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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희망연대 댓글 0건 조회 1,155회 작성일 11-03-08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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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수 100주년 기념사업회 입장에 대한 반박
희망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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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08ⓒhopenews


이원수 탄생 100주년 기념사업회 입장에 대한 반박 

며칠 전, 이원수 탄생100주년기념사업회와 (사)고향의봄기념사업회(이하 기념사업회)에서 ‘이원수탄생100주년 기념사업 논란에 대한 기념사업회의 입장’이라는 언론 보도 자료를 냈다. 우리는 기념사업회 측에서 내놓은 장문의 문건을 보고 다시 한 번 큰 실망을 금할 수 없었다.
그들이 논란이라고 표현하는 것으로 보아 이원수 기념사업에 반대하는 여론이 날로 높아가고 있음은 인지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도대체 왜 이원수의 친일문제가 새삼스럽게 불거져 나오는지”에 대한 불만이 많은 걸로 보아 그 원인과 책임이 바로 자신들에게 있다는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거나, 아니면 알면서도 논쟁의 초점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억지를 부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아무튼 기념사업회의 이런 태도는 고인이 된 이원수 선생과 그 가족들에게는 참으로 불행일이 아닐 수 없다. 이는 우리도 전혀 바라지 않는 바이다.

문제의 발단은 지난 1월 24일 ‘이원수 탄생 100주년 기념사업 선포식’을 통해 기념사업회가 그동안 나름대로 심혈을 기우려 준비해온 각종 기념사업을 대대적으로 홍보하면서 시작된 것이다. 그날 행사 이벤트로 선보인 이원수의 흉상을 비롯한 각종 기념사업이 전적으로 시민들의 혈세인 창원시의 예산으로 지원받아 이루어진다는 것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이렇게 기념사업회에서 아동문학가 이원수를 문학 영역에서 공공의 영역에다 세운 것이다.
즉 문학 영역이라면 우리가 각 개인의 취향과 개성, 관심사에 따라 호, 불호, 등을 선택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낸 세금으로 누구를 기념한다는 것은 국가나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관계되는 공공의 영역으로 선택의 여지가 없이 강제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고향의 봄’이라는 노래를 좋아했든, 이원수의 아동문학에 매료되었든 그와 그의 아동문학을 좋아하는 애호가들이나 문학인들 그리고 문인단체 등에서 그를 기념하고 존경하며 기리는 것에 대해 우리가 신경을 곤두세우며 관심을 가진 바도 없고 그럴 생각도 없다. 
그러나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나서서 국민의 세금으로 누구를 기념한다는 것은 대단히 신중하게 따져보아야 할 것이 많아진다.
더더욱 기념관, 문학상, 흉상이나 동상, 문학상 제정, 도시브랜드와 같은 항구적인 기념사업을 할 때는 누구라도 그의 공적이나 업적뿐만 아니라 다른 흠결이 없는지를 꼼꼼히 따지고 살펴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이원수의 흠결은 일제 강점기에 친일작품을 썼다는 것이다. 그것도 스스로의 판단능력이 없는 당시 식민지 조선의 어린이들을 일제의 병정이 되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도록 한 내용이다. 일본 병정이 된다는 것은 일제 침략전쟁의 총알받이가 되라는 것이다. 지금도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범죄는 더 엄중한 처벌을 받는다.
대한민국의 근현대사에서 36년 동안 일제의 식민지배로 온갖 수모와 고통을 겪은 우리민족에게 친일보다 더 큰 흠결이 어디 있단 말인가?

