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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수원지 표시석 문안과 관련된 문제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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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유장근 댓글 0건 조회 1,167회 작성일 05-06-27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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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수원지 표시석 문안과 관련된 문제에 대해
글쓴이:유장근2005-06-27 17:44:51
마산수원지 표시석 문안과 관련된 문제에 대해

글쓴이:유장근 2004-12-30 16:16:00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사실이지만 마산은 역사, 특히 도시의 역사에서 매우 의미 있는 공간이다. 한국사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나아가 세계사의 중요한 부분을 내재하고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도시의 특징을 밝혀주는 흔한 표지석이나 안내문 하나 없이 많은 시민들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도시의 특징이나 자연환경 등에 무신경하게 지내왔다.

이러한 연유로 일부 사람들을 중심으로 1990년대 중반부터 마산의 역사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었고, 그 결과 마산의 도시형성과 발전을 좀 더 일반인들에게 알릴 수 있었다. 그와 동시에 무차별적인 개발행위를 막을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던 중, 우선적으로 아직 남아 있거나 사라져버렸더라도 마산의 도시형성과정에서 설치되었던 각종 기간 시설물들에 대한 역사 표지석을 설치했으면 좋겠다는 인식이 있었고, 그 결과 올해 24건의 역사 표지석이 설치되었다.

그런데 갑자기 희망연대측에서 그 중 마산수원지 표시석에 기술된 내용에 문제가 있다며 희망연대 홈페이에 문제를 제기하였고, 이것이 발단이 되어 몇몇 언론에서 이를 기사화하면서 사회문제로 부각되기에 이르렀다. 그렇기 때문에 표시석 사업에 책임을 졌던 사람으로서이와 관련된 몇 가지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 문제가 희망연대측에서 공식적으로 제기된 것인지, 혹은 김영만 회장의 개인적인 의견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희망연대 홈페이지에나 신문 기사에 난 사실로만 추정을 한다면 회장 차원에서 제기된 듯하지만, 개인과 조직을 구분하기 어렵기 때문에 이 글에서는 ‘희망연대측’을 대상으로 삼으려고 한다.

우리로서는 지역사회의 민주화와 인권문제에 앞장서는 것으로 이름이 알려졌던 사회단체로부터 무지막지한 공격을 받았기 때문에 그저 아연할 따름이었다. 사소한 오해로 인해 사업 자체의 본질은 왜곡되고, 그것이 언론을 통해 공개됨으로써 적지 않은 예산과 공을 들여 추진하였던 마산시와 그 일을 담당한 경남대학교 박물관이 마치 친일분자인 것처럼 호도되어 버리기에 이른 것이다. 이 때문에 희망연대측과 이곳에서 생산한 글을 읽고 우리의 사업을 곡해하고 있을지도 모를 시민에게 그 실상을 알려줌으로써 오해를 바로잡고자 한다.

우선 문제가 된 ‘마산 수원지’와 관련된 기술문에 대하여 말하기로 한다. 희망연대측은  이 기술문 속에 당시 이 수원지 건조의 주체였던 혼다 스치코로우(本田槌五郞)의 이름이 들어가 있고, 그 뒤에 ‘근대마산’이라는 단어가 있다는 사실을 임의로 잘라내어 연결시킨 다음, 그것이 마치 일본 우익인사들이 말하는 ‘일제식민지 근대화론’을 보는 듯 하다고 비판하였다. 이러한 인식을 보면서 글은 쓰는 이의 손을 떠나면 자기 글이 아니구나 하는 소회와 한탄을 하게 되었다. 물론 자신의 인식틀로 어떤 사물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그러나 그 문제제기 방법이나 사물에 대한 이해에 일방적인 척도를 가지고 문제를 제기한다는 점에는 그야말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문제제기는 누구나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방법에 있어서 이번 연대측의 문제제기는 분명히 토론의 여지가 있다. 물론 일제에 대한 적개심이 아직도 이 사회에 잔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의 땅에 일본 사람의 이름이 버젓이 서있다는 점에 대해 비분강개할 수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인식의 표현도 실제로 표지석에 왜 이런 단어가 들어가게 되었는가, 그리고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요모조모 따져보고 난 뒤에 합리적인 절차를 거치는 것이 좋았을 것이다. 문제가 된다면 논의를 거쳐 다시 수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내용이 역사적 사실에는 합당하지만, 마산시민의 정서와 맞지 않는다는 판단을 한다면 문구를 고칠 수 있기 때문이다. 얼마든지 합리적으로, 그리고 상대방을 존중하면서 문제제기를 할 수도 있지 않은가? 그런데 일방적으로 자신들의 일차적인 경험에만 의존하여 감정 실린 문체로 이 작업을 주도한 사람들을 ‘친일매국 학자’이거나 ‘일본 극우파의 앞잡이’처럼 매도한 사실은 분명한 언어폭력이자 명예훼손에 해당된다 할 것이다. 그 글을 읽는 순간에 나는 곧장 연대의 사무실 앞에 달려가서 “명예를 훼손한 희망연대측은 사과하라”는 피켓 시위를 할 생각까지 하였겠는가.

