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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시민사회의 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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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서프라이즈 댓글 0건 조회 1,226회 작성일 03-07-06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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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시민사회의 적들
글쓴이:서프라이즈2003-07-06 13:49:00




나는 쪼개어지지 않는 파동이다.

에너지이고 공명이다. 지향을 가진 에너지다. 나는 너라는 파동이 신명나게 달려와 어루길 고대하는 도미노의 꿈틀거리는 패다. 우리는 서로를 껴안은 에너지 덩어리다. 우리는 접착한 상태가 아니다. 뜨겁게 결합한 것이요, 연대한 것이다. 관계이며, 스스로 그 관계의 실마리다. 양자역학은 우리의 실존을 어렴풋이 증명한다. 우리가 쪼개어질 수 있어서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마지막 실체의 소립자들이 아니라고. 우리는 파동의 힘, 우렁찬 공명인 것이다.

적들은 우리를 포퓰리즘이라고 비하한다. 두려운 것이다. 네티즌이어서 두려운 것이 아니다. 우리가 현대화된 신명의 에너지 덩어리이기 때문에 두려운 것이다. 다 말살시켰다며 방심한 風流의 에너지가 마술처럼 되살아나 기겁하는 것이다. 그들은 대한민국 근현대사에서 줄기차게 되돌이표를 찍어댄 정치적 앉은뱅이들이라서 두려운 것이다. 그들은 질주할 수 없고 질주 할 곳이 없어서 무서운 것이다. 파동의 갈채, 옹골찬 바람의 주먹들이 두려운 것이다.


민족정기는 파동의 에너지다.

우리의 에너지는 風流이고 순박한 仁이다. 질펀한 즐거움의 無爲이다. 광장을 희롱하며 쾌활하게 질주하는 얼의 파동이다. 혼의 공명들이다. 우리는 신명의 에너지를 품은 거대한 산맥이요, 깨끗이 반성하며 흘러가고자 하는 장엄한 강물이다. 풍류, 얼, 혼, 신명, 선비라는 그 파동의 에너지가 팽팽히 돌아다니는 유쾌한 광장의 기세가 적들에겐 두려운 것이다. 그들의 어둠이 드러나고 우리 연대의 밝음이 드러나는 것이 두려운 것이다.

민족정기는 깨끗한 공명의 에너지요, 자존하는 힘찬 파동의 에너지이다. 민족정기를 품은 열린 시민사회는 쪼개어지지 않는 파동의 에너지요, 스스로가 자존이다. 우리의 민족정기란 인류 공동선을 지향하는 도덕적 에너지다. 적들은 두렵다. 우리가 민족정기라는 파동의 에너지를 합리적 의사소통의 구조 속에서 현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민사회는 파동 에너지의 결합이다.

적들은 합리적 의사소통의 언어로 채운 현대화된 ‘화염병’무리가 두려운 것이다. 우리들은 지금 우리들 내부에 오랫동안 타자로 잔존한 반역사성을 힘차게 밀어내려 하고 있다. 눈물겨운 자기부정이요 적극적인 자기 긍정이다. 적들은 시민사회의 파동의 에너지가 도덕적 성찰의 힘과 자각을 지향하고 있는 것이 두려운 것이다. 열린 시민사회의 적들은 그래서 오금이 저리고 불안한 것이다.

시민사회의 자각에 의한 새로운 도덕적 힘에 의해 빼앗길 것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새로운 공동체 정신을 요구받고 있으니 적들은 혼절하고 싶은 것이다. 새로운 시대정신을 강력히 요구받고 있는 역사철폐주의자들은 불안하다. 건강한 시민사회로부터 새로운 역사성을 강력히 요구받고 있는 모든 반역사주의자들은 두려운 것이다. 그들은 21세기에서도 역시 수구이고 반동이기 때문이다.