그러함에도 기념사업회에서는 해방이후 이원수의 여러 작품을 내세우며 마치 친일행적에 대한 치열한 반성이라도 한 것처럼 그리고 그런 작품이 친일을 덮고도 남는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 
분명한 사실은 그는 단 한 번도 반성을 한 일이 없다는 것이다. 다만 일제 말기 그의 생활이 고달프고 힘들었다는 것을 여러 번 강조했다. 마치 사후에라도 친일작품이 발견되었을 때를 대비해 가족의 생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친일을 하게 되었다는 변명을 할 수 있게 말이다.
그래서 인지 지금 기념사업회측에서 이원수의 친일작품 활동을 ‘생계형 친일’이라고 강변하고 있지만 그 말이 참으로 구차하게 들리는 이유는 동시대를 산 많은 문인들 중에는 일제에 저항하거나 절필을 해버린 문인들이 많았다. 그리고 이원수가 친일작품을 쓰고 있을 그 시간에 가족의 생계를 돌볼 겨를도 없이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풍찬노숙을 하며 일제에 저항한 숱한 독립운동가들이 있었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기념사업회 측은 한발 더 나아가 해방이후 이원수를 마치 반독재 투사처럼 말하고 있다.
아마 이원수가 독재에 대한 저항감은 가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런 의식이 아동문학에 반영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그로인해 그가 독재로부터 탄압을 받은 일도, 불이익을 받은 일이 없다. 기념사업회가 이원수의 친일을 상쇄시킬 명분을 찾다보니 자신들도 모르게 과장하고 미화하는 측면이 많아지는 것이다.  참으로 안쓰럽게 느껴진다.
차라리 그냥 “그래도 이원수의 아동문학은 참 훌륭하다”라고만 말한다면 우리는 그 말에 굳이 이의를 제기할 생각은 없다.

또 하나, 기념사업회가 그동안 크게 잘못하고 있는 것이 하나 있다. 현재 이원수의 문학관에 이원수의 친일시 ‘지원병을 보내며’라는 동시를 전시하고 있다.  문제는 바로 그 옆에 이오덕 선생이 이원수의 친일을 변호하는 글을 붙여놓은 것이다.
이오덕 선생의 글은 마치 법정에서 변호사가 범죄를 저지른 피고인을 변호하는 말과 흡사해 실소를 자아내개 한다. 이원수와 이오덕 선생 두 사람은 각별히 절친한 사이였다는 것을 감안 할 때 이오덕 선생의 심정을 이해 못할 것은 없다. 
그러나 본래 기념관에 친일작품도 동시에 전시하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취지는 과오도 솔직히 인정하고 그에 따른 비판도 반성하는 의미로서 겸허히 받아들이며, 그리고 후대들에게 나와 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말라는 교훈으로 남기고자 해서이다. 그런데 이건 아니다.
기념사업회는 이오덕 선생의 말씀을 빌려 이원수의 친일에 대한 과오를 면죄 받고자 하는 의도가 뚜렷이 엿보인다. 그동안 기념사업회는 이런 식으로 문학관을 방문하는 시민들과 어린 학생들에게 이원수의 친일은 충분히 이해되고 용서 받을 수 있는 것으로 강변하고 있었음은 물론 결국은 친일이 별것 아니라는 생각을 심어준 것이다.
그래서 기념사업회의 한 인사가 공식석상에서 “이원수의 친일은 도도히 흐르는 대하에 한 방울의 물에 지니지 않는다.” 는 말을 당당하게 하게 된 것이다. 
이는 평생을 올곧게 사시면서 문인으로서 교육자로서 덕망과 명망을 쌓아온 이오덕 선생마저 욕보이는 짓이다.

우리는 기념사업회의 각성을 촉구한다. 지금 이렇게 기념사업을 반대하는 여론이 비등하고 있는 현실 속에서 “사회적 합의” 운운하고 있는 걸보면 이원수의 친일보다 기념사업회의 문제가 더 심각하다는 생각이 든다.
친일보다 더 큰 문제는 친일을 반성하지 않고 교묘히 은폐하는 일이며, 그보다 더 무서운 것은 친일이 뭐가 그리 큰 죄냐고 강변하는 자들이다.
훗날 이원수의 친일보다 기념사업회의 지금 행태가 더 많은 비판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경고해 둔다.


2011년 3월 7일


친일작가 이원수 기념사업저지 창원시민대책위원회
2011-03-08 10:42
2011-03-08ⓒ희망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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