또 하나 지적하여야 할 사실은 표시석이나 안내문에 들어가야 할 기본 양식에 대한 것이다. 예컨대 그것이 하나의 건축물일 경우, 누가 언제 무엇 때문에 만든 것인가라는 사항이 기술내용에 들어가야 한다는 점은 필수다. 따라서 우리가 마산 수원지에 관한 기술을 하면서 일본인의 이름을 써 넣은 것은 그것이 하나의 엄연한 사실이기 때문에 쓴 것 뿐이지, 그것을 희망연대측이 말하는 것처럼 “너희들에게 은혜를 베푼 이 분을 기억하라”고 강요할 뜻은 전혀 없었다. 그것이야 말로 우리가 타기하여야 할 단장취의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며, 과도한 역사 해석이기도 하다.

사실 마산의 수원지는 잘 알려져 있는 것 같지만 제대로 분석되지 않은 '근대' 시설 중의 하나이다. 그것은 특히 1919년과 20년에 전국적으로 콜레라가 창궐한 사실과 관련이 있다. 마산, 특히 이곳에 사는 한국인들에게 치명타를 입힌 이 콜레라를 진압하면서 도시의 전염병 문제는 핵심적인 문제로 부상하였다. 이 상수도는 우물로 인한 전염병에 공포감을 느꼈던 당시의 마산 사람들에게 유력한 대안이었던 것이다. 또한 날로 커지고 늘어나는 도시규모와 인구, 그리고 산업시설 등에 필요한 생활·공업용수를 확보하기 위해 건설된 시설 중의 하나였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로 볼 때 충분히 그 가치는 인정될 수 있다고 본다.

더 지적해 두고 싶은 것은 ‘근대’ 마산이란 용어에 대한 것이다. 결론을 말하자면 그것은 하나의 시기를 말하는 것이지, 그 개념 속에 어떤 가치를 내포하고 있지는 않다. 1960년대 이후에 국가 차원에서 전개된 이른바 ‘조국 근대화’라는 개념 속에서 그것은 미래를 지향하는 위대한 가치를 지니고 있었으나, 바로 그 시대 때문에 우리에게 근대는 마치 악몽과 같은 것이기도 하였다. 그리하여 연구자들은 탈근대를 꿈꾸었던 것이다. 이제 많은 연구자들은 근대를 지향하여야 할 이상의 시대로 보지 않는다. 그것은 단지 우리가 사는 시대로 연결되는 하나의 시기 구분일 뿐이며 오히려 극복의 대상이기도 하다. 이런 의미의 근대 개념을 ‘일제 식민지 근대화’론과 연결시키는 희망연대측의 지적에 우리는 지적 공포감을 느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언급해 두고 싶은 것이 있다. 앞에서도 잠시 언급하였듯이 금번 마산시가 행하는 표시석 설치는 상당히 의미 있는 작업이라고 인식되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문화재는 대개 국가나 도지정문화재 수준에서 관심을 가졌으며, 보존 역시 그런 차원에서 진행되어 왔다. 반면 이번 마산시의 이 작업은 지방사회 차원에서 역사의 시각에서 빠져버린 대상들을 발굴하고, 거기에 표지석을 세웠다는 점에서 다른 지자체가 본 받을 만한 일로 평가하여야 할 것이다. 물론 서울과 같은 대도시에서 그런 작업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재정이나 규모면에서 어려운 여건에 있는 지방의 중소 도시에서 이러한 일을 행하였다는 사실 자체에 대해 시민단체나 문화사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더욱 격려하고 칭찬해 주어야 마땅할 것이다.

물론 사람이 하는 일이다 보니 일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일부 매끄럽지 못한 일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런 부분은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충분히 보완할 수 있는 사항에 불과하다. 그 문구 하나로 친일매국이니 일본 극우파 운운하면서 사업 자체를 매도해 버릴 수 있는 사안은 더더욱 아니다. 그렇게 한다면 과연 차후에 누가 나서서 이런 일을 하려고 하겠으며, 그것의 선행 조건인 지역 연구에 힘을 기울이겠는가. 그 뿐만 아니라 이제 막 그런 부분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마산의 문화행정조차도 뒷걸음질치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물론 시민단체도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을 더욱 사랑하고 아끼기 때문에 문제를 제기하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거기에도 합리적인 절차와 방법이 있다. 그리고 문제제기는 구조적인 차원에서 전개되는 것이 앞으로의 논의를 위해 훨씬 유익할 것이다. 예컨대 공간적으로 신마산과 중앙 마산의 대부분은 일제 시대의 산물이었으며, 현존의 이름난 중등 교육기관들도 대부분 식민지 시대의 중요한 유산에 해당한다. 식민지 유산의 정리 문제는 그런 까닭에 매우 구조적인 것이며, 따라서 이런 차원에서 본다면 마산 수원지 문건은 정말로 사소한 것이다.

김수영은 그의 시 <거대한 뿌리>에서 “역사는 아무리 더러운 역사라도 좋다”라고 격정적으로 토로하였다. 오히려 더러운 역사일수록 더욱 선명히 기록하여야 할 책임이 후손에게는 있는 것이다. 그것을 밝히는 것이 발전의 전제이기 때문이다. 희망연대측에서 마산에 대해 격한 애정이 있는 것처럼 우리도 그에 못지않은 애정과 관심이 있으며,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그것을 문화적으로 구현하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아주었으면 한다. 민주와  인권을 지향하는 사회에서 소통과 상호 이해는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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