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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구자는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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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우리신문 댓글 0건 조회 1,037회 작성일 03-08-19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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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구자는 있었다"
글쓴이:우리신문2003-08-19 11:35:00
                        
"선구자는 있었다"
조두남 선생 친일 행적 증언 신뢰성 의문 증폭 

연변 음악계 원로 김종화씨
"조두남 선생은 음악을 통해 민족의 얼을 지킨 사람"



▲ 조두남 선생에 대해 상반된 평가의 내용을 담고 있는 <세월속의 용정>과 <만주아리랑> 



조두남선생이 일부 시민단체와 언론의 주장대로 친일파가 아니라 항일민족정신이 투철한 음악가였다는 새로운 사실들이 중국 현지 출판물을 통해 확인되고 있어, 상당한 파문이 일 것으로 보여진다.

2천만원에 육박하는 예산을 들여 장장 4박 5일간의 중국 연변 현지 조사활동에도 불구하고, 조두남 선생의 친일행적에 대한 구체적인 물증도 확보하지 못한 가운데, 유일한 증거의 배경이 되었던 중국 동포 유연산씨가 펴낸 '만주 아리랑'이란 책의 취재원인 연변 원로 음악가인 김종화씨마저 "조두남 선생은 민족의 얼을 지킨 사람이었다"는 증언을 한 사실이 확인됐는 가 하면, 유연산씨 자신이 손수 책임편집 해 중국현지에서 출판된 책에서는 조두남 선생을 '투철한 항일민족정신의 보유자'라고 극찬한 내용이 발견됐다.

이 같은 사실은 지난 19일부터 22일까지 '조두남 선생 친일행적 조사단'의 중국 연변 현지 조사 활동을 동행 취재했던 주정화 기자(국제신문 사회부)가 현지에서 구입한 <세월속의 용정>이란 책의 내용과 유연산씨가 올해 5월 국내서 출판한 <만주 아리랑>을 비교하면서 발견되어 유씨가 '아세곡필(阿世曲筆)'을 한 것이 아니냐는 강한 의구심마저 제기하고 있다.

이에 따라 조두남 선생의 친일행적을 강하게 제기하며, 기념관 개관식장에서 밀가루를 투척한 시민단체와 일부 언론의 비난에 못이겨 수천만원의 예산을 들여 중국 현지 조사활동에 나선 마산시도 비난을 면키 어려울 전망이다.

<선구자>가사 조작 주장도 불확실
유연산씨는 올해 5월25일 국내 출판사를 통해 펴낸 '만주 아리랑'이란 책에서 "지난 95년 김종화 선생을 취재한 결과, 조두남 선생의 극히 미약하고 불확실한 친일 행적 정황과 '선구자 가사 조작'에 대해 적시하고 있다.

유씨는 이 책에서 '32년 키가 작고 함경도 말을 쓰는 한 젊은 이(윤해영 선생)가 만주 하얼빈에 살고 있는 내 집을 찾아와 시 한편 내놓으며 곡을 붙여 달라고 해 작곡을 해놓고 기다렸으나 끝내 나타나지 않았으며, 주고 간 시의 내용으로 보아 그는 독립군이었을 것으로 예상할 수 있으며 어디선가 전사했을 것'이라는 조두남 선생의 자서전 일부를 소개하며, "이 모든 것을 역사의 진실로 고스란히 받아 안을 수만 있다면 참으로 민족적 자부심을 불러일으킬 만한 전설적인 이야기라 하겠지만 역사는 무정한 바, 사실을 떠난 욕망으로 진실을 대체할 수 없다"는 평가로 조두남 선생의 자서전을 폄하했다. 특히 유 씨는 김종화 선생의 말을 빌어 조두남 선생이 '마약 중독 상태에서 연주활동을 펼친 '약침쟁이'였음도 폭로했다.

또한, 현재 불리워지는 <선구자>노랫말에 대해서는 "1962년 어느 날 서울 방송을 들으니 1942년 봄 영안에서 조 선생이 신곡 작품으로 발표한 그 <용정의 노래>가 <선구자>로 되어있었으며, 유량민의 서러움이 역력히 보이는 '눈물 젖은 보따리'나 '흐러온 신세'같은 구절은 없어지고 그 대신 '활을 쏘던 선구자', '조국을 찾겠노라 맹세하던 선구자'로 바뀌었다"며, "일제 강점기 목단강에서 <선구자> 노랫말을 공연할 수 있었겠느냐. 만약 공연했다면 민족해방투사가 아니라 우매한 사람이었을 것"이란 김종화씨의 주장을 소개하며 조작되었음이 분명하다는 논지를 펼쳤다.

그러면서도 이 책의 말미에는 "조두남과 윤해영 선생은 민족의 양심은 가슴에 간직한 분들이라 할 수 있다"며 "윤해영 선생이 쓴 <동북인민 자위군 송가>는 그런 마음의 바탕이 없었다면 창작할 수 없었을 것이며, 조두남 선생은 자기의 음악 풍격에서 민족의 얼을 지켰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고 피력해 조두남·윤해영 선생도 일본에 빼앗긴 민족의 애환과 고통을 느끼며 울분을 노래로 표현했었음을 인정했다.

