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인터뷰) 아들에게 '주열'이라 이름 지어 준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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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희망연대 댓글 0건 조회 1,479회 작성일 08-06-17 14:39본문
(희망인터뷰) 아들에게 '주열'이라 이름 지어 준 사연 | ||||||||||||||||||||||||||||||
경자(庚子에)년에 일어난 3.15를 기려 딸아이는 경자로, 김주열을 기려 아들은 주열로 지었지요. | ||||||||||||||||||||||||||||||
희망연대 | ||||||||||||||||||||||||||||||
지난 5월 말, 김주열열사 추모사업회 사무실로 한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대뜸 "3.15아트홀에 3.15도 있고, 4.19도 있는데 김주열은 없다는 현수막을 내건 단체가 맞느냐?"는 질문부터 먼저 했다. "드디어 누가 시비를 거는 구나"하는 생각에 마음을 단단히 먹으며 "예,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수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목소리로 짐작컨데 상당히 연로한 분인 것 같았다. 그러나 밝은 목소리로 자신을 3.15 아트센터 바로 옆 아파트에 살고 있는 엄두영이라고 소개하면서 이제 자녀들은 다 독립하고, 수년전 공직을 은퇴해 지금은 노부부끼리 살고 있다는 선생은 ‘3.15, 4.19를 직접 겪은 사람으로서 김주열이 없었다면 3.15는 전혀 다른 모습이 되었을 것’이라며 3.15, 4.19가 일어난 경자(庚子)년에 태어난 딸의 이름을 경자로 짓고, 이어서 태어난 아들의 이름을 김주열의 이름을 따서 주열이라고 지었다.’고 했다. 선생은 우연히 집근처의 3.15 아트센트 앞에 걸려있는 현수막을 보고, 아트센터 사무실을 찾아가 "이 넓은 공간에 왜 김주열사업회 사무실 하나 들어 갈 곳이 없느냐? 주열이가 없었으면 3.15고 4.19고 없었다"라고 하니까 직원이 "우리는 모르고 시청에서 다 한다"는 대답을 듣고 김주열 추모사업회에 격려라도 해주고 싶어 아트홀 사무실에서 김주열열사 추모사업회 전화번호를 알아내 연락을 해 온 것이었다. 80을 바라보는 나이에 이토록 3.15와 김주열을 생각하는 분이 있다는 것이 있다는 것이 신기하고도 고마웠다. 3.15정신이 변질되어가고 있는 마산에서 선생을 만나 진정한 3.15정신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보고 싶어 대담의 자리를 마련했다. 대담은 3.15아트센터 야외사무실과 마산상고(현 용마고) 앞의 김주열열사 흉상, 대한통운 앞 김주열열사시신인양지 앞에서 이루어졌다. (ⓒ hopenews)
김) 지난번 통화 때 바로 찾아뵙는다고 했는데, 그동안 시급한 일이 많아 일주일가량 늦어지게 되어 죄송합니다. 엄) 아닙니다. 시간이 많은 내가 찾아가는 게 맞지요. 그렇지 않아도 내일, 모레쯤 사무실로 찾아갈까 했습니다. 김) 선생님께서 김주열에 대해 그토록 깊이 생각하는 이유가 있으십니까? 엄) 지금 젊은이들은 실감을 못하겠지만, 3.15, 4.19 당시 김주열이 없었다면 4.19혁명이 많이 달라졌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김) 제가 바로 김주열하고 친구인 마산상고 동기입니다. 지금 촛불시위하는 중학생,고등학생 그 나이지요. 지금 많은 어른들이 어린 학생들이 세상에 대해 무엇을 아냐고 하지만, 중학교 다니던 때 우린 이승만이 나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사회의식이 있었던 거지요. 엄) 제가 6.25 참전으로 부상을 입은 몸입니다. 최근까지 신청을 안했다가 공직에서 은퇴 후 작년에 보훈처에 국가유공자증을 받아 연금도 받고 있지요. 김) 저도 월남전에 참전, 불의의 전쟁으로 인한 육체적 정신적 고통으로 화랑무공훈장수여자임에도 훈장도 찾지 않았다가, 얼마 전에 보훈처에서 국가유공자증을 찾아 놓았습니다. 2, 3년 전부터 그 전과는 달리 음식점이나, 술집에서 저에게 위협적인 태도와 욕설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나도 '대한민국 국가유공자’임을 밝힐 필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엄) 김주열 가족들이 있다면 사무실도 하나 없는 지경까진 안되었을 건데... ... 가족이 없습니까?
김) 예. 부모님들은 다 돌아가셨고, 마산에는 가까운 가족이 없습니다. 남원이 고향이거든요. 엄) 아. 그렇습니까? 고향이 남원이었군요. 세월이 워낙 많이 흐르다 보니 가물가물합니다. 김주열 어머니가 유명했는데... ... 김) 권찬주 여사라고 대단한 분이셨지요. 김주열이 3.15 이후 행방불명이 되고난 후 권찬주여사가 계속 찾아다녔기 때문에 이미 마산시민들 대부분은 김주열의 이름을 알고 있었지요. 시청 옆의 못에 시신을 버렸다는 소문이 돌아 못의 물을 파내기까지 했으니까요. 엄) 3.15 이후 한동안 조용하다가 김주열이 시체가 마산 앞바다에 떠오르고 나서 큰 데모가 일어났고 바로 서울서 4.19가 일어났지요? 김) 예. 마산 앞바다에 떠오른 김주열시체를 도립병원 (현 마산의료원)에 갖다 두었는데 마산시민들이 그걸 보고 흥분해 3.15보다 더 큰 데모가 일어났고 바로 4.18 고대생 데모에 이어 4.19혁명이 일어나게 된 거지요.
