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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대 만주 ‘비적=독립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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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도민일보 댓글 0건 조회 583회 작성일 05-12-13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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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도민일보
1940년대 만주 ‘비적=독립군’
2005-12-13 17:30:58
1940년대 만주 ‘비적=독립군’

김훤주 기자 / pole@dominilbo.com


유치환 거주지역 일본 관동군 작전지도 공개

유치환(1908~67) 시인이 근무했다는 협화회가 있던 빈강성 하얼빈시와 유 시인이 농장을 경영했다는 연수현을 둘러싼 일대 곳곳에 항일 무장 집단이 포진해 있었음을 일러주는 작전 지도가 공개됐다.

일제 시대 행적의 친일성을 지적받고 있는 유치환 시인이 쓴 시 ‘수(首)’에 나오는 ‘비적(匪賊)의 머리 두 개’가 단순한 도적 무리가 아니라 항일 무장 세력의 것임을 방증하는 자료인 셈이다.

지난달 유치환 시인이 친일 만주국 국가조직인 하얼빈 협화회에 근무했다는 기록을 찾아내 발표했던 교육부 국사편찬위원회 전갑생 사료조사위원이 이번에는 비적(匪賊) 토벌을 위한 일본 관동군의 1941년 작전 지도를 공개했다.

전 위원이 일본 공문서관에서 찾아낸 이 지도에는 다섯 개 철로가 만나는 하얼빈시가 표시돼 있고 동남쪽으로 조금 떨어진 데에 연수현이 자리잡고 있다.

이와 함께 빗금친 동그라미로 토벌 대상인 항일 무장 집단도 표시돼 있는데 하얼빈 서쪽과 북쪽에 하나씩, 그리고 하얼빈 동남쪽(연수현 남쪽)에 여섯 개 정도 나타나 있다.

이는 일본 육군성이 낸 <육만밀대일기(陸滿密大日記)> 8호 속의 ‘4월 공산비군 태세 요도의 건(4月に於ける共産匪軍態勢要圖の件)’에 들어 있는 것이다. 전 위원은 “이 자료에 따르면 41년 3월 29일 토벌 작전이 있었으며 하얼빈 서쪽은 만비, 북쪽은 중국 공산당 팔로군, 동남쪽은 중국 공산당 일로군이었다”고 말했다.

여기 나오는 중국 공산당 군대의 경우, 만철사원회가 펴낸 <만주사전>(1939년판) 103쪽에 따르면 ‘홍비(紅匪)’라 하는데 조선인이 가장 많고 국경 지대에서 가장 완강하며 마지막까지 남아 있었다.

이 책은 이어 “만주사변(31년 9월 18일) 이후 옛 동북군이 패하고 남은 ‘병비(兵匪)’가 각지에서 봉기해 한 때 30만을 헤아렸으나 지금은 차츰 줄어 없어졌다”고 적고 있다.

(‘紅匪’と稱する共産黨匪賊があつて, この中には 朝鮮人が最も多く, 現在でも國境地方にはこの種のものが最も頑强であり, 滿洲國になつて最後殘つたのがこれである. 尙滿洲事變後舊東北軍が敗殘して‘兵匪’となつて各地に蜂起し, 一時三十萬を數へたが, 現在は次弟に減少して兵匪’と稱すへき匪團はなくなつておる.)

이들 기록에 따르면 유치환 시인이 1940년대 활동한 연수현이나 하얼빈 일대는 중국인과 조선인의 항일 무장 투쟁이 활발하게 벌어진 지역이며 이른바 마적이나 병비는 이미 거의 없어졌다.

유 시인은 1040년 6월부터 45년까지 연수현에서 자유이민촌 가신흥농회 농장을 경영했고 하얼빈 협화회에 근무했다고도 돼 있으며 <국민문학> 42년 3월호에서 ‘수’를 통해 “이 적은 가성(街城) 네거리에/ 비적의 머리 두 개 높이 걸려 있나니/ …/ 질서를 보전하려면 인명도 계구(鷄拘·닭 개)와 같을 수 있도다”고 읊었다.

이를 두고 통영문협 정해룡 회장은 지난 7월 <한산신문> 기고문에서 “비적이 독립군이라는 주장을 관철시키려면 ‘일본 정부 문서 보관 창고’에서 당시 북만주에서 비적을 독립군이라 불렀는지, 가성 네거리에 효수된 머리 두 개는 누구의 것인지 찾아내야 한다”, “오족(일본 조선 만주 한족 러시안 - 러시안은 몽골족의 잘못)이 사는 북만주 사회에서 자국민의 안녕과 질서를 크게 해치고 온갖 만행을 일삼는 비적(마적·유적·적수적 등 만주 이전 청나라 때부터 있어온 도적떼)을 처형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런 율(律)의 집행”이라 주장했다.

이에 대해 전갑생 위원은 10일 “문제의 지도와 <만주사전>의 비적 규정은 모두 (정 회장이 말한) 일본 정부 문서 보관 창고인 ‘일본 국립 공문서관’에서 찾아냈다. 이를 보면 비적은 당시 일상 용어로 항일 무장 집단을 일컬었음을 바로 알 수 있다”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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