이 내용만으로는 조두남 선생이 친일을 했다는 확증은 어디에서도 찾아 볼수 없다. 단지 김종화씨가 1944년 조선 청진에서 돌아오는 길에 조두남 작곡으로 된 <간첩은 날뛴다>는 소가극을 관람한 적이 있는 데, 당시 간첩이라면 반일 세력이었으니 <징병제 만세>와 다름 없었다고만 유씨와 인터뷰에서 증언한 것이 유일한 친일행적 정황이라고 할 수 있다.(이 같은 내용은 이미 월간 '말'지나 여러 언론에도 보도된 적 있어 새롭게 밝혀진 친일행적이라 할 수도 없는 것임)

<세월속의 용정>엔 조두남의 투철한 항일민족 정신 기록
유연산씨는 지난 2000년 6월 연변출판사에서 함께 근무하던 전광하씨가 쓴 '세월속의 용정'이란 책의 책임 편집 맡아 감수해 출판했다. 책임편집자는 한국 출판사나 신문사의 '편집국장'으로 책 내용의 윤리와 도덕성등에 대해 책임을 지는 막중한 권한을 보유하고 있다.

그런데 이 책의 <선구자와 용정> 편에는 "<선구자>는 일본 제국주의 침략자들에 의해 나라를 빼앗겼던 암흑한 시절에 조국 광복을 위해 피흘리며 싸우다 죽어간 수많은 이름모를 독립투사들에게 바치는 마음을 담아 창작된 것으로 오늘도 민족의 넋을 일깨우고 독립투사를 기리는 마음이 담겨있다"고 조두남 선생의 항일정신을 극찬하고 있다.

또 노랫말 조작에 대해서도 "윤해영의 1절 가사는 손을 대지 않고 2·3절에 있는 '눈물젖은 보따리'와 '흘러흘러온 신세'같을 구절을 빼고 '활을 쏘던 선구자', '조국을 찾겠노라 맹세하던 선구자'로 고쳤으며, 광복후에 노래 제목을 '선구자'로 고쳤다"고 기록하고 있을 뿐 조두남 선생의 친일행적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중국 용정사람들이 이 노래를 알고 있지 못했던 것은 이 노래가 <남조선>의 노래였기에 감히 부를 엄두도 못낸 탓이며, 중국의 개혁 개방이후인 1986년 7월 용정중학교 동창회에서 미국에서 온 서화숙 선생이 해방이후 최초로 불렀으며, 그가 가지고 왔던 <선구자>노래가 녹음된 카세트를 남기면서 이 노래의 창작된 과정을 자상히 알려줘 이후부터 중국 동포들에 의해 애창되기 시작했다고 적시되어 있다.

이로볼때, 1995년 김종화씨와의 인터뷰과정에서 조두남 선생의 미약한 친일행적을 알고 있었다는 유연산씨가 자신과 함께 근무하는 연변인민출판사 동료가 쓴 글의 책임편집을 맡고도 수정하지 않고, 조두남 선생의 항일 정신을 높이 기리는 내용을 그대로 감수했을 까 하는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또한 <세월속의 용정>이란 책이 출판된지 3년이 지난 올해 국내 모 출판사를 통해 펴낸 <만주아리랑>에는 이와 정반대의 친일행적 의혹을 암시하는 내용을 실었을 까 하는 궁금증도 제기되고 있다.

이에 일부 문학가와 언론계 종사자들은 "유씨가 곡학아세를 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진단을 내리고 있다. 주정화 기자는 "95년 김종화씨와 인터뷰를 통해 조 선생의 친일 행적에 대해 소상히 취재를 마쳤다면서도 2000년 자신이 책임편집을 맡아 펴낸 책에는 조두남 선생의 항일민족정신을 극찬해놓고, 3년 뒤인 올해 국내 출판사를 통해 출판한 책에는 '친일의혹'을 제기할 수 있느냐"며 "이는 책을 많이 팔아먹기 위한 곡학아세로 오인 받을 소지가 다분하다"고 말했다.

주 기자는 "예술이 그 속성상 시대상황에 자유로울 수 없다"며 "수십년간 외국에서 떠돌던 통영의 윤이상 선생을 위해 경남도에서는 수십억원의 혈세를 동원해 음악제를 개최하는 데, 뚜렷한 물증도 없이 온 국민에게 용기와 희망을 가져다 준 <선구자>의 작곡가를 이렇듯 매도해서는 안될 것"이라고 일갈했다. <김 욱기자>
<우리신문 7월30일자에는 비상식적이고 석연찮은 것으로 알려진
'조두남 선생 친일행적 연변조사 일정과 활동'을 심층 취재해 보도합니다 주 기자의 발언중 일부는 논란의 소지가 있어 수정했습니다.>



김 욱 기자 2003-07-25 (43 호)
kimuk@ur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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