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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首)」 새롭게 들여다 보기 - 친일은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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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친일청산 댓글 0건 조회 871회 작성일 04-11-02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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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首)」 새롭게 들여다 보기 - 친일은 가라
글쓴이:친일청산2004-11-02 11:32:00
청마의 시 「수(首)」 새롭게 들여다 보기 - 친일은 가라



▶정해룡<시인, 통영문인협회장>
시인 청마.
이렇게 그의 이름을 조용히 불러보면 ‘깃발’, ‘그리움’, ‘행복’이란 시가 떠오르고 다문 입이 저절로 벌어져 그의 시를 저도 모르게 주절주절 낭송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만큼 청마는 우리 곁에서 우리의 뜨거운 사랑을 받아온 우리나라에서 몇 안되는 시인 중의 한사람이다.

그런 시인을 친일파라니! 친일문학인이라니!
유감스럽고 개탄스러운 것은 다른 곳도 아닌 청마의 고향 땅 통영에서 청마를 친일분자로 몰아 그의 명예를 먹칠하고 유가족에게 깊은 상처를 준 일이 있다. 그리고 함량미달의 교수나 학자들이 자신의 공명을 위해서인지 청마의 시를 자의적으로 친일시로 왜곡하고 있다. 청마에게 무슨 억한심정이 있어 그렇게 하는지 알수 없으나 청마의 시 수(首)를 두고 친일시라고 주장하니 어이가 없다. 상식적으로 친일시라면 적어도 일본과 천황을 위해 찬양, 찬미, 흠모, 흠숭, 격려, 고무, 선동 따위의 시어나 시구가 들어 있어야 하고 그 표현 방식도 직설적이고 직유법이어야 한다. 청마의 시 수 어디에 그런 친일이란 시어, 시구가 있단 말인가?

작품 수의 해설에 앞서 이 시를 쓰게 된 당시의 그를 둘러싼 시대적, 자연적 배경을 살펴 보아야 한다. 한편의 시를 이해함에 있어 시인의 살아온 전기적인 삶을 꼭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니나 이 작품만큼은 알아볼 필요가 있다 하겠다.

청마가 만주에 머물던 시기는 인간이 놓여있고 인간을 에워 싼 주위환경의 영향력에 더 많이 의존하던, 인간이 만든 문명사회의 법도가 잘 미치지 않는 북만주, 법보다 원시자연 시대에서부터 있어온 피의 법도 즉, 하나에는 둘을 되갚는 원시적 복수수단이 횡행했던 곳이다. 인간이 기초적으로 누려야 할 최소한의 문화적, 사회적, 경제적인 제반 환경이 열악하고 극도로 제한되어 있었고 그나마도 일본족, 만주족, 한족, 백계 러시아인, 조선족 중 제일로 괄시와 천대를 받던 나라 잃은 백성으로서의 청마는 자신이 할 수 있었던 정당할 유일의 길은 살아남기 위해서는 원수처럼, 원수 이상으로 굳세어야 한다는 준렬한 결의를 가지는 일이라고 했다. 작품 수에 있어서 눈여겨 볼 시어는 비적, 삭북, 사악, 율, 계구, 피의 법도, 끝내, 이며 시인이 이 시를 통해 무엇을 말하려고 한 것인지를 알아내어야 한다.

十二月의 북만 눈도 안오고
오직 만물을 가각하는 흑룡강 말라빠진 바람에 헐벗은
이 적은 街城 네거리에
비적의 머리 두개 높이 내걸려 있나니

청마의 이 시를 친일시라고 주장하는 측에서 내세우는 근거는 ‘비적의 머리 두개’가 독립군의 머리라는 것이다. 당시 일제는 독립군 전체를 비적이라 불렀고 (공산주의자를 공비, 조선 독립군은 선비, 만주본토인을 토비 등등) 청마는 이 비적의 머리를 질책과 힐난을 했으니 바로 친일이라는 것이다.

그럼 비적에 대해서 알아보자.
비적이란 무엇인가?
글자그대로 떼를 지어 다니면서 살인 약탈을 일삼는 도둑의 무리(민중서관 발행국어대사전 p1212. - 비적을 독립군으로 불리워졌거나 그러한 개연성이 있으면 국어 대사전에 어떤 형태로든지 기술을 해 두는데 전혀 그런 표현은 없음)이다.

