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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희망연대 댓글 0건 조회 1,189회 작성일 01-06-28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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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선장사 어미 얕잡아 보았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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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에 가서 아들을 만나도 부끄럽지 않을 만큼만 싸우겠다는 김을선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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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삭발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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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23일 서울 종로구 수송동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 사건을 접수시켰다
 

"생선장사 어미 얕잡아 보았더냐"
의문사 정경식 씨 어머니의 13년 싸움 - ohmynews에서 펌 -


88년 3월 2일, 창원 불모산에선 산불 진화 작업이 한창이었다. 불길이 거의 잡혀갈 즈음, 화재 수습반은 불에 그을린 채 사방에 흩어져 있는 한 구의 유골을 발견했다.

이상한 점은, 뼈가 불에 탈 정도였는데도 타지 않은 명찰 하나가 함께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다름 아닌, 9개월 전에 실종된 정경식 씨의 대우중공업 사원 출입증이었다.

대우중공업 노동자로 노동조합지부장 선거운동에 참여했던 정경식 씨가 왜 그런 죽음으로 돌아와야 했는지는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았지만, 유골이 발견된 현장의 상황만 놓고 보더라도 상식적으로 납득되지 않는 몇 가지 의혹이 쉽게 제기된다.

첫째, 목을 맸다고 추정되는 나뭇가지에 끈이 매달려 있는데, 그 끈에는 목을 맨 흔적이 전혀 없었다. 둘째, 비나 흙에 휩쓸려 유골이 흩어졌다고 해도 가벼운 부위는 더 멀리, 무거운 부위는 보다 가까운 지점에서 발견되기 마련인데, 반경 14-17미터 내외에 흩어져 있는 유골은 그런 자연 원리를 완전히 무시하고 있었다.

셋째, 목을 맸다고 추정되는 나무 아래에서 시신이 썩기 시작했다면 토양이 변색되어 있어야 하는데 주변의 토양과 아무런 차이가 없었다. 결정적인 의혹은 상의가 완전히 불에 타버렸는데, 사원 출입증만 불에 타지 않고 원형 그대로 남아 있었다는 것이다.

아들을 찾아 애타게 헤맸던 어머니, 김을선(66) 씨는 9개월 만에야 불모산 산자락에서 아들의 유골을 수습해왔다. 불에 탄 뼈 조각 하나라도 놓칠세라 사과 궤짝에 차곡차곡 담아 마당 한켠의 헛간에 데려다놓았다.

밤마다 촛불을 밝히고 어머니는 가슴을 뜯으며 울었다. 집안의 기둥이었던 둘째. 가난하고 못 배운 부모 만난 죄 밖에 없는 아들이 왜 이런 끔찍한 죽음을 당해야만 했는지 어머니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야당이 뭔지 여당이 뭔지도 몰랐어. 그런 건 우리 해당이 아닌 일인 줄 알았지. 우리 경식이가 죽고 나서야 텔레비전을 보기 시작했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민주노조라는 것도, 우리 아들이 민주노조 세우려고 그렇게 뛰어다녔다는 것도 아들 죽은 다음에야 알았어. 우리 경식이가 무식한 엄마를 그렇게 깨우쳐 준 거야."

가난한 농사꾼의 6남매 중 셋째로 태어난 어머니는 학교라고는 문전에도 가보지 못했다. 22살 꽃다운 나이에 시집을 와서도 허리가 휘어지도록 일만 하며 살았다. 생활은 늘 곤궁했다.

무릎이 불편한 시어머니, 불의의 사고로 척추를 다쳐 꼼짝도 할 수 없는 남편, 2남 1녀의 가장 아닌 가장으로서 생선 함지박을 이고 이 동네 저 동네 발바닥이 부르트도록 돌아다녀야 겨우 입에 풀칠을 할 수 있었다.

경식이는 그런 집안형편 때문에 기계공고마저 중퇴하고 군대에 다녀오자마자, 노동자로 대우중공업에 입사해야 했다. 그래도 아픈 어미 마음을 잘 헤아려주었다. 새벽 3시 반이면 생선을 떼러 가야 하는 엄마 고생한다고 불편한 기숙사 생활을 자청한 착한 아들이었다.

대부분의 의문사들이 그렇듯이, 경찰은 정경식 씨의 죽음을 '자살'로 종결지었다. 13년에 걸친 어머니의 진상규명 투쟁이 시작된 것도 그 때부터였다. 새벽 2시면 일어나 집안일 해놓고 어머니는 생선을 떼러나갔다.

생선 함지박을 지고 돌아다니면서 유인물을 돌렸고, 관련자들을 만나 진실을 밝혀달라고 호소했다. 하지만 이름 없는 한 노동자의 죽음에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혼자만의 서럽고 힘겨운 싸움이었다.

