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산시민에게 4월혁명의 주인공이라는 영광을 안겨준 김주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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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희망연대 댓글 0건 조회 1,251회 작성일 08-03-18 00:00본문
마산시민에게 4월혁명의 주인공이라는 영광을 안겨준 김주열 | ||||||||||||||||||
김영만 | ||||||||||||||||||
자신의 주검으로 4월 혁명의 찬란한 횃불이 되다. 해마다 마산의 봄은 유별나게 온다. 3월이 시작되면 거리마다 3.15라는 숫자가 허공에서 매달려 봄바람을 안고 춤을 추고 민, 관 행사장 곳곳에서 민주니, 정의니 하는 낱말을 자신들의 정치적 색깔로 변색시켜 목청을 높이고 있다. 듣는 입장에서 몹시 썰렁해지는 순간이다. 세상은 본래 그런 것이라 치고, 그래도 이런 것을 한 번쯤 이라도 생각해 보고 말씀들 하시라고 부탁하고 싶다. 3.15, 4.19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김주열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김주열을 빼고 4월 혁명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동서고금의 모든 역사가 그렇듯이 예상치 못한 우연한 사건이 역사를 바꾸는 대전환점이 되는 경우는 아주 흔한 일이다. 사실 그 우연이라는 것은 그 시대의 총체적 상황이 만들어낸 필연적 사건이었다. 김주열의 죽음 역시 위기에 처한 독재정권이 만들어 낸 필연적 사건이었고 역사는 그를 선택했고, 역사의 부름을 받은 김주열은 자신의 주검으로 4월 혁명의 찬란한 횃불로 타올랐던 것이다. 그렇게 김주열은 마산시민들에게 4월 혁명의 주역이라는 영광을 안겨 주었다.
그때 마산시민은 곧 김주열이었고 김주열은 마산시민을 지칭하는 이름이었다. 이런 이유로 60년 3, 4월에 순국하신 민주열사들이 많지만 마산시민들에게 김주 열은 아주 특별한 의미를 가지게 된 것이다. 지금도 타지인들에게 예전엔 마산이 민주1번지였다고 말할 때 3.15의거’라는 단어보다 ‘김주열’을 거명하면 훨씬 빨리 수긍하고 감동적으로 받아드린다. 그렇다면 그동안 마산은 김주열에게 어떤 대접을 해 왔을까? 매우 부끄럽고 한심한 일이지만 5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나간 동안 아무것도 한 일이 없다. 아니 철저하게 외면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다행히 지난해부터 경남도와 마산시에서 처음으로 김주열 추모사업에 조금씩이나마 관심을 가져주어 다행한 일이지만 아직은 곳곳에서 거대한 얼음장벽을 만나는 기분이다.
최근 마산시는 수백억원씩을 들인 3.15관련 건물을 두개나 지었다. 옛날 3.15회관자리에 세운 ‘마산노인종합복지관’과 개관을 눈앞에 둔 ‘3.15아트센터’이다. 이 두 건물에 3.15관련 단체가 입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고 그렇게 결정되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김주열추모사업회는 거론조차 되지 않았다. 만일 3.15에서 김주열이 없었다면, 그래서 4.19가 민주혁명으로 성공하지 못했다면, 3.15묘지가 국립묘지로 승격되고 위에 말한 두 건물을 짓는 일들이 결코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마산이 민주성지로 인정받고 싶고. 3월 15일이 국가기념일로 제정되기를 바라며, 3.15의거사가 교과서에 실려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그 이전에 김주열을 먼저 챙겨야 한다. 그게 남원의 아들이 마산에서 죽어 마산의 아들이 된 김주열에 대한 마산시민들의 의리요, 도리이며 3.15기념사업의 순서다. 김영만 (김주열열사추모사업회 대표) | ||||||||||||||||||
2008-03-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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