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만 대표,3.15기념사업회 정면비판파문 > 역사바로세우기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역사바로세우기

  1. Home >
  2. 옛집가기 >
  3. 역사바로세우기

김영만 대표,3.15기념사업회 정면비판파문

페이지 정보

작성자 경남도민일보 댓글 0건 조회 991회 작성일 03-06-06 13:56

본문

김영만 대표,3.15기념사업회 정면비판파문
글쓴이:경남도민일보2003-06-06 13:56:00
김영만 대표, 3·15기념사업회 정면비판 ‘파문’


김주완·박근철 기자 / wan@dominilbo.com




[격돌인터뷰]“불의에 침묵해온 기념사업회는 개혁 대상”

‘3·15의거기념사업회’가 지역사회에서 갖는 위치는 독특하다. 분명히 민간단체이지만, 사무실은 마산시청 안에 있고, 상근직원의 인건비도 관청에서 나온다.

그렇다고 ‘관변단체’로 보기도 어렵다. 기념사업회 구성원 중에는 시민운동가와 진보적 학자들도 대거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행정기관이나 관변단체에 대해선 거침없이 입장을 표명하고 비판을 가하는 시민단체들도 ‘기념사업회’가 관련된 일에 대해선 공개적인 논의 자체를 꺼려왔다.

그러나 열린사회 희망연대 김영만 상임대표가 작심한 듯 ‘불의에 침묵해온 3·15기념사업’이라며 쌓인 불만을 털어놨다. 이에 기념사업회 강주성 회장은 ‘잃어버린 역사복원이 우선’이라며 되받아쳤다.

“우리가 의거의 역사를 기념하고, 열사들을 추모하는 이유가 뭐냐, 결국 정신을 계승하자는 것 아니냐. 기념사업회는 3·15정신을 자유·민주·정의라고 이야기하는데,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과연 자유와 민주·정의를 제대로 쟁취하고 있는가. 그건 아니지 않나. 기념 이상으로 중요한 게, 불의에 대한 저항이다. 그게 3·15정신을 계승하는 것이고 기념을 제대로 하는 것이다.”

김영만(58·열린사회 희망연대 상임대표)씨의 말은 거침이 없었다. 처음부터 작심한 듯 3·15기념사업회에 대한 불만을 쏟아냈다.

그에게 ‘3·15의거의 올바른 계승방안’을 주제로 인터뷰를 요청할 때 정반대의 두 가지 걱정이 있었다. 하나는 ‘그가 기념사업회를 너무 의식한 나머지 밋밋하고 뻔한 이야기만 하면 어쩌나’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너무 직설적인 이야기로 괜한 분란만 조장하는 게 아닌가’하는 것이었다.

그는 아예 각오를 한 듯 했다. 할말은 해야겠다는 것이었다. <위클리경남>도 3·15의 진정한 계승발전을 위해 공론화가 필요하다는 당초의 기획취지에 충실하기로 했다.

-3·15묘역이 성역화사업을 시작한 지 8년만에 국립묘지로 준공된다. 어떻게 평가하나.

△국립공원으로 승격된 일은 마산시민으로서 대단히 좋은 일이고 자랑스런 일이다. 다만 지난 일이긴 하지만 입지가 너무 비탈진 곳이어서 어린 학생이나 노약자는 거의 올라가기 힘들다는 게 아쉽다. 시민이 늘 쉽게 찾을 수 있는 곳이어야 하는데, 지금 입지를 보면 오히려 역사가 박제화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기념공원일수록 소박하면서도 생활 속에서 가까이 할 수 있도록 꾸며야 한다.

-묘지 성역화사업은 3·15기념사업회가 중점적으로 추진해왔던 사업인데, 잘못됐다는 말인가.

△국립묘지로 된 것은 3·15의 역사적 지위를 한 단계 높여놨다는 점에서 평가할 만 하다. 그러나 거기에 집착하다 보니 기념사업회가 정작 정신계승에는 소홀했던 것 같다.

-기념사업회가 정신계승 작업을 하지 못했단 뜻인가.

△제대로 안해 왔다고 본다.

-예를 든다면.

