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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두남기념관 개관,쟁점은 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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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주완 댓글 0건 조회 1,385회 작성일 03-06-06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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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두남기념관 개관,쟁점은 뭔가
글쓴이:김주완2003-06-06 14:17:00
이슈]조두남 기념관 개관, 쟁점은 뭔가


김주완 기자 / wan@dominilbo.com



 
검증은 없고 공감대는 더욱 없다

조두남기념관 개관을 둘러싼 논란이 급기야 ‘시국사건’으로 비화되고 있다. 경찰이 개관 반대시위를 한 시민단체 인사들에 대해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련 법률 위반’이란 무시무시한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하는 사태에까지 이른 것이다.

그들이 무슨 ‘이적행위’를 한 것도 아니고 사적인 욕심을 채우기 위한 것도 아니었다는 점에서 영장 신청 자체도 기념관 논란 못지않게 논란을 빚을 것으로 보인다.

이 문제는 기본적으로 역사를 어떻게 기념하고 계승할 것인가 하는 관점의 차이에서 비롯됐다. 이번 조두남 논란의 쟁점을 살펴봤다.

◇<선구자> 가사는 조작된 것인가

마산시가 10억여 원의 예산을 들여 건립한 조두남기념관에는 중국 용정의 ‘일송정’을 재현한 정자가 서 있다. 일송정은 가곡 <선구자>를 가장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단어이다. 이처럼 <선구자>는 조두남기념관 건립의 당위성을 웅변하는 가장 큰 명분이다.

흔히 <선구자>는 만주에서 일제와 싸우던 독립운동가의 웅장한 기상을 노래한 곡으로 알려져 있다. 작곡자인 조두남씨 스스로도 그렇게 자신의 글에서 밝혔고, 마산시가 개설한 인터넷 ‘조두남기념관’(http://art.cybermasan.net/tc2/jodunam/index.jsp)에도 그렇게 되어 있다. 인터넷 기념관을 방문하면 첫 화면에서 <선구자>노래와 가사가 플래시 화면으로 나오는 것도 이 까닭이다. 거기엔 이런 설명이 붙어 있다.

“윤해영(작사자)은 조두남에게 용정에서의 동포들의 고생과 독립 운동 상황을 소상하게 들려주었다. 조두남은 윤해영의 시에 감격하여, “내 민족이 함께 조국의 광복을 기다리고 희망을 잃지 않으며 부를 수 있는 노래를 만들어 달라”는 부탁을 남긴 그 소원에 응하기 위해서 젊은 정열을 기울여 작곡에 착수했다.”

조두남 자신도 수상집에서 그렇게 밝혔다. 작사자 윤해영을 “초췌하지만 형형한 눈빛이 독립운동가임을 알 있게 했던 청년은…조국광복을 기다리는 노래를 꼭 지어달라는 한 마디를 남기고 떠난 그는 내 곁에 결코 나타나지 않았다”고 적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이 말은 거짓말인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선구자>를 작사했다는 윤해영씨가 독립운동가이기는커녕 적극적인 친일문인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그는 <발해고지> <해란강> <사계> <오랑캐고개> <낙토만주> 등 친일시를 지었고, 만주국의 친일조직인 협화협회에서 활동한 것으로 확인됐다. 심지어 그가 지은 친일시 <낙토만주>에는 ‘오색기 너울너울 낙토만주 부른다(중략) 우리는 이 나라에 터를 닦는 선구자’라는 말까지 나온다. 오색기는 일제의 괴뢰국인 만주국의 국기이며, 윤해영은 이 괴뢰국가에서 터를 닦는 친일파를 ‘선구자’로 표현했던 것이다.

또 가곡 <선구자>의 해방전 제목은 <용정의 노래>였으며, 해방이 되자 조두남이 가사를 일부 바꾸고 제목도 바꾼 사실이 확인됐다. 가사의 어느 부분을 바꿨는지는 밝히지 않았지만, 그와 함께 만주에서 음악활동을 함께 했던 김종화씨의 증언에 따르면 원래 가사에는 ‘활을 쏘던 선구자’‘조국을 찾겠노라 맹세하던 선구자’ 등의 독립운동가를 암시하는 문구가 없었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선구자>는 지난 92년 임정선열 5위 영결제전 때 조가로 선정됐다가 독립운동 유관단체 등의 격렬한 반대로 취소되기도 했다고 당시 <한국일보>는 전하고 있다.

◇조두남은 과연 친일파인가?

