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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심한 논쟁은 하고 싶지 않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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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정철 댓글 0건 조회 847회 작성일 03-09-18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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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심한 논쟁은 하고 싶지 않다만...
글쓴이:강정철2003-09-18 23:55:00
한심한 논쟁은 하고 싶지 않지만



-2천만 원에 육박하는 예산을 들여 장장 4박 5일간의 중국 연변 현지 조사활동에도 불구하고, 조두남 선생의 친일행적에 대한 구체적인 물증도 확보하지 못한 가운데, 유일한 증거의 배경이 되었던 중국 동포 유연산씨가 펴낸 '만주 아리랑'이란 책의 취재원인 연변 원로 음악가인 김종화씨 마저 "조두남 선생은 민족의 얼을 지킨 사람이었다"는 증언을 한 사실이 확인됐는가 하면, 유연산씨 자신이 손수 책임편집 해 중국현지에서 출판된 책에서는 조두남 선생을 '투철한 항일민족정신의 보유자'라고 극찬한 내용이 발견됐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김욱 기자의 눈에는 정말 중요한 말이 왜 눈에 뜨이지 않았을까? 김종화 선생 증언의 핵심은 조두남이 재만시절 친일노래도 작곡했다는 것이다. "당시를 살아온 문인들 중에는 일제의 강압정치에 억눌려서 민족의 양심을 저버린 사람이 한둘이 아니랍니다. 조두남 선생도 <징병제 만세>, <황국의 어머니>라는 노래를 만들었습니다. 조두남 작곡의 <간첩은 날뛴다>라는 소가극 제목의 간첩이란 반일세력이었으니 <징병제 만세>와 다를 바 없는 것입니다" (만주 아리랑 89쪽)
즉, 김종화 증언의 요지는 조두남도 민족의 양심을 저버린 사람이었다는 말이다.

* 조사단의 일정은 4박5일이 아니라 5박6일 이었고, 조사단의 인원은 지원 팀으로 따라간 시청직원 2인 까지 포함해 모두 10명이었다. 지금 이시간까지 시청에서 경비 정산을 끝마치치 못했기 때문에 정확한 경비는 알 수 없다고 한다. 다만 악천후로 인한 비행기 노선 변경 등으로 추가된 비용 200만원을 더 추가한다해도 2천만원이란 표현은 과장된 것이라고 시청의 담당 공무원인 정성철 계장이 밝혔다.


-이에 따라 조두남 선생의 친일행적을 강하게 제기하며, 기념관 개관식장에서 밀가루를 투척한 시민단체와 일부 언론의 비난에 못 이겨 수천만 원의 예산을 들여 중국 현지 조사활동에 나선 마산시도 비난을 면키 어려울 전망이다.-


기자는 사실을 왜곡하지 말라. 소위 '밀가루 투척사건'의 직접동기는 희망연대와 마산시장 사이에 합의된 '선 증언확인조사, 후 기념관 개관 여부 결정'에 대하여 마산시장이 수 차례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끝내는 무장경찰까지 동원하여 개관식을 강행한데 따른 항의였다.
그리고 현지확인 조사는 기념관 건립의 주체인 마산시가 이미 스스로 해야 할 일이었다.
그러나 이번의 공동조사는 그동안 마산시가 저지른 기만적 행위에 대한 여론이 악화되자 뒤늦게 약속을 이행한 것으로 순서가 매우 잘못되기는 했지만 시로선 당연히 하여야 할 일을 하였을 뿐이다.