나는 오늘 열린 시민사회의 합리적 의사소통을 오랫동안 방해해온 적들을 고발하려 한다. 그리고 이를 통하여 이 적들과 오랫동안 고군분투한 한 지역의 시민단체를 격려하고 그들의 눈물겨운 노력을 지지하려고 한다. 그러나 나의 글쓰기는 그들의 실천적 삶의 가치와 지향에 비한다면 허술하기 이를데 없음은 물론이다. 아울러 지역주의 지식판매상들이여, 유통기한이 지난 상품으로 땡처리하여 한 몫 보려는 상술을 거두기 바란다. 지역토호세력들과 싸우기에도 바쁘고 즐겁다. 지역으로 달려가자.


역사를 견인하고자 하는 시대적 양심들의 무릅팍은 고달프다. 올곧게 고향을 지키고자 하는 지역 양심들은 더욱 고달프다. 주변부로 소외되기 때문이다. 서울은 역사과잉의 블랙홀이다. 우리는 지역문제를 말하면서도 지역의 근현대사에 대해 공부하지 않는다. 공부하는 사람을 격려해주지도 않는다. 너나 할 것 없이 잠재적으로 고향을 등질 소립자들이기 때문인가.

서울 도심을 전략적으로 비워야 서울이 산다. 서울을 전략적으로 비워야 대한민국이 산다. 서울의 역사과잉을 비워내야 대한민국이 산다. 서울과 지역은 소립자로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 파동의 에너지로 관계해야 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보침과 사침으로써 혈을 뚫어야 한다. 그래야 동북아시아의 튼실한 허파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지역운동 양심세력들은 서울을 비워내고 지역을 채우기 위해 무릅팍이 고달프다. 좁은 소도시의 네트워크는 지역운동 양심세력들의 무릅팍 슬개골의 정체를 집요하게 건드린다. 혈연으로 학연으로 위협하며 진보하려는 발목을 끊임없이 절단하려 한다. 적들은 바로 지역토호세력들이다. 그들은 반민족반민주반민중 세력들이다. 반역사주의 세력들이다.

7월호 월간 <말>紙에 실린 경남도민일보 김주완 기자의 고백에 귀 기울여 보자.

“정권이 바뀌어도 토호는 영원하다” 필자가 지역언론에서 13년간 기자생활을 해오면서 내린 결론이다. 짙은 체념이다. 그만큼 토착 기득권세력의 뿌리는 깊고도 질기다. 이 질긴 뿌리를 뽑아 내지 않고서는 요즘 유행하는 ‘지방분권’이라는 것도 말짱 헛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들이 기득권을 스스로 포기하지 않는 한 지방분권은 결국 지방의 권력자들과,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토호세력의 권한과 입지만 강화시킬 뿐이라는 것이다. ‘죽써서 개 주는’ 그런 꼴을 당하지 않으려면 우선 그들과 최소한 ‘전선’이 형성되어야 하는데, 피아 구별조차 안되고 있는 마당에 그게 잘될 리가 없다. 지역에서 이른바 운동깨나 했다는 사람들도 대적해야할 토호가 누구인지조차 모른다. 한국 현대사는 알아도 지역현대사는 공부하지 않았던 탓이다. 토호들끼리 서로 끌어주고 밀어주는 이해관계로 끈끈하게 뭉쳐 있는데, 그들과 맞서 싸워야 할 진보세력은 모래알처럼 흩어져 있다. 바로 이것이 필자가 체념할 수 밖에 없는 이유였던 것이다.”

솔직한 고백이며 타당한 판단이다. 서울의 자원을 지역에 배분하려 해도 지역의 토호세력만 살찌우게 할 뿐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김기자의 독백이 어줍잖은 정치항담가의 입에서 나온 소리라면 몰라도, 지역문제 전문가로서 붓으로 13년간 이 지역의 문제를 고발하고 갖은 박해 속에서도 꿋꿋이 투쟁해온 지역 언론인의 고백이니 가슴이 아프다. 이 지역운동 양심세력들은 누구와 대화해야 하는가. 우리는 더 이상 지역주의의 논리회로에 갖힌 중앙무대의 모노로그로 안주해서는 안된다. 대화가 필요하고 소통이 시급하다. 우리는 파동, 공명의 에너지 덩어리가 아닌가.

