요한 공공단체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줄 안다. 그러나 순수하게 학문적 활동만을 해 오신 분들을 거짓말쟁이라고 매도하거나 친일분자로 모는 것은 정말 참을 수 없다. 마산 지역사에 대한 관심이 일기 시작한 것도 얼마 되지 않는다. 90년대 후반 이 연구를 주도하였던 유장근 선생님을 비롯한 몇몇 분들이 분명 역사적으로 의미있는 이 도시의 역사에 대해 지역민과 시 당국도 너무도 무관심하다는 사실에 적잖이 놀라면서 그 때부터 전국 각지에 산재해 있는 관련 도서를 모으고,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그 때 유장근 선생님은 심지어 이런 이야기까지 하셨다. 지금의 월영동 일대를 신마산이라고 부르고, 창동과 어시장일대를 구마산이라고 부르는데 대해, 이른바 구마산 지역을 무엇 때문에 신마산에 대해 낡은 개념인 구마산이라 부르는가? 오히려 이 지역은 낡은 지역이 아닌 참된 마산의 출발지이므로 낡다는 의미의 ‘구’를 써서는 안 된다. 오히려 ‘원’마산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경남도민일보에 쓴 적이 있다. 물론 그 의미의 타당성에 대해서는 모르겠다. 단지 그 만큼 마산에 대한 열정과 사랑을 가지고 있었고, 일제에 대해서는 누구 못지않게 거부감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일로 본인뿐만 아니라 이 일에 참여하였던 여러 선생님과 마산시청 공무원 모두가 ‘친일분자’로 또 ‘거짓말쟁이’로 몰려버린다는 생각에 착잡함을 금할 길이 없다.
사실 이런 논의 자체가 어쩌면 너무나 무의미한 것인지도 모른다. 물론 철거할 수도 있다. 그런데 앞서도 언급하였듯이 이 수원지는 역사적인 실체인 것만은 부인할 수 없다. 때문에 문화재청에 등록 요구를 하게 되면 ‘등록문화재’로서의 등록될 가치는 충분히 있다고 생각된다. 그 때 희망연대는 어떻게 행동하겠는가? 그 때도 문화재위원들이 선정한 문화재로서의 가치를 포기하도록 하겠는가? 참으로 답답할 뿐이다. 부디 이성적인 판단으로 행동해 주실 것을 거듭 부탁드린다.
-김원규(reality12@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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