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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환 친일 '결정적 자료'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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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도민일보 댓글 0건 조회 1,429회 작성일 07-10-19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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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환 친일 '결정적 자료' 나왔다
글쓴이:도민일보2007-10-19 11:04:37
유치환 친일 '결정적 자료' 나왔다
경남대 박태일 교수, 1942년 '대동아 전쟁과…' 만선일보 글 발굴
"제국의 지위는 일즉 역사… 위대한 것…" 친일논란 종지부 가능성
2007년 10월 19일 (금) 임채민 기자 lcm@idomin.com
  
 
 유치환이 1942년 만선일보에 쓴 '대동아전쟁과 문필가의 각오'. 
 

유치환(1908∼1967)의 친일 여부 논란에 종지부를 찍을 수도 있는 결정적인 자료가 발굴, 최초 공개될 예정이어서 이후 학계와 지역사회 반응에 관심이 쏠린다.

경남대 박태일 교수는 오는 27∼28일 국내 유수의 국문학자들이 참석하는 '한국어문학회 전국학술대회(영남대)'에서 <청마 유치환의 북방시 연구-통영 출향과 만주국, 그리고 부왜 시문>이라는 논문을 발표할 예정인데, 이 논문에 유치환이 1942년 2월 <만선일보>에 발표한 '대동아 전쟁과 문필가의 각오'라는 글 전문을 발굴해 인용하고 있다.

유치환이 쓴 이 글에는 "오늘 대동아전(大東亞戰)의 의의와 제국(帝國)의 지위는 일즉 역사의 어느 시대나 어느 나라의 그것보다 비류 없이 위대한 것일 겝니다"라든지, "오늘 혁혁(赫赫)한 일본의 지도적(指導的) 지반(地盤) 우에다 바비론 이상의 현란한 문화를 건설하여야 할 것은 오로지 예술가에게 지어진 커다란 사명이 아닐 수 업습니다" 등의 표현이 발견되고 있다.

유치환이 만주 체류 시절 내놓은 유일한 산문일 뿐 아니라, 여러 가지 은유와 비유로 해석상에 논란의 여지를 남길 수 있는 '시'와 달리 자신의 의중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글로써는 최초로 공개되는 것이어서 앞으로 '유치환 연구'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박태일 교수는 이 같은 자료 뿐 아니라 유치환의 만주행에 얽힌 여러 사료와 그가 만주에서 남긴 시편들을 꼼꼼히 분석하면서 그간에 '과잉해석된 유치환 신화'를 한 꺼풀 벗겨 내고 있다.

◇ '대동아 전쟁과 문필가의 각오' 이후 시편들 = 일제를 노골적으로 옹호하고 찬양하는 '대동아 전쟁과 문필가의 각오'라는 글로 말미암아, 이후에 발표된 '수(首, 1942.3)'·'전야(前夜, 1943.12)'·'북두성(北斗星), 1944.3)' 등의 작품에 대한 해석에도 새로운 전기가 마련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유치환의 친일 여부 논란이 있을 때면 항상 거론되었던 작품은 '수(首)'였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비적'의 정체를 두고 "친일이다"-"아니다"를 놓고 공방을 벌여왔던 것인데, 그 논쟁의 핵심은 '비적'이 과연 '항일 독립군'인가 아니면 말 그대로 '무장을 하고 무리를 지어 살인과 약탈을 일삼은 도둑'인가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박태일 교수는 이에 대해 "비적이 항일세력을 일컫는 총칭인가 민간인에게 범죄를 저지르는 단순한 범법자를 뜻하는 것인가라는 자구 수준에 묶여 있을 일이 아니다"라며 "유치환의 부왜의식 뿐 아니라 타자의 생명에 대한 잔혹한 가학심리까지 눈길을 끌게 하는 작품이 '수(首)'"라고 강조했다.

"만주행도 지사형 도피 아니다"

◇ 유치환의 만주행, 지사형 도피였나? 개인형 도주였나? = 박태일 교수가 '유치환의 친일'에 방점을 찍는 근거는 '대동아 전쟁과 문필가의 각오'라는 글 하나 때문만은 아니다. 그의 만주행에 석연치 않은 점이 많이 발견되고 있다는 점이 또 하나의 이유로 제시되고 있다.

박 교수는 "유치환이 고향을 부리나케 떠나 만주로 솔가해 올라간 것은 흔히 알려져 온 바와 같이 시대적 억압과 왜의 지식인 탄압으로 말미암은 신변위협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지사적 결단이 아니었다"며 "오히려 통영 지역사회 안쪽에 널리 그리고 오래도록 전승되어 오는바, 더는 고향 사회에 머물기 힘들만 한 극히 개인적인 집안 안쪽 문제를 일으켜 급작스레 떠날 수밖에 없었다는 생각이 논리적"이라고 밝힌다.

유치환의 '지사형 도피'가 성립할 수 없는 근거로는 △당시 유치환의 사회적 위치 △유치환에 대한 일제의 전폭적인 호감 △사후 진술에 의존한 과도한 포장 등이 제시되었다.

하지만, 박 교수는 극히 개인적인 집안 안쪽 문제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언급을 피했는데, "사실을 확인해 줄 수 있는 이들이 살아 있으나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밝히기가 쉽지 않다"고 그 이유를 밝혔다.

유치환의 친일을 부정해온 측에서는 그동안 "지사적 도피를 감행한 이가 어찌 만주에서 친일 시를 쓸 수 있느냐?"라는 주장을 펴왔다. 그런데 유치환은 '지사적 도피'를 한 게 아니라 '개인형 도주'를 했고, 만주에서는 '친일'이 명확하게 드러나는 글과 시를 발표해왔다는 주장과 근거가 제시되었다. 앞으로 논란의 향방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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