과연 김기자가 고발하는 그들이 지역토호세력일 뿐인가. 그들은 본질적으로 주변부가 아니다. 서울의 기득권세력과 같은 레벨이며 의회공간 속에 그득한 정치자영업자들과 동업자들이다. 그들에게서 지역은 지역민중의 부와 희망을 착취하는 장기출장소이다. 주민등록 넘버체계가 우리와 다른 외계족속들이다. 대한민국의 부당한 특권세력들 중 하나인 것이다.

그러나 김주완 기자는 우리에게 그 지역에서 유의미하게 전개되고 있는 새로운 희망의 전서구 한마리를 보내왔다. 깃이 닳도록 애절하게 날아온 그가 보낸 전서구의 전통을 알려드리려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물론 월간 <말>紙 7월호와 마산 열린사회 희망연대 홈페이지, 경남도민일보 홈페이지에서 보다 더 자세한 정보와 투쟁의 경과와 추이를 확인 하실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속한 ‘경남도민일보’와 ‘마산희망연대’가 ‘역사바로세우기투쟁’을 하고 있다. 바로 경상남도 마산시 행정당국이 시민 세금 약 11억원으로 건립을 강행한 ‘조두남기념관건립철폐투쟁운동’이다. 마산에서 오랫동안 지역권력가와 지역토호세력의 반민중적 행위에 줄기차게 투쟁해온 지역운동 양심세력들이 개관식날 기념관 지붕꼭대기에까지 올라가 시위를 벌였지만, 모두 현장에서 체포되고 직접 현장에 없는 사람들까지 벌금형을 때렸다. 이에 김영만 마산 희망연대대표와 2명의 간부가 구속되고, 전화가 끊기는 가난한 형편에서도 의롭게 투쟁해온 이 단체 회원 5명에게 각각 벌금 100만원의 중형이 선고되었다.

여러분들 중 언뜻 이해가 되지 않을 분들도 계실 것이다. 그렇게 되어서도 않되고 상상하기도 끔직한 가정이지만 만약 우리가 다시 일본제국주의에 강점된다면, 만주벌판이나 지리산 자락을 옮겨다니며 조두남의 ‘선구자’ 한 절 부르며 눈물을 삼키고 조국광복의 의지를 다짐하게 될 지도 모를 일 아닌가. 우리가 아는 조두남의 ‘선구자’는 조국광복의 염원을 담은 絶唱이기 때문에 안성맞춤이다. 그렇게 배웠고 그렇게 불렀다. 조선일보는 여전히 우리를 토벌대상으로 수배전단지 역할을 하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선구자’의 작사가 윤해영과 작곡가 조두남이 친일파라면 우리가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그리고 ‘선구자’의 가사가 작사가 윤해영의 개인적 애수를 노래한 것에서 지금의 ‘선구자’로 바꿔치기 된다. 이 바꿔치기 된 ‘선구자’로 출세한 조두남의 공적을 기리려 한단다. 마산시민단체들의 지속적 반대에도 불구하고 끝내 기념관을 건립하고 개관해버린 마산시당국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조두남은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이 자신의 ‘콩나물대가리’에 영혼을 의탁한 마루타들이길 바랬던 것 아닌가 말이다. 너무도 음흉하고 잔인한 예술혼이다. 이를 기리자고 시민혈세 11억원을 지출했다. 이에 찬성한 자문위원회에 대한 정보공개도 못하겠단다. 마산시민이 알 필요 없단다.

이 사건 전 1999년에 또 마산시 행정당국은 친일파 문인 노산 이은상의 문학적 공적을 기리기 위해 ‘노산기념관’ 건립을 추진한 바 있다. 일제시대에는 친일파로, 박정희유신독재에는 공화당의 창당선언문으로 문화권력을 차지하고, 전두환군사독재에는 새시대 새역사 지도자상이란 치부의 글로 국정자문위원을 역임한 노산의 공적(?)을 기리자는 것이다. 그렇게 본받고 살자는 주장에 다름 아니다. 그렇게 못 산 놈들이 바보라고 마산시민을 욕하는 것이 아니라면 어찌 기념관을 세우자고 할 수 있을까.

