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소출력방송 하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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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희망연대 댓글 0건 조회 4,176회 작성일 08-02-10 14:00본문
| 우리도 소출력방송 하면 어떨까요? | ||||||||||||||||||
| "아아, 여기는 희망의 목소리입니다." | ||||||||||||||||||
| 희망연대 | ||||||||||||||||||
(사진위. 소출력라디오방송의 성공사례로 평가받고 잇는 성서공동체FM 홈페이지. www.scnfm.or.kr 를 방문하면 국내 소출력라디오방송의 현재 모습을 볼 수 있다.) 희망을 찾는 사람들 회원 단합대회로 팔룡산 입구에서 만나기로 한날, '댓거리와 시청에는 흐렸다가 개겠고, 팔룡산 근처는 맑겠습니다'라는 일기예보를 하는 라디오가 있다면?' '오늘부터 모레까지 마산시청옆 이마트에서는 개업2주년 기념 전품목 30%세일 행사를 합니다.' '마산사랑시민연대에서 주최하는 통일 마라톤대회 참여자 중 김**씨가 교통사고를 당해 입원했습니다. 가족이나 동료분들은 지금 즉시 **병원으로 와 주시기 바랍니다.' 라는 소식을 달리는 차속에서 들을 수 있을까? 황당하게 느껴지지만 지금 대구의 성서,서울의 마포나 관악에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다. 소출력 라디오 방송이란, FM주파수 대역에서 1W 이하의 작은 출력을 이용해 제한된 지역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방송이다. FM주파수(88∼108㎒) 대역에서 작은 출력을 이용해 반경 5㎞ 안팎의 권역에 송출하는 저비용 지역밀착형 방송이다. 국민편익증진을 위한 실용적인 목적에 한해 비영리 법인이 실시하며 기존 라디오방송과는 달리 광고방송을 할 수 없다.소출력 라디오 방송은 미국, 일본, 영국, 호주 등에서는 보편화 되어있는 방송 형태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950년대 중앙대, 경희대, 연세대 등 서울 소재 대학에 소출력 교내 라디오 방송을 허가해 운영했다가 70년대에 폐지했으며, 93년 대전 엑스포 개최 기간에 엑스포FM을 한시적으로 개국하기도 했다. 이후 90년대 중반부터 소출력 라디오의 도입이 논의되기 시작하여, 2004년 방송위원회에서 소출력 라디오 방송 도입을 위한 시범사업 추진 계획을 확정하였다. 그리고 2004년 11월, 수도권 지역 3개(마포·관악·분당)·비수도권 지역 5개 시범사업자(충남·경북·대구·광주·나주)를 소출력라디오방송 시범사업자를 선정했다. 이후 방송위원회와 정보통신부는 소출력 라디오방송을 지상파방송 사업자로 허가한다는데 최종 합의했으며, 2005년 4월 분당지역 소출력 라디오방송국인 분당FM을 실용화시험국으로 처음 허가하였다. 이에 따라 분당지역 주민들은 FM주파수 90.7㎒ 채널을 통해 소출력 라디오 시범방송을 청취할 수 있게 되었다. - 네이버 용어사전)
우리가 동창회처럼 부담없는 자리에서 두서없는 이야기가 이곳 저곳에서 난무해, 누가 전체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을 경우에, 누군가가 자리에서 일어나 '지방방송은 끄고 중앙방송에 집중하라'는 소리를 하며 장내를 정리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무심코 하는 이 말 속에 해방이후, 이땅의 방송의 비민주성, 일방성, 중앙편중성이 그대로 담겨있다.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는 마오쩌둥의 말을 아무리 세련된 형태로 나타나더라도 권력은 기본적으로 폭력성을 갖는다는 의미로 해석한다면, 이른바 지금의 지식정보사회에서는 '권력은 총구(폭력), 정보, 미디어에서 나온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6~70년대 빈번했던 아시아,아프리카,남미의 군부 구테타의 성패 여부는 얼마나 많은 총을 동원할 수 있느냐와 얼마나 완벽하게 미디어(신문,방송)을 장악할 수 있느냐에서 갈렸던 것을 보면 여실히 알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5.16 군사구테타 세력이 한강을 