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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연대와나, 그6년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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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동근 댓글 0건 조회 1,419회 작성일 06-01-16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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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연대와 나
그 6년의 기억
이동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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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7 차 총회장에서
2006-01-16ⓒhopenews

늙으니 기억도 가물가물하여 내가 창립회원이었는지 아닌지도 어슴푸레하다.

엊그제 7번째 총회를 했으니 6년의 세월인데  많은 생각이 들어 더 늙기 전에 일단 그간의 기억들을 더듬어본다,  심심해서...

경남은행 지하에서 창립총회를 할 땐 이게 맞나 걱정도 들었다. 그 땐... 지쳐있었다.

그 전인가 싶은데, 마창연합도 새날맞이도 해산되고 놀 때 의장님께서 “동근아, 요새는 ‘희망’이란 단어가 자꾸 떠오른다.” 하셔서 “저도 ‘희망책방’이란 이름으로 헌책방이나 해봤으면 좋겠습니다.”하며 서로 웃은 기억이 있다.

“열린사회 희망연대”라!  손석형 선생 축사대로, 닥쳐온 상황에만 대처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일을 만들고 부딪혀온 모임이라. 그래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이익단체도 아니고 무슨 부문조직이라 하기도 그런데 6년 역사에 회원이 350명이라...

회원이 많고 사람들 성격이 다양하다면 어느 방향을 잡기가 힘들 터인데 ‘희망연대의 정체성은 자주 민주 통일이 그 목적입니다.’하고 사무국장이 못을 박고 그게 당연히 받아들여진다니... 언젠가 운영위 자리에서 희망연대는 ‘시민운동’단체가 아니라 ‘시민사회운동’단체라고 구별하던 백남해 대표도 기억나고... 참 신기한 일이다.

말이야 쉬우나 과연 그럴만한 일들을 했는가 기억을 한 번 더듬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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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라크 현지조사단 출국기자회견
2006-01-16ⓒhopenews

“인간방패”가 떠오른다. 배상현군과 이해종 선생 그리고 2차 임경란 선생까지. COREA평화연대까지 말이다. 정말 숨차던 시절이었다. 개인적으로도 ‘니가 갈래?’하는 비공식제안을 받고 잠 못 이루고 고민했던 기억까지도.

“마산음악관” “마산문학관” 싸움도 선명하다.

마산음악관 옥상에서 구호를 외치던 호진이 사진은 참 멋있으니까. 이 과정에서 여러 사람 감옥가고 또 중국에도 갔다 오셨으니 말이다. 회원들의 참여를 항상 고민하는데 그때 시의회농성 참가율은 우리가 신명만 나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회원들의 참여 생각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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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산음악관 옥상에 선 고호진 회원
2006-01-18ⓒhopenews

615남북공동선언 실현을 위한 60일 통일대장정’

이 먼저 떠오른다.

2001년 그 여름 60일 동안 60명 회원들이 돌아가며 3.15탑에서 일인시위를 하던 그 가슴 벅찬 기억. 마지막 날 탑 뒤에서 기타를 치며 ‘부치지 않은 편지’를 부르던 박영운 카수의 모습. 참 아름다운 밤이에요!

3.15의거탑은 우리에겐 성지 아닌가.

그 꼭대기에서 김. 백 두 대표들이 성조기를 태워버렸으니! (내 눈으로 못 본 게 한이다.)

“아리랑응원단” 발족도 희망연대가 씨를 뿌렸다.

창원운동장에서 이북대표팀과 응원단을 향해 “반갑습니다.” “통일 조국”을 외치던 그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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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타는 성조기
2006-01-16ⓒhopenews

작년(벌써 작년이다) 평양 5.1경기장에서 10만 대관중의 “반갑습니다.” 환영을 받으면서 줄줄 눈물을 흘리던 기억과 겹쳐 떠오른다. (순호야, 현석아 돈도 가게도 접어놓고 금년에도 아리랑공연이 열리거든 꼭 같이 가자. 사람 일생을 좌우할 기억들도 있는 법이란다.)

우리가 정말 이런 일들을 했단 말인가? 대단해요!!!


김주열 열사 기념사업회와 함께 한 “동서화해를 위한 김주열 열사 고향방문” 기억도 난다.

