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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헌병 박종표 반민특위서 '무죄' 받은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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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오마이뉴스 댓글 0건 조회 960회 작성일 09-03-20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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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헌병 박종표 반민특위서 '무죄' 받은 까닭
글쓴이:오마이뉴스2009-03-20 16:17:29
친일헌병 박종표 반민특위서 '무죄' 받은 까닭
2009/03/18 17:40 정운현

친일반민족회의 특별재판부의 재판 모습


<반민특위 재판기록>에 나타난 '친일 헌병' 박종표에 대한 네티즌들의 반응이 뜨겁습니다.
특히 박종표가 항일 애국지사를 악랄하게 고문한 대목에서 많은 분들이 분노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럼 박종표는 그 후 반민특위에서 어떤 처벌을 받았을지 다들 궁금하시죠?
놀랍게도 박종표는 반민족행위 특별재판부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자유의 몸이 됐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마산경찰서 경비주임을 지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악행을 한 친일 헌병이 왜 무죄를 선고받았을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바로 그가 재판을 받은 '시점'인데요,
박종표가 최종 선고를 받은 날은 단기 4282년, 즉 1949년 8월 19일입니다.
앞서 말씀드린대로 1949년 6월 6일 친일경찰들이 반민특위를 습격하여(이른바 '6.6사건)
특위가 제대로 활동을 못하도록 쑥대밭으로 만든 이후 반민특위는 변질됩니다.

즉, 김상덕 초대 반민특위 위원장(전 임시정부 문화부장, 제헌국회의원)이 교체되고,
나아가 공소시효도 단축되는 법이 통과되면서 반민특위는 파장 국면으로 접어들게 됩니다.
다시말해 '6.6사건' 이후 반민특위가 약화되면서 이후 재판은 건성건성으로 진행됐으며,
그러다보니 거의 대다수의 친일파들이 '무혐의'나 '무죄'로 풀려났습니다.
그 이유는 대개 '증거불충분'이었습니다.
이제 대충 아시겠죠?
'친일 헌병' 박종표가 왜 무죄선고를 받고 풀려났는지를요.

덧글) 제 글에 이어 경남도민일보 김주완 기자가 박종표의 해방후 행적에 대한 글을 하나 올렸군요.
  4.19혁명의 도화선이 된 마산의거 때 김주열 열사를 살해한 장본인이 바로 이 박종표랍니다.
  아래 사진 속의 제일 오른쪽 사람이 바로 박종표랍니다.
  (참조 :  친일헌병 박종표는 김주열 살해한 원흉이었다-김주완


맨 오른쪽의 인물이 박종표입니다. /사진 3.15의거기념사업회

다음은 박종표에 대한 반민특별재판부의 공판 기록들입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공판조서>(제2회)

피고인 박종표에 대한 반민법위반 피고사건에 관하여 단기4282년 8월 16일 오전 11시 서울지방법원 법정에서,
재판장 재판관 강 세 형
재판관 고 평
재판관 이 종 면
재판관 신 현 기
재판관 김 호 정
검찰관 곽 상 훈
서기관 김 상 학
열석(列席),
변호인 변호사 변기엽 출정
피고인은 신체의 구속을 받지 아니하고 출정하다.

재판장은,
개정 후 재판관의 경질이 있었고, 계속하여 15일 이상 개정하지 않았으므로 공판 계속을 경신할 취지를 알리고 피고인에 대하여 성명, 연령, 직업, 주거, 본적을 물은 바,

피고인은,
전 회 공판조서 기재와 동일하다고 진술하다.

재판장은,
피고인 박종표에 대한 반민법위반 피고사건을 심리한다는 취지를 선포하다.

검찰관은,
공판청구서 기재 범죄사실과 같이 공소사항을 진술하다.

재판장은,
피고인 박종표에 대하여 본건 피고사건을 설명하고 이 사건에 대하여 진술할 바 유무를 물은 바,

피고인은,
전 회 공판조서 기재와 동일한 진술을 하다.

재판장은,
피고인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신문을 하다.