-유씨는 이 책에서 '32년 키가 작고 함경도 말을 쓰는 한 젊은 이(윤해영 선생)가 만주 하얼빈에 살고 있는 내 집을 찾아와 시 한편 내놓으며 곡을 붙여 달라고 해 작곡을 해놓고 기다렸으나 끝내 나타나지 않았으며, 주고 간 시의 내용으로 보아 그는 독립군이었을 것으로 예상할 수 있으며 어디선가 전사했을 것'이라는 조두남 선생의 자서전 일부를 소개하며, "이 모든 것을 역사의 진실로 고스란히 받아 안을 수만 있다면 참으로 민족적 자부심을 불러일으킬 만한 전설적인 이야기라 하겠지만 역사는 무정한 바, 사실을 떠난 욕망으로 진실을 대체할 수 없다"는 평가로 조두남 선생의 자서전을 폄하했다. 특히 유씨는 김종화 선생의 말을 빌어 조두남 선생이 '마약 중독 상태에서 연주활동을 펼친 '약침쟁이'였음도 폭로했다. -


유연산씨는 다만 조두남 자신이 집필한 자서전의 내용을 인용했을 따름이다. 도대체 무엇을 보고서 조두남 선생의 자서전을 폄하했다고 하는가? 기자의 독해력에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참고로, 유씨는 <만주 아리랑>에서,
"...(전략)... 노래와 함께 더욱 유명해진 조두남 선생은 1975년 이 곡명을 따서『선구자』라는 수필집을 낸 바 있다. 이 책에서 조두남 선생은 <선구자>의 창작 경위에 대해 이렇게 적었다.


'윤해영은 1932년 내가 만주 하얼빈에 살고 있을 때, 나를 찾아 왔다. 키가 작고 마른 체격에 함경도 말씨를 쓰는 그는 시 한 편을 내놓으며 곡을 붙여달라고 하고는 표연히 사라져 버렸다. 그가 그 노래를 곧 찾으러 오겠다고 했기에 나는 작곡을 해놓고 기다렸으나 그 청년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주고 간 시의 내용으로 보아 그는 독립군이었던 것으로 보이며 나에게 왔다 간 뒤 어쩌면 어디선가 전사했을 것이다.'


조두남은 <선구자>를 1932년에 창작하였다고 한다. 작사자 윤해영과는 잠깐 만나 통성명이나 한 정도의 초면이고 한번 만난 뒤로는 다시는 상봉하지 못했단다. 그리고 작사자 윤해영은 독립군이라는 추측을 덧붙였다. 참으로 민족적 자부심을 불러일으킬 만한 전설적인 이야기라 하겠다. 이 모든 것을 역사의 진실로 고스란히 받아 안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하지만 역사는 무정한 바 사실을 떠난 욕망으로 진실을 대체할 수 없다."(만주 아리랑 84쪽)


이것이 조두남 자서전을 인용했거나 요약 설명한 부분이다. 자서전을 폄하했다는 말은 이치에 맞지도 않고 사실도 아니다.
이어 김기자는 '유씨는 김종화 선생의 말을 빌어 조두남 선생이 '마약 중독 상태에서 연주활동을 펼친 '약침쟁이'였음도 폭로했다'고 하는 데 사실 그대로를 말한 증언자의 증언을 '폭로'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정말 마땅치 않은 표현이다. 조두남이 한때 마약중독자였다는 것은 "내가 조두남을 가장 잘 아는 오랜 친구"라고 자신을 소개한 '김영수씨(조두남의 수상집 두 권의 후기를 쓴 사람)도 들어서 알고 있다고 하였다.


다만, 유연산씨는 <그리움>을 <선구자>로 착각한 듯 하다. '조두남 수상집 <先驅者, 1975년 8월 10일 세광출판사 발행>에는 작사자에 대한 언급이 없다. '조두남 제2수상집 <그리움, -작곡가 조두남의 인간과 음악- 1982년 6월 2일 세광출판사 발행>에는 위와 같은 작사자의 이야기가 나온다.


또한, 현재 불리워지는 <선구자>노랫말에 대해서는 "1962년 어느 날 서울 방송을 들으니 1942년 봄 영안에서 조 선생이 신곡 작품으로 발표한 그 <용정의 노래>가 <선구자>로 되어 있었으며, 유랑민의 서러움이 역력히 보이는 '눈물 젖은 보따리'나 '흘러온 신세'같은 구절은 없어지고 그 대신 '활을 쏘던 선구자', '조국을 찾겠노라 맹세하던 선구자'로 바뀌었다"며, "일제 강점기 목단강에서 <선구자> 노랫말을 공연할 수 있었겠느냐. 만약 공연했다면 민족해방투사가 아니라 우매한 사람이었을 것"이란 김종화씨의 주장을 소개하며 조작되었음이 분명하다는 논지를 펼쳤다.