마산시 행정당국은 일제개항기 어시장상권보호민중투쟁부터 3.15부정선거규탄시민항쟁, 부마시민항쟁, 6월시민항쟁, 노동자대투쟁의 저항정신의 핵을 뽑아 내고 그곳에 일본제국주의의 大和魂을 심으려 하는가. 친일파 문인들을 기리고자 하는 개인들이 자신의 돈으로 기념관을 지어도 얼빠진 놈으로 취급 받는 마당에 마산시민의 혈세 11억원으로 친일파 기념관을 건립하겠다는 역대 마산시장들의 영혼은 도대체 어느 나라 사람들인가. 장래에 일본제국주의가 대한해협을 건너 대한민국을 침략에 성공할 듯 하니 미리부터 알아서 기는 것인가.

또 이번 사건을 목도한 마산시민들 사이에서는 시당국과 사법부에 불만이 많다고 한다. 개관을 강행하려는 마산시장에게 밀가루 세례를 날렸던 것이 죄목이지만, 이 지역양심세력들이 오랫동안 지역토호세력에 저항해온데 대한 괘씸죄가 작용했다는 것이 일반시민들의 중론이다. 그동안 마산에서는 마금산온천개발의 비리를 검찰에 고발하는 등 마산의 토호세력과 지역권력가 그리고 행정당국이 결탁한 각종 비리를 지속적으로 감시 고발해 왔다. 이들이 시민사회의 올곧은 저항운동의 주축이 되어 마산시를 뒤덮고 있는 반민중적 세력의 실체를 드러내 보이고자 외롭게 투쟁했던 것이다. 새로운 마산, 그 희망의 싹을 뿌려 보자는 운동이다.

이러한 헌신적인 시민운동이 시민들에게 점점 호응을 얻어가는 추세를 보이자, 이번 기회에 지역운동 저항의 주동력을 뿌리 뽑겠다며 전면전으로 나선 토호세력들의 카르텔의 힘이 작용한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더구나 내년 총선을 약 10여 개월 앞둔 시점에서 그 동안 정치적으로 한나라당 텃밭으로서 김호일 전 의원부인의 선거부정행위, 이에 따른 재선거 과정에서 노출되었던 지긋지긋한 공천시비, 연이은 마산시장의 부정비리 사건으로 정치적 잡음이 끊이지 않았던 마산이다.

최근들어 과연 한나라당이 민중들에게 무슨 삶의 희망을 제공할 수 있는 지에 대한 불만이 높아져가던 차였다. 이러한 지역의 정치상황에서 이번 조두남기념관 사건이 쟁점화되면서 지역행정가와 지역정치가들에 대한 마산시민들의 정치적 불만 또한 예사롭지 않다는 소식이다.

그러나 형을 살고 있는 희망연대 김영만 대표의 잔잔한 목소리는 참으로 담담하고 신실하다. “4.19 시민혁명을 추동한 3.15 시민항쟁과 유신독재의 명줄을 끊는데 직접적 역할을 한 부마항쟁의 역사적 자부심이 깊은 이 곳 마산에서, 우리 후손들이 친일파 음악가 조두남의 선구자를 듣고 자라는 일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뿐이다”고 했다. 이 지역의 시민운동의 대부 중 한분으로서가 아니라 새로운 시대의 시민운동가의 중요한 덕목인 ‘자신의 내면에 있는 운동의 근거를 부단히 확인해가고자’ 하는 ‘젊은’ 그의 진목면은 이 단체의 운동의 정당성과 신뢰성을 보증하고 있다.


이 두 사건의 실체를 추적해보면 어김 없이 지역토호세력들의 정체가 드러난다. 역사적 환절기와 전환기마다 반민중의 깃발을 곧추세우고 완장질로 권력을 획득한 더러운 발걸음이 찍어댄 그 궤적이 드러나는 것이다. 지난번 글에서 나는 모윤숙을 대한민국 근현대사를 통틀어 가장 발랄한 정치적 변태주의자로 규정한 바 있다. 변태의 강도와 종류만 약간 달리했을 뿐 대한민국의 근현대사의 수구기득권 세력들인 이들 정치적 변태자들은 부지기수이다.

