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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이은상을 죽이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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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도민일보 댓글 0건 조회 1,862회 작성일 05-12-23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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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이은상을 죽이려는가
글쓴이:도민일보2005-12-23 12:14:39
누가 이은상을 죽이려는가

 

김주완(인터넷팀장)

 



기자가 취재를 할 때 지켜야 할 기본원칙 가운데 ‘크로스체크’라는 게 있다. 민감한 일이거나 상대가 있는 사안일 경우, 이중 삼중으로 확인을 거쳐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기자들은 대개 상반된 입장에 있는 두 당사자를 먼저 취재한 후, 사안을 객관적으로 평가해줄 수 있는 해당 전문가까지 3단계 확인과정을 기본으로 삼고 있다. 물론 사안이 좀 더 민감하고 복잡할 경우 이보다 더 많은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런 직업의식이 제대로 몸에 밴 기자라면 일상생활 속에서도 사실과 의견을 명확히 구분해내는 능력을 터득하게 된다. 또 미확인 사실이나 주장에 대해서는 일단 판단을 유보하는 것도 기자가 가져야 할 미덕이다. 그러나 상당히 유능한 기자도 이런 원칙을 종종 망각할 때가 있다. 특종 욕심에 눈이 멀어 있거나, 이미 강한 선입견을 갖고 있는 사안에 접근할 경우가 그렇다. 이럴 때 크로스체크를 소홀히 하면 필경 오보를 낳게 된다.
이와는 좀 다른 얘기지만, 기자들의 활동반경이 주로 관공서 쪽에 몰려 있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그쪽 논리에 서서히 매몰돼 가는 경우도 있다. 기자는 자신이 쓴 기사에 대한 독자의 반응에 민감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독자들에게 일일이 반응을 체크해볼 수도 없는 노릇이다 보니, 주로 기사내용과 직접적 이해를 맺고 있는 출입처 관계자들로부터 피드백을 받게 된다.

크로스체크와 기록의 힘

그러다 보면 어느새 ‘출입처의 반응=독자의 반응’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놀라기도 한다. 이런 현상을 경계했던 왕년의 언론계 대선배 왕수완씨는 “퇴근 후 그날치 신문과 기사에 대해 아내와 형제, 부모의 반응을 살펴라. 그들이 가장 재미있고 관심 깊게 읽었던 기사가 있다면 그게 가장 좋은 기사다”라고 강조하곤 했다.
어쨌든 이런 크로스체크 취재원칙은 주로 그동안 비판성 기사에만 적용돼온 감이 있다. 상대를 띄워주는 홍보성 기사의 경우, 피해보는 상대가 없다는 점으로 인해 교차검증의 필요성이 덜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며칠 전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이자 경남도민일보 칼럼진이기도 한 김경현씨가 쓴 <일제강점기 인명록Ⅰ-진주지역 관공리·유력자>라는 책을 읽던 중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는 듯한 경험이 있었다. 2001년 작고한 서예가 정명수씨에 대한 기록 때문이었다.
“烏川命壽(창씨명-기자 주), 시국광고 게재자 ▷호는 은초이며…1941년 1월5일자 <매일신보>에 ‘흥아유신(興亞維新)’을 축하하는 시국광고를 ‘봉산정 정명수’의 명의로 게재했다. ‘흥아유신’은 1940년 1월 1일 조선총독 南次郞이 시필하면서 사용되기 시작한 것으로 대동아 해방의 성전을 기리는 말이었다.…일제말 진주경방단장(요즘의 민방위대장과 비슷-기자 주)으로 활동했다.”

산 자들의 욕심인가?

무서운 기록이었다. 사실이라면 엄청난 친일논란을 부를 수 있는 전력이었던 것이다. 문제는 바로 그 정명수씨가 경남도민일보의 창간휘호를 써준 당사자였을 뿐 아니라, 인터뷰 등을 통해 존경받아야 마땅할 원로로 여러차례 지면에 소개된 적도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지금도 그분이 써준 휘호가 편집국에 두 개나 걸려있다.
비록 모르고 쓴 기사였고, 모른 채 받아 걸어놓은 휘호였지만, 특정 인물을 평가하고 기록을 남길 때에도 확인, 또 확인을 거쳐야 한다는 걸 새삼 느끼게 해준 일이었다. 기록이란 게 그만큼 무서운 것이다.
이 일을 겪으면서 새삼 떠오른 사건이 있다. ‘이은상 문학관’을 고집하면서 ‘마산문학관’의 명칭을 부결시켜버린 마산시의회의 작태가 그것이다.
국민의 세금을 들여 특정 인물을 기념하고 받들어 모시려면 먼저 국민적 공감을 얻는 게 필수다. 이은상은 이미 3·15의거와 10·18부마항쟁의 민주성지 마산과 전혀 어울릴 수 없는 인물로 판명난 사람이다. 그동안 드러난 문제점이 전혀 없는 사람도 그 정도 사업을 하려면 다시 한번 면밀히 크로스체크를 해봐야 할진대, 이미 번연히 알면서도 억지로 밀어붙이려는 그들의 배짱이 신기하다.
이미 고인이 된 이은상을 다시 죽이자는 게 아니다. 다만 도를 넘어 받들어 모시는 것만은 삼가자는 것일 뿐이다. 그런데 왜 지하에 가만히 있는 이은상을 끌어내 그를 두 번 죽이려 하는가. 죽은 자는 말이 없다는 데, 그렇다면 이건 살아있는 자들의 욕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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