이 부분은 조두남이 자기 수상집 <그리움>에서 스스로가 이미 밝힌 사항과 일치하고 있다. 조작운운이 아니라 오히려 김종화씨의 증언에 신뢰성을 더해주는 구절이다.


-그러면서도 이 책의 말미에는 "조두남과 윤해영 선생은 민족의 양심은 가슴에 간직한 분들이라 할 수 있다"며 "윤해영 선생이 쓴 <동북인민자위군송가>는 그런 마음의 바탕이 없었다면 창작할 수 없었을 것이며, 조두남 선생은 자기의 음악 풍격에서 민족의 얼을 지켰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고 피력해 조두남·윤해영 선생도 일본에 빼앗긴 민족의 애환과 고통을 느끼며 울분을 노래로 표현했었음을 인정했다.-


김욱기자는 조두남이 친일노래를 작곡했다는 결정적인 증언은 외면하고, 젊은 시절 한때 같이 활동했던 동료이자 스승이었던 사람에게 당연히 가지는 인간적인 애정과 변호의 언사 한 두 마디를 두고 마치 조두남의 친일활동이 없는 것의 증명이나 된 듯이 흥분하는 것을 보니 차라리 가련한 생각이 든다.


결국 김기자가 기대하는 증언은 "조두남이 나라를 일본에 빼앗긴 민족의 애환과 고통을 느끼며 울분을 노래로 표현했다"고 하는 증언을 듣고 싶은 모양인데 안타깝게도 김종화의 증언 중 그 말은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참고로 <동북인민자위군송가>의 작곡자는 바로 증언자인 김종화이다.


-이 내용만으로는 조두남 선생이 친일을 했다는 확증은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다. 단지 김종화씨가 1944년 조선 청진에서 돌아오는 길에 조두남 작곡으로 된 <간첩은 날뛴다>는 소가극을 관람한 적이 있는 데, 당시 간첩이라면 반일 세력이었으니 <징병제 만세>와 다름 없었다고만 유씨와 인터뷰에서 증언한 것이 유일한 친일행적 정황이라고 할 수 있다.(이 같은 내용은 이미 월간 '말'지나 여러 언론에도 보도된 적 있어 새롭게 밝혀진 친일행적이라 할 수도 없는 것임)-


이야말로 조두남 기념관 문제를 다른 방향으로 끌고가면서 쟁점을 흐트리려는 김욱기자의 저의가 그대로 들어나는 구절이다.
조두남의 친일은 양과 질의 문제가 아니다.
지금 조두남 문제의 발단은 기념관의 주인공으로서의 자격 시비를 하고 있는 것이지 평범한 한 인간의 친일 죄상을 따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친일노래를 작곡한 사실이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국비로 개인 기념관을 지어 추앙할 인물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조두남의 친일은 결코 미약한 것이 아니었다.
예의 친일곡 뿐만 아니라 윤해영이 쓴 일급 친일시 <아리랑 만주>를 조두남이 작곡했다는 증언도 새롭게 나왔다.


