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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청마의 무덤에 돌을 던지랴) 거제 중아에서 퍼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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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거제 YMCA 댓글 0건 조회 1,103회 작성일 05-12-13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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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청마의 무덤에 돌을 던지랴) 거제 중아에서 퍼옴
글쓴이:거제 YMCA2005-12-13 18:44:31
누가 청마의 무덤에 돌을 던지랴 
이금숙 칼럼위원   거제중앙신문 webmaster@geojenews.com

 
▲ 이금숙 칼럼위원 

바람이 바다소리를 하고 부는 날은/보오얀 사진(沙塵)에 하늘도 산도 안 보이고/슬픈 햇빛은 마음의 한 편만을 비치고/어디를 가도 바다 소리만 들리어/나는 창망한 변두리의 한 개 외로운 바위.

위의 내용은 1천여편이 넘는 청마의 시 중에서 자신을 말없는 바위에 비유한 풍일(風日) 전문이다.

지금은 초등학교로 불리지만 35년 전에는 국민학교로 불렀다. 5학년 자유교양반 특별활동을 하면서 우리나라의 옛 고전과 그리스 신화, 유럽의 고전들을 읽기 시작했던 것 같다. 책이 귀했던 그때는 밤새워 빌려온 책을 읽고 다음날 돌려주며 또 다른 책을 빌려보는 재미로 학교에 갔던 나였다.

그리고 중학생이 되면서 한 여선생님과 일찍 타계하신 고 최주봉 선생님 덕택에 ‘시’라는 것을 쓰기 시작했다. 내가 청마의 시에 매료되기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였다. 물론 바이런과 괴테와 버지니아 울프와 노천명의 ‘사슴’과 윤동주와 소월을 좋아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글을 쓰면서 요즘처럼 시인이란 이유 하나로 울분과 비애감을 느끼기도 처음이다.

최근 통영우체국의 청마우체국 개명운동과 관련하여 불거진 유치환 시인의 친일행적 시비는 사자에 대한 미안함도 미안함이지만 시를 쓰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참으로 슬프고 안타까운 지역문단의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외국을 방문하면 노벨상 수상작가나 대 문호 등 유명예술인들이 묵었던 호텔이나 애용하던 식당, 공원 벤치, 생가, 살았던 곳은 세월이 흐른 모습 그대로 자세한 내용을 덧붙여 관광명소로 꾸며놓고 있다.

물론 거기에는 사상이나 그 사람의 정치성 등은 아예 거론조차 않고 단지 그 시대상과 문학성, 또는 예술성만을 돋보이게 한다. 그런데 요즘 우리나라 현 시국은 어떤가. 권력의 바탕 위에서 엉뚱한 소수집단들이 내건 살생부로 몇십년 전에 작고한 시인의 넋까지 난도질하는 현실을 보면서 시인이 시인이란 이름으로 정말 글을 써도 되는지 선뜻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사적인 개인 감정으로 인해 사자를 친일로 몰고 가는 소위 교수들이라는 지식인들의 행태도 못 봐 주겠고, 그에 편승한 일부 신문들의 왜곡된 보도내용도 읽으면 짜증부터 난다.

청마의 친일의혹에 반발한 지역예술계의 일련의 움직임을 무슨 잘못된 일인양 고발고발 하는 시민단체들도 그렇고 사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언론내용만을 보고 그대로 보고 쓰는 지역신문이나 한 교수의 책 하나에, 사료하나에, 정확한 친일근거도 없으면서 과대포장 하여 친일이라고 몰아세우는 것도 우습고 역겹다.

하지만 얼마 전 통영문협이 주관한 청마추념편지쓰기 대회에서 청마의 친일문제에 대해 반론을 제기한 홍정선 교수 초청강연은 사자에 대한 학문적 반박내용이란 점에서 많은 문학인들이 주목한 강연이었다.