(용마고 앞의 김주열 열사 흉상으로 옮겨서) 김) 이곳이 바로 김주열열사 흉상입니다. 몇 년전에 김주열열사 동기들이 정성을 모아 만들어 교정안 좋은 곳에 두었는데, 학교밖으로 옮기면서 너무 초라해져버려 마음이 아팠는데, 김주열열사 추모사업회 회원들의 정성과 경상남도와 마산시의 지원을 받아 올해 새롭게 만든겁니다. 엄) 유족이 없어서 그런지 김주열이 너무 푸대접을 받는 것 같았는데 흉상이 있었네요. 애 많이 쓰셨습니다. 마산에 있으면서도 통 몰랐네요. 3.15 기념사업회에서는 왜 김주열을 챙겨주지 않았습니까? 김)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가지만, 현실이 그렇습니다. 김주열추모사업회를 경쟁단체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사람의 생각이 다를 수도 있고 정치적 성향도 다를 수 있겠지만, 3.15를 자랑스러워 하는 마산, 그것도 3.15를 내세운 단체에서 김주열을 무시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김주열추모사업회가 남원에도 있고, 작년의 김주열 186대장정 행사에는 마산시장과 3.15기념사업회회장도 김주열행사에 결합해 성화를 들고 뛰었는데도 말입니다.
(대한통운 앞 김주열열사 시신인양지 표지판으로 옮겨서) 김) 여기가 바로 48년전 김주열열사의 시체가 떠오른 곳입니다. 엄) 아들 이름까지 주열이라고 짓고, 마산에 살면서 한번도 못 와 봤군요. 마산시에서 좀 더 시민들에게 알려야 하는것 아닙니까? 저기 구암동 묘지는 한번 가봤는데... ... 큰돈을 들여 잘해놨던데... 3.15하면 김주열이고, 4.19당시엔 김주열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는데 안타깝네요. 김) 예. 사실, 지금 마산에서 3.15를 국가기념일로 만들자는 움직임이 있는데, 김주열이 있었기에 4.19가 성공했고 마산시민들이 영웅대접을 받았습니다. 3.15희생자나 부상자들도 쉽게 국가유공자로 대접받을 수 있었던 것도 다 김주열 때문이었기 때문에, 당시의 수많은 희생자들도 다 고마워했습니다. 그 누구하나 왜 죽은 사람이 많은데 김주열만 내세우느냐고 하지 않았지요. 엄) 당시에는 김주열이 마산이었고, 3.15보다 김주열이 더 유명했지요. 김) 4.19 이후 민주당정권은 말할 것도 없고 5.16이후 국가재건회의 때 박정희씨도 마산에 내려왔습니다. 당시에 마산시민들이 얼마나 타지역 사람들에게 대접을 받았는지는 지금 마산시민은 상상할수 없을 겁니다. 김주열과 마산상고 동기였던 우리 동기들이 김주열친구라는 이유로 서울로 수학여행을 갔을 때, 윤보선대통령을 만났으니까요. 엄) 3.15당시 29살인가 30살인가 나이로 막 결혼했던 제가 이제 80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는데도 그때가 생생하게 기억이 납니다. 저도 마산시민으로서 3.15,4.19에 참여 이승만 독재정권을 무너뜨리는 경험을 하면서 얼마나 감격했던지... 딸아이 이름을 3.15,4.19가 일어난 해를 따서 경자라 짓고 아들을 김주열의 이름을 따 주열이라 지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김대표 이야기를 듣고 보니, 김주열이 하나 챙기지 못하면서 3.15를 네세워 개인적 이득을 취하려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듣고 보니 정말 마음이 아픕니다. 김) 아닙니다. 누구 탓을 하기보다 다 저희들이 잘못한 것입니다. 건강도 좋지 않은데다 여러 가지로 부족한 사람이 김주열열사기념사업회를 붙들고 있는 것은 김주열열사가 제대로 평가받고 마산에서 올바로 자리잡기까지 해야할 일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도 마산 토박이로서 식당에 들어가면 꼭 아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데, 아직도 김주열열사가 갖는 의미를 모르고 폄하하거나 소홀히하는 것을 보면 힘이 빠지고 외로울 때가 많습니다. 엄) 세상인심이라는 게, 실리를 찾아 이리저리 흔들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김) 이리저리 흔들리다가도 정말 이건 아니다 싶을 때는 바로 서는 게 세상인심이기도 하니까 그걸 희망으로 생각하고 일을 하고 있습니다. 엄) 덕분에 오늘 이렇게 김주열흉상도 보고 시신인양지도 보니까 정말 감회가 새롭습니다. 저야 이제 많이 늙었지만 김대표 같은 분이 꼭 김주열을 지켜주시기를 바랍니다. 김) 저 혼자 하는 일이라면 저도 지치겠지만, 제 뜻을 이해하고 같이 해주는 분들이 있으니까 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선생님 같은 분이 있다는 것만 해도 정말 용기를 얻게 됩니다. 건강하시고 또 연락 드리겠습니다. 엄) 예. 가끔씩 만나 김주열 이야기도 하고 옛날 얘기도 했으면 합니다. 3.15정신은 무엇인가? 형식적 민주주의가 아닌 실질적 민주주의, 국민의 의사를 무시하는 말뿐인 대의민주주의가 아닌 직접민주주의 정신이 아닌가? 48년전 목숨을 바쳐가며 싸웠을 때도 그러했고 촛불을 들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평화적으로 싸우는 지금도 그러하다. (ⓒ hopenews) | ||||||||||||||||||||||||||||||
2008-06-17 14:39 | ||||||||||||||||||||||||||||||
2008-06-17ⓒ희망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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