돈과 권력으로 자신의 반역사성을 세탁하고 중앙정치무대에 진출하기도 하며 이들은 지역토호세력들과 결탁하거나 양성되기도 한다. 여전히 시민사회의 합리적 의사소통을 방해하며 곳곳에 박혀 반민중적 기득권을 유지하고 있다. 그들 기득권을 위한 카르텔의 거미망을 훼손하거나 거미망에 걸려든 먹이가 있으면 학계, 언론계, 문화예술계, 산업계 토종인사들이 비호세력이 되어 총 출동한다. 마산만이 아니다. 그 거미망은 대한민국 대부분 도시에도 존재하는 것이며, 복잡한 지하 오폐수관처럼 더럽게 존재한다.

정치경제, 사회문화 제 분야에 속속들이 또아리 틀고 있다. 이러한 거대한 반역사적 네트워크는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질곡 속에서 그들 카르텔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정치적 협착과 결탁과 집착으로 엮어진다. 이 지하 네트워크는 정치적 변태들의 포근한 침대다. 이 침대 속에는 눈에 잘 보이지 않지만 지역토호세력이라는 무수한 진드기들이 잠복해있다. 국가의 원천적 에너지를 갉아 먹는 벌레들이다.

이들이 생존하는 것은 두말할 것 없이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이 한번도 제대로된 자기부정의 역사적 경험을 갖고 있지 못한 탓이다. 이 사악한 세습과 사슬의 고리를 끊어 내어야 한다. 민족정기의 정립이란 고루한 혈연주의가 아니라 새로운 시대의 시민사회가 반드시 착근해야 하는 공동체 윤리의식이며, 정치사회 개혁을 추동할 수 있는 효과적인 기제이다.

친일파 처단의 한풀이 식도 아니오, 오 필승코리아의 역발산 기개세도 아니다. 민주시민사회의 정체성을 더욱 내면화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구비해야 하는 ‘기억정치’로서의 가치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수구기득권세력들은 이 기억정치의 회로를 부수려는 집단이다. 기억하지 말아야 할 것을 입력하고 기억해야 할 것을 지우는 반역사적인 크래커(악성 해커)들인 것이다.

지금 마산이라는 소도시에서 벌어지는 친일파 음악가 ‘조두남기념관건립반대투쟁’은 경남대학 정성기 교수에 의하면, 친일-독재-기득권-주류 대 민족-민주-민중-비주류 세력의 대립투쟁이라고 한다. 전적으로 동의하며 또한 대한민국의 막힌 혈을 뚫기 위한 투쟁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서울의 전략적 비우기와 지역의 전략적 채우기를 위한 지역분권정책이 제대로 추진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들 지역토호세력과 지역권력가들의 부당한 기득권을 먼저 타파하지 않고는 죽써서 개주는 꼴이 될지 모른다는 일갈을 노무현 참여정부는 되새겨야 할 것이다.

끝으로 서프독자분들게 부탁말씀을 드리고자 한다. 현재 어려운 싸움을 하고 있는 마산의 ‘열린사회 희망연대’와 이를 지속적으로 지지하고 지원하고 있는 경남도민일보에 적극적인 지지와 격려를 보냈으면 하는 부탁을 드리고자 한다. 반역사적 인물의 기념관을 지역행정당국의 자의적 판단에 의해서 시예산으로 건립하는 발상을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 하는 입법활동을 개혁당에서 약속한 바 있고 민노당 해당지역구에서도 투쟁을 지지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만시지탄이지만 입법기관과 정당으로서 응당할 노릇이고 우리 민주개혁세력들은 지역의 합리적 의사소통을 방해하고 건강한 공동체 정신을 반역사성으로 훼손하려는 마산시 행정당국에 감시와 항의의 태도를 분명히 전달하여 그들만의 외로운 투쟁이 아니다는 연대의 정을 나누었으면 한다.

마산 열린사회 희망연대 :  http://www.hopenews.or.kr
경남도민일보 :  http://www.dominilbo.co.kr/index.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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