△독재란 억압과 폭력·착취다. 이런 부분에 대해 (기념사업회가) 제대로 저항하는 일을 본 적이 없다. 다른 건 놔두더라도 최소한 잘못된 역사를 바로 세우는 일만은 해야 했다.

-그런 일을 전혀 안했다는 말인가.

△안했을 뿐 아니라 잘못된 역사를 오히려 덮어주는 역할을 3·15라는 이름으로 했다. 대표적인 경우가 이은상기념관이다. 확실히 밝혀지지 않은 부분은 놔두더라도 이은상은 그야말로 이승만과 박정희·전두환 정권에 대한 친독재 행적이 분명하게 있다. 만일 그렇다면 기념사업회가 어떤 단체보다 앞장서 제일 먼저 반대하고 나서야 했다. 그러나 반대는커녕 이은상 기념물을 3·15기념물과 한 공간에 배치시키도록 했던 일들, 그리고 그게 지역에서 말썽이 됐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감싸안았다는 것이다.(그는 미리 준비한 마산시의 공문을 품속에서 꺼냈다. 거기에는 옛 북마산파출소 자리에 있는 ‘3·15기념비’와 ‘은상이샘’의 분리요청에 대해 관련단체의 별다른 이의가 없다고 적혀 있었다.)

3·15는 이승만의 폭정에 항거한 것이다. 그런데 3·15부정선거 당시 문인유세단을 이끌고 전국을 돌며 ‘이승만 국부론’을 외치던 이은상이 3·15기념비와 나란히 양립할 순 없다.

-기념사업회가 국회 이승만 흉상건립과 관련해 김호일 전 국회의원을 제명시킨 일도 있었잖은가.

△그건 워낙 전국적으로 문제됐던 일이고, 또 개인적으로 생각할 때 다른 배경도 있다고 본다. 그 일 말고도 문제가 있다. 3·15가 일어난 직접적인 계기는 자유당정권의 부정선거였다. 매년 기념식을 하는데, 한때 선거법에 위반된 국회의원과 자치단체장들이 주빈석을 차지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이건 그야말로 3·15에 대한 모욕이다. 지금도 행사하는 것 보면 늘 그렇다. 기념사업회 이름만 빼면 거기에서 주빈이 되는 사람은 늘 관청 인사들이다. 이게 얼마나 웃기는 이야기냐.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거기도 개혁되어야 한다. 기념사업회와 너무나 걸맞지 않은 많은 인물들이 이사로 있었고, 운영 자체가 이사들의 회비나 후원으로 운영되는 것도 아니었고,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으로 되는 건데, 제대로 되려면 기념사업회의 개혁과 인적청산이 이뤄져야 한다. 사실 김영삼 정권이 들어서면서 정권의 정통성을 과시하기 위해 했던 첫 사업이 4·19를 재평가하고 해외에 나가 있는 독립투사들의 유해를 국내에 찾아오는 일이었다. 그런 과정에서 3·15도 재평가하게 됐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까 3·15기념사업회를 초기에 구성할 때 지역출신 모 여당 국회의원이 상당히 역할을 했다. 출발부터 상당히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당시 여당과 정권을 활용했다고 볼 수도 있지 않은가.

△그야말로 시민의 자발적인 요구와 힘으로 이뤄졌어야 한다. 정치권력에 의해 출발했다는 것 자체가 문제를 만들었다고 본다. 이건 세력과 주체의 문제다. 시민의 주체적인 힘이 우선이 아니다보니 정치인에게 활용된 것이다.

-분명한 사실인가.

△분명하다. 당시 지역의 운동단체들이 먼저 모여 기념사업회 출범을 논의한 적도 없었다. 나도 당시 운동의 한 부분 담당하는 소위 재야단체의 장이었는데, 그런 제안을 받은 적이 없다. 또한 2년전 기념사업회 주최의 심포지엄이 있었는데, 그날 사회를 본 모신문사 간부가 서너번이나 모 여당 국회의원을 가리키면서 “기념사업회를 만든 분”이라고 강조했다. 심지어 학생들에게 박수까지 치라고 했다.