용마고 학생들과 관광차 2대를 타고 남원을 거쳐 망월동 5.18묘지를 다녀오던 걸음. 그 버스 속에서 오락회를 휘어잡던 구성근 선생의 카리스마. 지수요금소 앞에서 차가 퍼져 그 빗속을 달려 차 1대에 구겨져서 돌아오면서도 소리 지르고 노래하던, 한 잔 술에 필이 꽂힌 김의곤, 왕감독, 노래 안 하고 끝까지 뻗대던 김성진 동지들의 그 귀여운 모습들.

참 많은 기억들이 있다. 슬픈 기억, 기쁜 기억, 함께 한 기억, 외로운 기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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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주열열사 묘소에 참배하는 참가단
2006-01-16ⓒhopenews

샌드위치 수레를 만들어 김영만 대표 혼자서 마산시내를 골고다언덕 오르듯이 돌아다니던 기억. 그 수레에 찬 물 몇 덩이를 건네 드리고 돌아서야 했던 마음 아픈 기억.

해병대 개구리복 꺼내 입고 “낙천낙선”운동을 참 별스럽게 하시던 상임대표 모습 등등...

그만하자. 내가 다 기억 못하는 참 많은 일을 했고, 해야 했으나 못했던 일들도 있겠다.


희망연대로 같이 만났던 사람들, 같이 놀던 추억들도 많다.

우리가 바쁜 걸까, 시대가 바뀐 걸까, 재미가 없는 걸까?

“낙남정맥 지맥찾기”해서 김해에서부터 산자락 찾아다니기도 했는데... 강정철선생은 홈페이지에 산행기와 사진을 꼭 올리시곤 했는데, 창욱이 너도 독종이다. 교통사고로 다리 부러진 놈이 지팡이 짚고 쫒아 다녔으니...

백기완 선생을 모시고 경남은행에서 강연회도 했는데, 그때 그 백선생의 쓸쓸한 모습.

홍중조 선생 모시고 “지역사 바로 알기” 공부도 했었고, 그때 정기식 선생이 경제 강의를 하셨지. 그때 그 강의 들으신 분들 돈 많이 버셨는지.

또 하면 좋겠다. 미국 달러가치가 떨어지고 있다는데 ‘금융자본주의’에 대해 공부를 하고 싶은데 정 선생 요거 좀 해주시면 안 될 란지요,  미국이 언제 망할 란지 참 궁금하구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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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수병 선생 묘소
2006-01-16ⓒhopenews

이수병 선생 기념사업회하고 선생의 묘와 안희제 선생 생가 방문하던 기억도 난다. 그 때 박철선생 삽살개 데리고 승용차로 따로 오셨는데 그 개가 차안에 실례해 버렸던 기억도 난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회원자격을 놓고 설전을 벌이던 총회모습도 난다.


노인네 말 늘어진다. 그만하자.

기억은 참 아름다운데 현실은 어두운가?

어려웠던 시절들 많았다. 할 일은 많은데 회원은 다 잃어버리고 돈도 텅 비었던 시절도 있었고 회원은 많은데 실제로 일 할 사람은 없는 세월도 있었다. 매도당한 시절도 있었고, 살림을 맡은 사람들이 사고 친 적도 있었다. 뒤에서 수군대던 그 소리들, 그 눈빛들...

김영만 의장님 상근하시면서 상임대표, 사무처장, 기획처장 온갖 일 다 하시며 끌어오셨는데 이젠 누가 하노 싶기도 하다. 그래 옛날엔 운영위 위에 ‘상임운영위’가 있었던 시절도 있었는데.... 뭐 어떻게 되겠지. 이 없으면 잇몸으로 사는 게 세상살인데. 350명 회원 중에 열성회원 몇몇이 또 나와서 새바람 넣겠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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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0일 통일 대장정의 마지막 주자 김영만 전 상임대표
2006-01-16ⓒhopenews

어찌 보면 아무 것도 안 하는 조직 같은데 우린 6년 동안 어떻게 이 많은 일들을 했을까!


희망을 갖자. 열심히 재밌게, 정직하고 순수하게 하자. 그래서 이 세상에 희망을 주자!

어둠이 깊으면 새벽이 곧 온다 했던가.

평생 안 망할 줄 알았던 일본도 망했다.

미국도 곧 망할 것이다.       

나는 믿는다!!!

 

길이 없으면 길이 없으면

길을 만들며 간다.

여기서부터 희망이다. 

- 고 은  <길>

 

2006-01-16 18:20
2006-01-16ⓒ희망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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