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중일기나 임진록, 그리고 일제 강점기를 다룬 역사를 들춰내면 왜적에게 수탈 당한 민족의 치욕 앞에 두 주먹이 저절로 불끈 쥐어진다. 우리가 그런 역사의 현장 앞에서 울분을 느끼는 것은 우리스스로 그 후손들이며 민족이기 때문이다. 우리 민족의 정통성과 연결된 역사관에 흠집 내기 위한 왜구들의 수단도 날로 교활하고 야비하게 발전했다. 광개토대왕의 금석문을 마멸시키고 그 자리에 임나설을 각색하여 우리 문화가 그들에게서 전래됐다는 터무니없는 주장을 삽입하는가 하면 지금 논쟁중인 논개로 인하여 익사한 게야무라 로쿠스케의 후손들은 진주 남강에까지 찾아와 로쿠스케의 혼백을 위로하고 그의 사당에 논개부인이 귀신들에게 짓밟히는 영정을 만들어 복수하고 있다. 그들은 불과 50여 년 전에도 우리 문화를 말살하기 위해 강제로 창씨개명을 시키고 우리말과 글의 사용을 금했다.
그런 왜구에게도 향수를 느끼는 지 노인네들의 입을 통해 가끔 일본시절이 좋았다는 망언을 가끔 듣는다. 망언이 아니라 한 지역을 이끄는 관료들의 망언과 망발은 더욱 심각하다. 그 대표적인 예가 지금 연일 뜨겁게 논쟁 중인 논개 부인에 관한 것이고 조두남 기념관 건립과 노산문학관 건립이다.
이미 친일파로 드러난 명백한 증거가 있는 데도 마산시는 일부 70대 노인의 친일 향수 같은 발상으로 두 분의 기념관 추진을 취소하지 않고 있다. 일본인들이 이 사실을 알았다면 황철곤 마산시장에게 명예 국민증이나 일본 최고의 훈장을 수여하려 할 지도 모르며 로쿠스케의 후손들은 진주 향토사학자들의 주장을 일본 국정교과서에 싣고자 청원할 지도 모르는 일이다. 원수 같은 논개가 의녀나 정절부인보다는 천기나 관기가 돼야 후련하기 때문이며 한국최고의 문학가이자 음악가인 두 분의 친일행적은 일본 근대사에 영원히 기록될 환영할 만한 일이기 때문이다.
아우내 장터에서 만세를 부르다 옥중에서 옥사한 유관순 열사를 두고 그녀가 고문과 학대로 죽은 게 아니라 자연사했으며 그 사건은 자작극이었다고 향토사학자들이 발표할 수 있다. 과연 그럴 때 국민감정은 그들을 용서할까? 세상의 눈은 대의명분이 확실한 곳으로 초점이 쏠리게 마련이다. 조두남 기념관과 노산 기념관은 건립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국민정서이며, 논개는 기생이 아니라 정절부인으로 모셔져야 한다는 게 대다수 국민과 시민정서이다. 그런 기록은 산재해 있다.
존칭 하나를 붙여 의롭게 죽은 망자의 슬픔과 한을 풀어주는 게 뭐가 못마땅해 괴상한 물증을 들이대며 우국정신와 국민정서에 흠집을 내려는 지 그 이유를 알 수가 없다. 논개부인과 조두남, 노산 기념관 문제는 천동설 지동설의 주장과는 다르다. 지구는 돌지 않는다. 그러나 돈다. 이렇게 풀어나갈 문제가 아니다.
어떤 위협과 협박에도 내 주장과 논리도 현재까지는 변함이 없다. 논개는 본래 기생이 아닌 정절부인이며 조두남과 이은상 선생은 애국자가 아니라 친일분자다. 세계 어느 역사를 뒤져봐도 그 민족의 반역자에게 혈세로 기념관을 지어 준 전례는 없으며 호국정절의 인물을 그 나라의 학자들이 깎아 내렸다는 학문적 주장은 찾기 드물다. 유독 진주와 마산에서만 볼 수 있는 희한 한 미증유의 주장이자 사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