<선구자>의 작사자 윤해영씨가 친일파라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작곡가인 조두남의 친일여부는 증언으로만 존재할 뿐 아직 구체적인 기록이나 자료에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그와 함께 음악활동을 했다는 연변의 원로음악가 김종화씨에 따르면 조두남은 <징병제 만세> <황국의 어머니>란 친일노래를 작곡했다고 한다. 또한 그는 “1944년 조선 청진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남양 골목에 나붙은 무슨 악극단의 포스터를 보았는데 조두남 작곡으로 된 <간첩은 날뛴다>였다”며 “이를 보고 공연을 관람하게 됐는데 내용은 ‘간첩’들이 경찰서를 치는 것을 주의하고 미리 막아야 한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여기에서 말한 간첩이란 항일세력이었으니 <징병제 만세>와 다를 바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증언만으로 조두남을 곧바로 ‘친일파’ 또는 ‘반민족행위자’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또한 이 증언을 그대로 믿는다고 해도 친일파로 규정하기엔 곤란하다. 이른바 ‘적극적인 친일’인지, ‘먹고 살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친일’인지를 구별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면 왜 이 문제가 논란이 되고 있을까. 그건 마산시가 그의 기념관을 지었기 때문이다. 시민의 세금으로 기념관만 짓지 않았어도 그의 친일의혹은 별로 문제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적어도 기념관을 지을 정도의 인물이라면 ‘적극적인 친일파’의 범주에 들지 않는 인물이라도 반드시 검증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검증절차를 거치지 않고 기념관을 건립하고 개관을 강행했다는 것은 결국 마산시의 책임이다.

◇조두남은 독재에 협조했나

마지막으로 쟁점이 되는 것은 그의 독재정권 협력 혐의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5·16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정권에 대한 협력 혐의다. 인터넷 조두남 기념관의 ‘선생의 일생’을 보면 그가 50살 되던 62년 한국예총마산시지부를 결성해 초대지부장을 맡은 것으로 나와 있다. 이후 그는 줄곧 7년간(68년) 지부장을 맡았고, 사임 후에는 고문을 역임한 것으로 돼 있다.

알다시피 예총은 박정희 정권이 문화예술인들을 통제하기 위해 만든 단체다. 김태훈 전 경남도민일보 문화부 기자는 예총의 태생적 한계를 이렇게 써놓고 있다.

“1961년 5·16 군사쿠데타를 기점으로 그때까지 존재하던 모든 문화단체는 군사정권 하에서 ‘자진해산’이라는 형식으로 강제 해체됐고, 6개월여 지난 12월 5일 공보부와 문교부 주선으로 문화예술인 30여 명이 모여 예술인간의 친목도모와 권익옹호를 목적으로 하는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결성을 의결하면서 건축·국악·무용·문학·미술·사진·연극·연예·영화·음악 등 10개 협회가 만들어졌다. 이들 협회가 1962년 1월 5일 ‘국회의사당’에 모여 창립총회를 마치고 유치진을 초대회장으로 선출함으로써 예총의 역사는 시작됐다.”

이에 따라 김 기자는 “일련의 진행과정을 봐서 알 수 있듯이 정통성이 아쉬웠던 당시의 군사정부는 가장 제멋대로인 예술인들을 통제함으로써 정권 선전에 동원하고 싶었을 것이다. 이후 정부의 문화예술지원은 “예술계를 대표한다”는 구실로 거의 전적으로 예총에 집중됐고, 예총 또한 정부의 거국적인 행사에 앞장서서 참가해 춤과 노래로 봉사함으로써 그 은혜에 보답했다”고 분석했다.

◇공과를 함께 기록하면 안되나

마산시는 희망연대의 문제제기에 대해 “나중에라도 조두남의 친일행적이 확인되면 그것까지 함께 기록·전시하면 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른바 공(功)과 과(過)를 함께 기념하면 되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터무니없는 논리이다. 만일 그런 논리대로라면 유명하고 출세한 인물이라면 모두 기념관을 세금으로 지을 수 있다는 말이 된다. 하물며 역사의 죄인이라도 나름대로 공(功)은 있게 마련이고, 사람에 따라 평가가 엇갈릴 수밖에 없다. 국민의 세금으로 기념관을 지어 계승할 정도의 인물이라면 적어도 그의 인물됨에 대해 전국민적 공감대가 있어야 한다. 공과에 대한 찬반이 엇갈리고 있는 인물이라면 앞으로도 이런 불상사는 계속해서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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