넘은뒤 제일 먼저한 일이 중앙청으로 진입하는 것과 것과 남산의 KBS방송국을 점거, 혁명공약을 강제로 방송하게 한 일이었다. 80년 5월,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처참한 비극으로 끝나고 전두환 군부세력이 정권을 장악할 수 있었던 것도, 계엄군이 신문과 방송을 완벽하게 장악, 계엄군에게 불리한 보도는 철저하게 차단하고, 여론조작을 통해 광주시민들을 폭도로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만일 광주항쟁 당시, 전국에 시민들이 집접 운영하는 방송국이 있었다면 광주에 투입된 계엄군의 광주시민 학살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폭압에 항거한 민중들의 에너지에 편승해 권력을 쥐었던 동서고금의 모든 권력자들은 권력을 쥐자말자, 지금까지 민중을 선동했던 모든 대항미디어를 없애버리거나 체제내 미디어로 변질시켜 어용미디어로 만들어 왔다. 멀리 진시왕의 분서갱유로부터 당나라 여제 측천무후가 권력을 장악한 후의 형태가 그렇고 나찌독일 선전상 괴펠스가 행한 히틀러 우상화와 유대인 말살정책은 모두 교묘하게 미디어를 활용을 통한 것이었다. (복잡한 현대 미디어이론을 거론할 것 없다. 몇년전 이른바 '쓰레기 만두파동' 때 언론의 신중하지 못한 보도로 흥분한 여론때문에 성실한 만두공장 사장이 자살했던 사건이나, '황우석 사태'를 둘러싼 사태를 보면 알 수 있다.) 한 사회의 주류권력은 자신들의 이익을 사회 전체의 이익인 것처럼 포장한 '이데올르기'를 마치 '여론' 인것처럼 주류매체를 통해 인위적으로 형성해 나가려는 속성이 있기 때문에 여론형성에 결정적 역할을 하는 미디어는 절대로 독과점되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지식정보사회로 진입한 지금, 정치적,경제적 민주화와 함께 정보민주화가 절실한 이유이다. 2006년 9월 29일, 드디어 1년여의 시험방송시대를 마감하고 소출력 라디오방송이 법적인 근거를 마련, 공식적 실체를 드러 내었다. 소출력 라디오방송의 민간허용은 그동안 국가가 통제해 오던 전파의 민주화, 뉴스생산의 지역화라는 라는 점에서 획기적인 의미를 갖는 일대 사건이라 할 수 있다.
개인적 견해지만, 소출력 라디오 방송의 공식 허용은 10년전 지방자치제가 전면실시에 버금가는 대단히 중요한 일이라 생각한다. 세계에서 뉴미디어 수용이 가장 빠른 대한민국 국민들의 성격으로 볼 때, 3~4년뒤의 소출력 라디오 방송이 어떤 형태로 변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DMB방송등 휴대형 미디어에 밀려 사라질지 자동차에서 보내는 시간이 점점 많아지는 추세에서 다른 미디어와 융합, 막강한 힘을 가질지는 그때 가봐야 알 수 있다라는게 답일 것이다. 90년대 초중반 유형하던 무선호출기 삐삐가 90년대 후반이후 자취를 감춰버렸듯이 소출력 라디오방송의 미래는 꼭 밝은 것만도 아닐 것이다. 그러나, 삐삐 사용이 휴대폰 보급의 거름이 되었듯이, 소출력 라디오는 이른바 방송권력의 민주화,지역화,개인화라는 새로운 미래를 여는 출발점이라는 점에서 커다란 의미가 있는 것이다. 정치,경제는 물론 교육,문화까지 서울중심으로 돌아가면서, 몸은 지역에 살아도 마음은 온통 서울사람인양 살아가는 허깨비 같은 지역주민들을 그대로 두고는 아무리 지역운동, 주민자치운동을 해도 제대로 된 성과를 얻을 수 없을 것이다. 소출력 방송에 대해 김영만 전 상임대표는 "여러가지 이유로 시민단체의 활동영역과 사회적 영향력이 급격히 감소되는 현 시점에서 소출력 방송에 대해 적극적으로 접근해 봐야할 가치가 충분히 있다. 그래서 얼마전 부터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자기들의 이웃, 자기가 살아가는 지역문제에 관한 세세한 정보를 듣고 지역의 일에 동참할 때 진정한 지방분권, 주민자치가 가능하다고 볼 때 서울이 아닌 지방에서 힘을 가진 특별한 사람이 아닌 평범한 서민대중들을 위한 활동을 지향하는 우리 희망연대가 앞장서서 소출력방송에 동의하는 지역의 역량을 모아 함께 소출력라디오방송국을 만드는 일에 앞장서야 할 때가 되었다. | ||||||||||||||||||
| 2008-02-10 14:00 | ||||||||||||||||||
| 2006-12-07ⓒ희망뉴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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