친일의혹을 주장하는 김재용 교수의 연구내용에 조목조목 반박한 홍정선 교수의 강연은 청마를 존경하고 청마 기념관을 건립하고자 하는 거제지역의 문인협회와 예술인들이 예술제 행사기간 동안 청마기념관 건립촉구 서명운동을 할 수 있는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고 그동안 소원해졌던 통영문인들과의 교류의 장도 터놓았다.

96년 봄, 둔덕면에 청마의 묘소를 이장하기 위해 산에 길을 내고 모퉁이 땅 조금을 기부채납해 달라고 하자 “청마가 밥 먹여 주냐”고 어떤 할머니가 노발대발했다지만 그 할머니는 청마가 어떤 분인지를 몰라서 그랬다 치고 지금, 세상을 사는 우리는 무엇이 친일이고 무엇이 반일인지를 구분할 줄 아는 세대들이다.

설령 청마의 싯귀 몇줄에 친일 의혹이 있는 부분이 있다손 쳐도 그것이 그렇게 사자를 욕되게 할 문구이고 사상적으로 문제가 된다는 말인가. 나 역시 그때 글을 쓰는 사람이었다면 청마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리가 이렇게 청마를 사랑하고 친일의혹을 반대하고 있는 것은 반평생 넘게 살아 온 그 분의 삶이 그것을 증명해 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분이 남긴 한편의 시로 앞으로 우리가 살아가는 삶이 윤택해 질 수 있고, 정화될 수 있다면 “청마가 밥 먹여 주냐”는 말은 절대로 하지 못할 것이다. 지금도 나는 청마의 시를 사랑한다. 과거에도 그랬듯이 미래의 내 시적 세계에 청마는 기형도와, 김춘수와, 애드가 앨런 포우처럼 늘 깃발로, 행복으로 되살아 날 것이다.

우리의 문학이나 역사는 권력의 바탕 위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현 정권은 권력으로 역사를 바꾸려 하고 있으나 5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친일행적을 조사하는 것은 지역문인들과 국민들에게 혼란만 가중시킬 뿐이다.

정말 역사를 바로 세우기 위해 친일의혹에 대한 진상조사를 하려면 권력이 아니라 제대로 구성된 역사학자들과 문인, 시민연대들이 공동으로 참여하여 정확한 연구와 검증 위에 재조명되어야 할 것이다.

얼마 전 중앙 일간지에 어느 기자가 쓴 데스크 칼럼 ‘죽은 시인의 비애’라는 글을 읽으면서, 또 통영문협 지부장의 공개 질의서와, 사무국장의 ‘살생부’를 읽으면서, 청마추념편지쓰기 대회에 참석한 소수의 학생들과 그들을 이끌고 온 선생님들의 모습에서, 또는 기념관 건립을 촉구하는 서명서에 서명을 하는 관광객들을 보면서 이들의 가슴이 청마를 존경하고 사랑하는 내 가슴보다도 훨씬 더 뜨겁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연일 청마의 친일행적을 조사하고 혹여 먼지하나 티끌하나라도 찾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한심스런 사람들을 보며 ‘문화 인프라’가 무엇인지, 왜 유명예술인들의 고향을 문화촌이나 그 이름을 딴 역이나, 공연장소로 만들려고 하는지 생각해 보기를 거듭 촉구한다.

특히 이번 친일 문제로 인해 엉뚱하게 기념관 건립을 위한 설계까지 마쳐놓고 공사를 더 이상 진행하지 못하고 있는 거제시가 청마의 친일의혹으로 기념관을 건립하지 못하는 가슴아픈 일이 없기를 지역문인의 한 사람으로 바랄 뿐이다.

청하건데 친일을 주장하는 단체들이 왜 우리가 한마음이 되어 후대에 물려줄 문화예술인들의 기념관을 건립하고 복원하려 하는지, 꼭 실현하지 않으면 안되는 사업에 목을 매달고 이렇게 힘든 싸움 아닌 싸움을 하려 하는지, 후일 우리의 후세들이 우리의 작품에 또 어떤 면죄부나 살생부를 펼쳐 놓을지를 생각하면서 청마의 친일의혹에 더 이상의 논란이 없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2004년 10월 22일 (15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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