-그런데 이 책(세월 속의 용정)의 <선구자와 용정> 편에는 "<선구자>는 일본 제국주의 침략자들에 의해 나라를 빼앗겼던 암흑한 시절에 조국 광복을 위해 피 흘리며 싸우다 죽어간 수많은 이름 모를 독립투사들에게 바치는 마음을 담아 창작된 것으로 오늘도 민족의 넋을 일깨우고 독립투사를 기리는 마음이 담겨있다"고 조두남 선생의 항일정신을 극찬하고 있다.
또 노랫말 조작에 대해서도 "윤해영의 1절 가사는 손을 대지 않고 2·3절에 있는 '눈물 젖은 보따리'와 '흘러흘러 온 신세'같을 구절을 빼고 '활을 쏘던 선구자', '조국을 찾겠노라 맹세하던 선구자'로 고쳤으며, 광복 후에 노래 제목을 '선구자'로 고쳤다"고 기록하고 있다.
중국 용정사람들이 이 노래를 알고 있지 못했던 것은 이 노래가 <남조선>의 노래였기에 감히 부를 엄두도 못 낸 탓이며, 중국의 개혁 개방이후인 1986년 7월 용정중학교 동창회에서 미국에서 온 서화숙 선생이 해방이후 최초로 불렀으며, 그는 가지고 왔던 <선구자>노래가 녹음된 카세트를 남기면서 이 노래의 창작된 과정을 자상히 알려줘 이후부터 중국 동포들에 의해 애창되기 시작했다고 적시되어 있다.-


연변에 가면 이와 관련된 재미있는 이야기가 참 많다.
지금 중국의 연변 동포들이 알고 있는 '선구자'라는 노래는 위에서 말한대로 1986년 7월 미국교포에 의해 수입된 노래이다. 선구자의 원작인 <용정의 노래>는 1944년에 영안에서 신곡발표공연에서 처음 발표되었고, 그 당시 도로, 교통, 통신수단, 정치상황 등을 고려 할때 천리 밖 용정까지 알려져 널리 보급될 상황이 전혀아니었다. 그러니 <용정의 노래>조차 용정과 연변천지에 증언자 김종화를 빼고는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아무튼, <용정의 노래>가 <선구자>라는 새 이름표를 달고 80년대 재미교포에 의해 역수입되면서 조두남이 창작한 윤해영과 선구자의 엉터리 "독립운동 신화"도 함께 수입된 것은 당연 한 일이었고, 이런 전후 사정을 미쳐 몰랐던 연변 동포들은 조두남이 항일정신에 투철했던 음악가로 착각 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연번에는 선구자와 관련하여 김욱기자가 예를 든 것 보다 더 포복절도 할 이야기가 많지만 스스로 노력해 찾기를 바란다.


-이에 일부 문학가와 언론계 종사자들은 "유씨가 곡학아세를 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진단을 내리고 있다. 주정화 기자는 "95년 김종화씨와 인터뷰를 통해 조 선생의 친일 행적에 대해 소상히 취재를 마쳤다면서도 2000년 자신이 책임편집을 맡아 펴낸 책에는 조두남 선생의 항일민족정신을 극찬해놓고, 3년 뒤인 올해 국내 출판사를 통해 출판한 책에는 '친일의혹'을 제기할 수 있느냐"며 "이는 책을 많이 팔아먹기 위한 곡학아세로 오인 받을 소지가 다분하다"고 말했다. 주 기자는 "예술이 그 속성상 시대상황에 자유로울 수 없다"며 "공산주의자로 수십 년 간 외국에서 떠돌던 통영의 윤이상 선생을 위해 경남 도에서는 수십 억 원의 혈세를 동원해 음악제를 개최하는 데, 뚜렷한 물증도 없이 온 국민에게 용기와 희망을 가져다 준 <선구자>의 작곡가를 이렇듯 매도해서는 안될 것"이라고 일갈했다. <김 욱기자>-


"유씨가 곡학아세를 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진단을 내리고 있는 일부 문학가는 누구들인가? 언론계 종사자들이란 누구들인가? 기자라면 앞으로 심각한 논란이 예상되는 이런 사안에 대해서는 기사에 대한 책임과 신뢰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라도 누구인지를 정확히 밝혀야 하지 않겠는가?


주정화 기자는 "예술이 그 속성상 시대상황에 자유로울 수 없다"며, "공산주의자로 수십 년 간 외국에서 떠돌던 통영의 윤이상 선생을 위해 경남도에서는 수십 억 원의 혈세를 동원해 음악제를 개최'한다고 했다.


<예술이 시대의 영향을 받지만 시대상황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예술은 참다운 예술이라 할 수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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