문-전 회 진술이 틀림없는가?
답-틀림없습니다.
문-경력은?
답-검찰부에서 진술한 내용과 상위 없습니다.
문-피고인은 헌병보(補) 재직 시 담당사무는 무엇이었나?
답-민정 사찰이었습니다.
문-당시 부산헌병대에서 세칭 ‘부산부(府)세무직원사건’을 검거한 사실이 있는가?
답-있습니다.
문-사건의 내용은?
답-그 사건은 제가 부산헌병대에 부임한지 3, 4개월 후 부산 세무과 직원 김대근 외 수 명이 일본이 패전하고 조선이 독립된다는 등의 우언비어를 유포한 사건입니다.
문-피고인이 동 사건 취조에 관여하였는가?
답-일본인 헌병 군조 渡邊(도변)이 동 사건을 담당, 조사할 때 제가 보조를 하였습니다.
문-피고인은 사찰 근무로서 사건취조에도 관여하였는가?
답-본래 헌병보는 사역격으로 상관의 지시에 절대복종하게 되어 있었으므로 사건의 담당 여하를 막론하고 상관의 명이 있으면 관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문-피고인이 동 사건 관계자 김대근 외 5명을 체포하였는가?
답-도변 군조가 김대근 외 5명을 체포할 때 명에 의하여 동행하였을 따름입니다.
문-동 사건 취급시 피고인은 어느 정도 관여하였는가?
답-관계자 체포 시 동행하고, 취조 시 입회하고, 조서를 정서하고, 간혹 관계자의 뺨을 친 정도입니다.
문-그 사건에 고문한 사실이 있는가?
답-제가 상관의 지시에 의하여 뺨을 친 사실은 있으나 그 외는 없습니다.
문-김대근은 고문으로 인하여 사망하였다고 하는데 사실인가?
답-저는 최후까지 동 사건에 관여하지 않았으므로 잘 모르겠습니다.
문-김대근이 사망하였다는 말은 들었는가?
답-추후 사망하였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문-김용찬(최용찬의 오기임/편자)도 고문 여독으로 사망하였다는데.
답-그것은 저는 모르는 사실입니다.
문-그 후 헌병대에서 세칭 ‘소련계 국제혈맹단사건’을 검거한 사실이 있는가?
답-그런 사실이 있습니다.
문-동 사건은 어떤 사건인가?
답-그 사건은 부산부 세무직원 사건이 있은 지 1, 2개월 후에 발생한 것으로 황학명 외 수명이 학병, 징병을 반대하고 황학명이 일본군 무전기관에 있으면서 한국에 관한 미국방송을 듣고 유포한 사건입니다.
문-피고인은 동 사건 취급에 있어서 보조역할을 하였다는데 사실인가?
답-동 사건은 일본헌병 大橋, 堤 군조 등이 담당, 취급하였고 저는 보조 시 동행하고 취조 시 입회하였을 따름입니다.
문-황학명 3인을 체포, 취조한 사실이 있는가?
답-그렇습니다.
문-관계자를 고문한 사실이 있는가?
답-저는 상관의 지시로 간혹 뺨을 때린 사실 이외에는 고문한 사실은 없습니다.
문-다른 헌병들도 고문한 일이 없는가?
답-다른 사람들은 관계자를 매달고 곤봉, 죽도 등으로 난타하고 물을 끼얹는 등 고문하였습니다.
문-피고인은 당시 피검자들의 가족을 방문하여 피검자들은 국적이라고 모욕적인 언사를 발한 사실이 있는가?
답-그런 사실이 없습니다.
문-이 사건의 결과는?
답-기억할 수 없습니다.
문-세칭 ‘무궁당 사건’을 아는가?
답-네, 그 사건은 김한경 외 20명이 반일투쟁 목적으로 비밀결사를 조직한 사건입니다.
문-피고인은 동 사건 취조에 관여하였는가?
답-그 사건은 신상묵 헌병 외 일본인 헌병 4명이 담당하여 김한경 외 관계자 20명을 체포, 취조하였고 저는 관계자 중 4, 5명을 체포 시 동행하였을 따름입니다.
문-동 사건 발생 연월일은?
답-기억할 수 없습니다.
문-양태의가 조선독립운동을 추진시킬 목적으로 금속회수, 공출, 징용 등을 방해하고 미군이 상륙하면 극력 원조하겠다는 언사를 하였다는 혐의로 동인 외 4명을 검거, 취조한 사실이 있는가?
답-그런 사실이 있습니다.
문-동 사건 취조 시 피고인이 보조역할을 하였다는데.
답-그렇습니다. 그 사건은 신상묵 헌병이 담당, 취조하였고 저는 관계자를 체포, 취조 시 보조를 하였습니다.
문-관계자를 고문한 사실은 없는가?
답-상관의 지시로 뺨을 친 일 이외에 고문한 사실은 없습니다.
문-동 사건 발생연월일은?
답-단기 4277년 10월 초순경인 듯합니다.
문-사건 발각 단서는?
답-신상묵의 밀정이 밀고하였습니다.
문-사건 결과는?
답-모르겠습니다.