-김 대표도 3·15관련단체를 이끌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김주열 열사 추모사업회이다. 3·15가 4·19로 이어지게 된 결정적 계기는 김주열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보면 김주열이란 이름이 대단히 중요하다. 그 김주열에 대한 기념물 하나 우리지역에 없었다. 또 김주열은 소위 호남 사람, 남원 사람이다. 당시 5·16쿠데타가 일어났고, 그 이후 동서갈등 문제가 박정희 정권에 의해 만들어진 건 이미 아는 사실이다. 김주열의 시신이 안장돼 있는 진짜 묘는 남원에 있는데, 39년 동안 마산시민들이 3·15의 주역이었던 김주열 묘소를 공식적으로 한번도 참배하지 않았다. 어려운 시절이야 못한다 하더라도 기념사업회가 생긴 후에도 한번도 없었다. 그래서 추모사업회를 만들면서 공식적으로 참배단 모집했던 것이다. 그게 도리가 아닌가, 그거라도 해야 마산시민들이 그래도 삼일오를 떳떳하게 말할 수 있을 게 아닌가.

-김대표가 이끌고 있는 김주열열사추모사업회와 서로 협조해 나갈 수는 없었나.

△썩 잘 안됐다. 역사인식에서 차이 났기 때문이다. 어떤 차이냐 하면, 우리가 3·1절이라 했을 때 상징적 인물은 민족대표 33인이 아니라 유관순 열사다. 3·1운동 당시에도 얼마나 많은 사람이 감옥에 가고 희생당했나. 그러나 동서고금의 어떤 역사적 사건을 막론하고 상징적 인물이 있다. 그건 지도자나 주도자냐, 아니냐가 아니다. 그를 통해 후대사람들이 교훈으로 삼고 정신을 계승하고, 이런 동기로 삼는 인물이다. 그런데 3·15기념사업회는 다른 희생자도 많은데 김주열 열사만 부각시킬 수는 없다고 한다. 그런 식이라면 유관순 기념관도 지어선 안된다. 60년 의거 당시에도 많은 시민과 언론이 김주열을 크게 부각했다. 그러나 아무도 불만을 제기하지 않았다. 김주열의 희생이 없었다면 다른 희생자의 숭고한 희생이 전혀 빛을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기념사업회와 정면으로 대립각을 세울 수밖에 없고, 지역에서 큰 분란이 일어날 수도 있는데.

△나는 지금 이 시점에 와서 오히려 희생자 유가족들이나 또는 부상자들이 그렇게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기념사업회는 그렇게 말해선 안된다. 사업회가 앞장서서 김주열 거리 지정을 반대한다는 건 말이 안된다. 나도 마산서 태어나 마산서 자랐는데, 그동안 많이 참았다. 공식적으로 이런 말을 자제해왔다. 이제 역사를 바로 세우는 일을 더 이상 인간관계나 연고 때문에 멈칫 거릴 수 없다. 당장 노산문학관이 국가재정과 시재정으로 지어지게 돼 있고, 조두남 기념관도 개관식만 남겨놓고 있다. 이렇게 되면 과거 역사 인물과 관련한 마산의 기념관이 두 개가 된다. 한 사람은 친독재, 한 사람은 친일의혹을 받고 있다. 그런데 기념사업회는 여기에 대해 한마디도 안했다.

-직접 기념사업회에 참여해서 바꿔낼 수도 있지 않나.

△이유는 단순하다. 처음 이야기했듯, 기념사업회의 출발 자체가 문제 있다고 봤기 때문에 여러차례 요청을 받기도 했으나 원천적으로 문제 있다고 생각해서 안들어갔다.

-기념사업회가 국립묘지 준공 이후 앞으로 정신계승에 나설 수도 있지 않을까.

△그동안 성역화에 신경 쓴다고 정신계승을 못했다면 이해한다. 앞으로 정신계승을 하겠다면 제일 먼저 이은상기념물을 들어내고 노산문학관 반대운동에 나서야 한다. 그걸 바라는 정도가 아니라 요구이다. 기념사업회는 누구의 소유물이 아니다. 우리의 세금으로 운영되고 있다. 시민의 한사람으로서 강력히 요구하는 것이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후원계좌 :

열린사회 희망연대 / 경남은행 / 207-0065-6502-00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오동동14길 29 기산프라자 217호
Tel:055-247-2073, Fax:055-247-5532, E-mail:186@hanmail.net
그누보드5
Copyright © 희망연대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