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환이 통영을 떠나 만주로 간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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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오마이뉴스 댓글 0건 조회 1,547회 작성일 08-01-02 17:24본문
유치환이 통영을 떠나 만주로 간 까닭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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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일 교수, '지사형 도피설' 아닌 '개인형 도주설' 제기
유치환이 통영을 떠났던 이유와 관련해 논쟁이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 29일 통영시와 통영시의회 주최로, 통영 소재 경상대 해양과학대학 강당에서 열린 “청마 유치환의 친일논란에 대한 학술토론회” 때 이에 대한 언급이 있어 앞으로 논쟁을 예고하고 있다.
이날 박태일 경남대 교수는 발제문(청마 유치환의 북방시 연구) 등을 통해 “내놓고 밝히기 힘든 집안 일로 말미암았다는 개인형 도주설이 참”이라고 밝혔다. 이는 지금까지 통영지역과 문단 안팎에서 알려진 ‘지사형 도피설’을 뒤엎는 것이어서 관심을 끈다.
지금까지 나온 <유치환 평전>(박철석 저)과 <유치환>(오세영 저), <유치환론>(문덕수 저) 등에서는 “일제의 감시를 벗어나려 가족을 이끌고 북만주로 건너갔다”거나 “그의 주위에 아나키스트들이 많아 일제의 감시로 자유롭게 행동할 수 없었던 차에 형(유치진)의 권유로”, “지원병·노무원의 징용이 가속화됨에 따라 절박해진 가기수호의 유일한 길이 만주 탈출”이라고 설명해 놓고 있다.
이에 대해 박태일 교수는 “1940년 직전 무렵은 이미 국내 아나키즘 활동이 일본의 탄압으로 묻히거나 사라지고 난 뒤”이고, “당시 유치환은 32살로 현역 ‘지원병’ 자격을 갖추지도 않았고 ‘교원’으로 노무원도 아니었다”며 일축했다.
그러면서 박 교수는 “유치환이 고향을 부리나케 떠나 만주로 솔가해 올라간 것은 지사적 결단이 아니었다”면서 “오히려 통영 지역사회 안쪽에 널리, 오래도록 전승되어 오고 있는 바, 더는 고향 사회에 머물기 힘들만한 극히 개인적인 집안 안쪽 문제를 일으켜 급작스레 떠날 수밖에 없었다는 생각이 논리적”이라고 밝혔다.
박 교수는 “기록으로 남은 것은 없으나 오랜 기간 통영지역 지식층, 지도층에서 여러 길로 같은 내용이 거듭 재생산되어 온 내용”이라며 “사실을 확인해 줄 수 있는 이들이 살아 있으나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밝히기가 쉽지 않다”고 덧붙였다.
그는 발제문 각주를 통해 “최근 통영에서 유치환 현양사업이 벌어지면서 ‘개인형 도주설’이 부쩍 공론장으로 떠오른다”면서 “2007년 3~8월 사이 두 차례 네 명의 제보자를 통영사회 안에서 만나 그 내용과 진위 여부에 대한 면담을 거쳤다”고 밝혔다.
하지만 박 교수는 “집안 문제라 가족이나 친인척의 입으로 드러날 수 있는 내용은 아니다”면서 제보자의 구체적인 제보 내용이나 ‘개인형 도주설’의 이유는 밝히지 않았다.
정해룡 회장 "짜맞추기식, 여자 문제로 도망 갔단 말이냐"
이날 토론회 때 방청객으로 참여한 정해룡 통영예총 회장(전 통영문협 회장)은 유치환이 만주로 간 까닭에 대해 다른 견해를 내놓았다. 통영예총은 통영시로부터 2008년에 예산 1억원을 받아 유치환 탄생 100주년 행사를 열 단체다.
정 회장은 “박태일 교수가 유치환을 친일로 단정해 놓고 짜맞추기식으로 정리해 놓았다”면서 “통영지역사회에서 전해오는 이야기라며 ‘가족사’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여자 문제 때문에 도망을 갔다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 회장은 “무슨 논문이 이렇게 저급하냐. 삼류 애로 주간지 다루듯이 소설 쓰듯 창작해 놓았다. 논문이 풍문을 듣고 쓸 수 있느냐”고 덧붙였다.
이에 박태일 교수는 답변을 통해 “유치환의 출향 동기 가운데 지역사회의 전승설은 여자 문제로 짐작해도 된다”면서 “그것을 구체적으로 밝힐 수 없는 게 이 글이 갖고 있는 한계이지만 조사는 되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박 교수는 “공론화시켜야 한다. 통영에서 유치환을 제대로 알자는 차원에서 공론의 장을 마련한다면 그 때 기꺼이 밝히겠다”고 제시했다.
유치환과 관련된 토론회가 한 차례 더 열릴 것인지, 토론회가 열린다면 유치환이 통영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제대로 밝혀질 것인지 문단 안팎에서 관심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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