재판 기록의 일부는 원본 상태의 불량으로 판독이 어려운 곳도 더러 있다


문-피고인은 단기 4278년 6월 중순경 손유호 외 15, 6명이 주간에 부산진극장에서 영화구경을 하다가 동 극장 휴게실에서 휴식중 동인 등에 대하여 전시 하 주간에 영화를 구경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이유로 비국민이라고 하면서 동인 등을 취체한 사실이 있는가?
답-당시 일본헌병들이 그와 같이 취체(단속)할 때 제가 보조한 사실이 있습니다.
문-취체 결과는?
답-당시 일본헌병들이 손유호 외 15, 6명을 체포하여 극장 옆 헌병파견소로 연행하여 훈계방면하였는데 그 때 저는 입회하였을 따름입니다.
문-피고인은 뺨을 때린 이외에 고문한 사실이 없다고 하나 황학명사건 관계자 조영관이 특위에서 진술한 바에 따르면, 피고인은 동 사건 취조 시 곤봉, 죽도 등으로 난타하고 2, 3일간 결식, 缺眠시키고 뜨거운 화로를 머리 위에 들고 있게 하고 전신을 포박하여 얼음물에 앉히는 등 기타 악독한 고문을 하였다고 하는데 어떤가?
답-그런 사실이 없습니다.
문-헌병대에 취직한 동기는?
답-2대 독자로서 징용, 징병을 피하기 위하여 헌병대에 취직하였습니다.
문-재산 정도는?
답-별로 없습니다.
문-헌병보조 재직 중 봉급은 얼마나 됐나?
답-월 45원 가량이었습니다.
문-당시 피고인의 사상은?
답-사상이란 별로 없고 전쟁이 징발되는 것을 피하는 것이 유일한 목적이었습니다.
문-사상관계자를 체포할 때의 심경은 어떠했나?
답-별로 생각이 없었습니다.
문-(사상)관계자의 뺨을 칠 때의 감상은 어땠나?
답-역시 별다른 생각이 없었습니다.
문-해방 후의 심경은?
답-민족에게 가해한 사실은 없으나 여하간 헌병보로 재직한 것이 부끄럽습니다.
문-현재의 심경은?
답-과거를 회오하고 상당한 처벌을 감수하겠습니다.

재판장은,
증거를 조사할 뜻을 알리고 증거 중... (일부 상태불량으로 판독 불가/편자)... 유리한 증거가 있으면 제출할 수 있다고 고하다.

피고인은,
당 조사에서의 진술에 저촉되는 부분은 이를 부인하고 유리한 증거는 없다고 대답한다.

재판장은,
이로써 사실심리 및 증거조사는 종료한다고 선포하다.

검찰관은,
공소사실은 그 증명이 충분하며 피고인은 단지 징용, 징병을 (회피할) 목적으로 헌병대에 간 것이고, 또 해방직전 본관이 부산헌병대에 구속되었던 경험에 의하면, 헌병들은 단지 기계적으로 상관의 명령에 복종할 따름이고 또 피고인이 본 건으로 체포되자 그 모친이 부산부두에서 기절하여 사망하는 등 정상이 가긍함으로 반민법 제4조 6항을 적용, 피고인을 공민권정지 3년에 처함이 적당하다고 사료한다는 의견을 진술하다.

변호인은,
피고인을 위하여 유리한 변론을 하다.

재판장은,
피고인에 대하여,

문-최후로 진술할 것이 없는가?
답-관대한 처분을 바랍니다.

재판장은,
변론을 종결하고 8월 19일 오전 9시 판결을 선고한다는 취지를 고하고 관계인에게 출두를 명한 후 폐정하다.

단기 4282년 8월 16일
반민족행위특별재판부 제2부
재판장 재판관 강 세 형
서기관 김 상 학



박종표(朴鍾杓)에 대한 반민특별검찰부의 제2차 '피의자신문조서'


<공판조서>



피고인 박종표에 대한 반민법위반 피고사건에 관하여 단기 4282년 8월 19일 오전 10시 서울지방법원 법정에서,
재판장 재판관 강 세 형 (외 6명)
열석,
변호인 변기엽 불출두
피고인은 신체의 구속을 받지 않고 출정하다.
재판장은 판결을 선고할 뜻을 고하고 주문 및 이유.....(일부 상태불량/편자)...결을 선고하다.

단기 4282년 8월 19일
반민족행위특별재판부 제2부
재판장 재판관 강 세 형
서기관 김 상 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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