만약, 비적을 독립군이란 주장을 관철시키려면 ‘일본정부문서보관창고’에 가서 그 당시 북만주에서 비적을 독립군이라고 불렸는지, 그 때 가성 네거리에 효수된 머리 두개는 누구누구의 머리인지 기록되어 있을 것이니 그것을 찾아내어서 그 주장을 입증해야 객관적인 타당성이 확보될 것이다. 그렇지 않고 비적이 독립군이다 라고 애매모호하게 흘리는 것은 설득력을 얻기 힘든 주장이다.

그 검푸른 얼굴은 말라 소년 같이 적고
반쯤 뜬 눈은
먼 寒天에 모호히 저물은 朔北의 山河을 바라보고 있도다

여기에서 대단히 중요하고 주목할 것은 여지껏 이 시를 해설한 문학평론가들이나 청마를 친일 운운하는 이들이 간과하고 놓친 부분이 바로 삭북(朔北)이다.

반쯤 뜬 눈이 바라보는 방향은 분명 삭북(북방)이다. 청마가 이 시에서 왜 삭북이란 단어를 장치해 놓았느냐 하면은 오늘날처럼 친일시비가 일어날 것을 마치 예견이라도 한 것처럼 효수된 머리 두개가 죽어서도 자신의 고향을 바라보고 죽겠다는 방향 설정(삭북) 즉 북쪽인지, 남쪽인지를 분명히 밝히고 있다.

죽으면서 자신의 고향을 바라보는 귀소본능을 강하게 어필하고 있다. 만약, 남쪽을 바라보고 있었다고 했으면 조선 독립군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겠지만 북만주에서도 북방(삭북)을 바라보고 있다고 했으니 이는 분명코 만주족 또는 한족으로 봄이 매우 설득력이 있고 타당하다고 본다. 그렇다면 이는 양민을 학살, 방화, 강간, 강도질하여 사회로부터 영원히 격리되어야 하는 공공의 적이 분명하다는, 비적이라는 표현의 또 다른 메타포(은유)임이 틀림없다.

너희 죽어 율의 처단의 어떠함을 알았느뇨.
이는 四惡이 아니라
질서를 보존하려면 인명도 鷄狗와 같을 수 있도다.

율(律, 법)은 일본의 법이고 일본의 질서를 보존하기 위해서는 사람 목숨도 닭이나 개처럼 죽일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하여 작품 수를 단순히 친일시라고 하는 측의 또 다른 근거로 내세우나, 여기에서 율은 그 당시 북만주의 오족을 (일본족, 조선족, 만주족, 한족, 러시안) 실제적으로 지배하던 일본족의 법을 말 함이다. 드넓고 광활한 만주의 치안유지는 일본 경찰이나 헌병이 했을 것이고 그 우선순위는 자국의 정책수행과 자국민의 보호에 두었을 것이다. 오족이 사는 북만주 사회에서 자국민의 안녕과 질서를 크게 해치고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온갖 만행을 일삼는 비적(마적, 유적, 적수적 등 만주이전 청나라 때부터 있어온 도적떼)을 붙잡아 처형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런 율의 집행이라 보아진다.

일제시대라도 민생치안의 법이 분명 있었을 터이고 다수(오족)의 공공질서와 안녕을 해하는, 사람의 목숨을 파리 목숨보다 하찮게 여기는 비적에 대해서 당연히 붙잡아 법집행의 엄격함과 준렬함을 내 세우는 것은 일제 지배세력이 취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방편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떼도둑 즉 비적은 四惡(논어에 나옴. 자장이 공자에게 “어떻게 해야 정치에 종사할 수 있습니까?” 묻자 공자가 “다섯 가지 아름다움을 높이고 네가지 악을 물리치면 정치에 종사할 수 있을 것이다.” 했는데, 이 네가지 악은, 가르치지 않고 죄를 지었을 때 죽이는 것을 잔학, 계고하지 않고 완성하기를 바라는 것을 난폭, 명령을 태만히 하고 기약을 재촉하는 것을 적해, 사람들에게 똑같이 줄 것을 가지고 출납을 인색하는 것을 유사라 했는데 이것을 四惡)에 해당하는 죄가 아니라 그 이상의 죄, 즉 사악에 해당해도 큰 벌을 받는데 하물며 살인 방화 강도 강간 등 인륜을 저버린 죄를 지었으니 법(율)에 의해 죽어 마땅한 죄라는 뜻이다.
이는 롬브로조(Lombroso, 이태리)가 일찍이 범죄는 생래적으로 정해진다고 갈파했는데 비적은 아무리 교화하고 인도하고 베풀어도 타고난 생래적으로 범죄를 저지를 수밖에 없는 인간 무리의 집단이란 뜻이다.

