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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환 일제 관변조직 ‘만주협화회’ 근무기록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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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도민일보 댓글 0건 조회 851회 작성일 05-12-13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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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도민일보2005-12-13 15:55:13
유치환 일제 관변조직 ‘만주협화회’ 근무기록 발견

김훤주 기자 / pole@dominilbo.com




국립중앙도서관에서 발견된 청마 유치환의 협화회 근무 기록. ‘하얼빈 협화회에서 근무’라고 적혀있다.
전갑생씨 공개...국립중앙도서관 <조선시집>서 약력밝혀

청마 유치환(1908~67년)시인이 일제 시대 만주 ‘협화회’에서 근무했다는 기록이 국립중앙도서관에서 발견됐다. 청마의 경우 만주에서 농장을 경영했다는 사실은 예전부터 알려져 있었으나 협화회 근무 기록이 대중적으로 확인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이자 경남 근현대사연구회 연구원인 전갑생(거제시 능포동)씨는 14일 “3년 전 국립 중앙 도서관에서 김소운씨가 번역·편집한 <조선시집>(중기) 사본을 입수했다. 여기서 청마의 협화회 근무 기록을 찾아냈고 최근 청마 친일 논란이 불거지는 바람에 내놓게 됐다”고 말했다.

시집 328쪽에는 ‘유치환 호 청마. 메이지 41년생. 경성 연희전문 중퇴. 주식회사의 사무원, 사립 중학 교원, 또는 사진관 경영 등. 현재는 북만(北滿)의 벽지 자유 이민촌에서 농장을 경영하는 한편, 하얼빈 협화회에 근무’라고 적혀 있다.

협화회는 꼭두각시 정부인 만주 제국을 통치하기 위해 일제가 1932년 만든 조직으로 국가기구 성격을 띠는 관변 단체였다.

발견한 전갑생씨 “직접적 선전활동 증거”

만주 제국은 당시 ‘오족 협화’를 크게 내세웠는데 오족은 중국·만주·몽골·일본·조선 다섯 겨레를 뜻하며 협화란 바로 협동과 화합이다.

이에 대해 전갑생씨는 “협화회는 태생 자체가 일제를 위한 것이었으며 청마가 근무한 기록이 있는 <조선시집>의 발간 시점에는 이른바 태평양 전쟁에 따라 전시 국민 총동원 체제 성격이 더욱 뚜렷했다”고 설명했다.

<조선시집>은 경성일보사에 1929년 들어가 매일신보(조선총독부 한글판 기관지) 학예면을 맡고 있던 김소운씨가 1943년 당시 식민지 시인들의 작품을 전기 중기 후기로 나눠 세 권으로 출판했는데 청마 관련 기록은 중기에 나온다.

청마와 함께 작품이 실린 시인은 임화와 김대준을 비롯해 김기림·김태오·모윤숙·임학수·조중흡·이찬·김윤식·박용철·허보·이하윤·신석정·이육사·백석·김대봉·김광섭·김상용·오희병·이상·유창선·김용제 23명으로 친일과 항일을 아우르고 있다. 청마는 여기에 ‘깃발’과 ‘동해안에서’, ‘고양이’ 등 9편을 실었다.

이 시집을 편역한 김소운씨는 책머리에 놓인 ‘각서(覺書)’에서 작품과 약력·사진을 받은 경위를 밝히고 있는데 이에 따르면 문제의 약력을 청마가 손수 작성했을 개연성도 적지 않다. 책 4~5쪽에 “차선책으로 작가 개인에게 자선(自選)을 맡기는 일이었다. 그러나 주소를 찾는데 괴로웠다. 조선문인협회 명부에는 시인의 태반이 없었고 그 또한 이동이 심했다. 눈물을 머금고 재조사했다. (중략) (안내문 발송 이후) 태반이 무소식이었다. 다시 두 가지 인쇄물을 보냈고 마지막에는 대여섯 시인에게 독촉 전보를 보냈다”고 써 놓은 것이다.

자료를 공개한 전갑생씨는 “‘협화회 근무’란 월급을 받고 직원으로 일했다는 것이고 이는 협화회를 통해 일제 동화(同化)를 직접 선전 활동을 벌인 것이 된다”며 “개인적으로는 적극적 친일로 보지만 아무리 양보해도 친일 행적인 것만큼은 분명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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