서울에서 유가협 부모님들이 내려온 것은 아들이 유골로 돌아온 지 반년쯤 지나서였다. 이 날의 일을 어머니는 돌아가신 부모님이 살아 돌아오신 것보다 더 기뻤다고 회고한다.

어머니는 아들의 유골과 꼬박 3년간 함께 살았다. 사과궤짝에 넣어둔 채로 1년은 촛불을 밝히고, 2년은 전기 불로 대신하면서. 그 참상을 보다못한 유가협 부모님들이 어머니 몰래 유골을 모란공원으로 모셔갔다. 그래도 어머니는 장례는 치를 수 없다고 못 박았다. 진상규명이 되면 사과궤짝이 아닌 진짜 관을 짜서 당신 손으로 직접 장례를 치러주겠다고.

아들의 죽음은 그렇게 어머니를 투사로 만들어갔다. 어머니는 10여 년 세월을 아들의 진상규명을 위해서라면 어디든 마다하지 않고 쫓아다녔다. 서울과 마산 집을 오르내리며 언제나 집회장과 시위 대열의 맨 앞에 서 있었다.

그 과정에서 아들 뻘 되는 경찰에게 붙잡혀 맞기도 무수히 맞았고, 공무집행방해, 법정소란, 폭행 등의 전과기록을 얻기도 했다.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삭발투쟁으로 호소할 때도 어머니는 여성으로서는 유일하게 머리를 깎았다.

"내가 괘씸한 거는 다른 게 아냐. 그 놈들이 우리 경식이를 죽이려고 맘먹었을 때, 아버지가 누워 계시니까, 어미가 생선 장사나 하고 돌아다니니까 우리 아들을 얕잡아보고 그랬지 싶은 생각을 하니까 분하고 괘씸해서 잠이 안 오는 거야. 아무리 못 배우고 못 가르친 썩은 어미여도 어미가 눈 시퍼렇게 뜨고 살아 있는데…. 그렇게 죽은 경식이가 불쌍해서라도 나는 가슴에 묻어놓고 살 수가 없었어."

지난 11월 23일, 마침내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 아들의 사건이 1차로 진정접수가 되었다. 마산에서 올라오신 어머니의 눈가에 이슬 한 점이 맺혔다. 아들의 사건이 1차로 진정되었다는 기쁨의 눈물은 결코 아니었다. 1차로 진정이 되든 마지막으로 진정이 되든 유가협은 하나고, 모든 의문사가 종결될 때까지 끝까지 함께 한다는 어머니의 마음 속 다짐은 변함이 없었다. 다만 모진 세월을 함께 잘 참고 견뎌왔다는 회한이 다른 유가협 부모님들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주름 깊은 눈가를 축축하게 적셨던 것이다.

"어떨 땐 내 살아오는 이야기를 하면서도 부끄러운 생각이 들 때가 있어. 자랑스러운 이야기는 아니지. 편찮은 시어머니에 불구인 남편, 정신이 온전치 못한 큰아들, 경식이마저 그렇게 보내고…. 할머닌 참 복도 없다, 액운도 많다…. 뒤에서 그렇게 수군거릴 거 같아. 그런데 얼마 전에 우리 큰아들이 그래. 엄마, 부끄러워하지 마세요. 나는 세상에서 우리 엄마를 제일 존경해요, 훌륭한 엄마예요, 그러는 거야."

아들의 진상규명을 위해 13년을 싸워온 동안 어머니도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 및 진상에 관한 법'의 대상자가 되었다. 경찰에게 얻어맞은 후유증으로 하루도 욱신거리지 않는 날이 없는 다리와 허리가 법에 의거, 보상이 된다고 해서 신청을 해둔 상태다.

돈 몇 푼 때문이 아니라, 아들 보기에 부끄럽지 않게 싸워왔으므로 어머니는 망가진 몸이 조금은 떳떳하게 느껴진다. 못 배우고 가진 것 없는 생선장사 어미라고 해도 이제는 어느 누구도 당신 아들을 함부로 얕잡아보지 못할 것이다. 13년 세월, 어머니 당신의 몸으로 그렇게 역사를 바꾸어낸 것이다.

정경식(당시 29세) 씨는 1984년 대우중공업 창원공장에 입사, 87년 "근로자를 위해 노동조합을 만들어야 한다"는 일념으로 민주노조 측의 노조지부장 선거운동에 참여했다가 6월 8일 실종되어 이듬해인 88년 3월 2일 창원 불모산에서 유골로 발견되었다. 실종되기 전 다른 측 후보와 다툼의 과정에서 고소를 당했다는 이유로 경찰은 정경식 씨의 죽음을 '합의금을 마련하지 못한 비관자살'로 마무리지었으나, 당시 통장에 800만원이 적금되어 있는 등 자살을 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고 한다.
 

2001-06-28 17:41
2001-06-28ⓒ희망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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