문명사회에서도 전과가 수십번이나 되어 평생을 감옥에서 보내거나 사형당한 생래적 범죄자가 얼마나 많은가! 하물며 치안 부재상태였던 북만주에 있었으랴! 실제로 장학량(장개석을 납치)도 마적이었고 군인들도 낮에는 군인, 밤에는 도적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다(청마 유치환 평전, 문덕수). 그러한 무도한 짓거리를 한 비적을 붙잡아 죄를 물어 효수한 후 내걸린 머리를 보고 죽어 마땅하다고 한 것이 인명도 계구와 같다는 표현이다. 얼마나 자연스러운 표현인가.

혹은 너의 삶은 즉시
나의 죽음의 위험을 의미함이었으리니
힘으로써 힘을 제거함
또한 먼 원시에서 이어 온 피의 법도로다

여기에 오면은 비적은 비적일 뿐이라는 사실이 명약관화해진다. 내 목숨을 노리는, 내 가족을 노리는, 내 이웃을 노리는 비적이 존재하는 한 한시라도 마음 편하게 살수 없을 것이란 것은 자명한 일. 그런 비적의 존재는 나를 포함한 내 공동체 전체의 불행이거나 비적을 물리치기 위해서는 까마득한 원시시대에서부터 이어온 피의 법도, 즉 힘에는 힘, 주먹에는 주먹, 붙잡아 효수하는 것 밖에 더 있었겠는가!

그 법 집행을 북만주를 실제적으로 지배한 일본이 했다는 것뿐이지, 만약에 러시아인들이 북만주를 실제로 지배했을때 그런 표현을 했다고 하여 청마더러 친러했다고 할 수 있겠는가?

내 이 각박한 거리를 가며
다시금 생명의 험렬함과 그 결의를 깨닫노니
끝내 다스릴 수 없던 무뢰한 넋이여 명목하라
아아 이 불모한 사변의 풍경위에
하늘이여 은혜하여 눈이라도 함빡 내리고 지고!

수의 끝 부분은 청마의 본령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온갖 만행을 저질러 사람 사는 세상에서는 끝끝내 사람이기를 포기한, 아마도 처음 몇 번은 붙잡아서 풀어 주고 관용을 베풀어 주었을 것이란 것을 쉽게 알 수 있는 대목이 - 끝내 다스릴 수 없던 무뢰한 -에서 알 수 있다. 붙잡아서 얼마간 죄 값을 받게 한 후 풀어 주면 똑같은 짓을 되풀이 하고, 또 풀어주면 이번에 더 큰 죄를 짓는 비적을 붙잡아 효수한 후 가성 네거리에 높이 메단 머리 두개를 보고(청마의 세 자녀도 함께 보았고 비적이라고 기자회견에서 진술) 청마는 한편으로는 인륜을 저버린 도적에게 꾸짖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가슴 아파하면서 하늘이여 저 불쌍하고 가련한 죄인들에게 자비의 손길을 구하듯 은혜하여 눈이라도 펑펑 내려 주기를 기도하고 있는 것이다. 이 얼마나 인간적인 표현인가. 한편의 영상기록을 보듯 사실적인 이 작품에 왜 친일이나 독립군이 끼어드는지 도무지 알다가 모를 일이다.



정해룡 hannews@chol.com 
(2004-07-09 오후 4:35:47 입력 /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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