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안리 숲 한가위 한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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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희망연대 댓글 0건 조회 1,292회 작성일 06-09-18 15:03본문
곡안리 숲 한가위 한마당 | ||||||
노근리에 버금가는 미군학살지역 마산 곡안리 | ||||||
사무국 | ||||||
그 중에서도 황점순(80세) 할머니는 대표적인 학살유족입니다. 한국현대사의 비극을 한 몸에 안고 반세기를 살아왔습니다. 황 할머니는 전쟁이 일어나던 그해 스물 네 살의 새댁이었습니다. 전쟁이 났다는 소문이 들리더니 지서에서 남편을 끌고 갔습니다. 보도연맹원 소집이었습니다. 남편은 “지서에 훈련받고 올게”하고 나간 후 영영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남편이 끌려간 후 보름 만에 이곳에서도 전투가 벌어졌고 그녀는 가족과 함께 마을 뒷산 아래에 있는 재실로 피신했습니다. 당시로선 인근에서 가장 큰 기와집이었던 이 재실에서 이씨 일가 100여명이 집단생활을 시작했습니다. 10여일이 지나는 동안 인근 마을에서는 큰 전투가 벌어졌지만 이곳 재실만은 안전했습니다. 그러던 것이 8월 10일이 되자 미군에 의해 소개명령이 떨어졌고 다음날 피란길을 떠나기 위해 이른 아침을 먹고 난 즈음 난데없는 총성이 울려 퍼졌습니다. 순식간에 재실은 아비규환이 됐습니다. 재실에 그대로 있다가는 모두 죽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 황점순 할머니는 아이를 안고 재실 뒤편 콩밭을 가로질러 뒷산을 향해 정신없이 내달렸습니다. 옆에서 함께 뛰던 시어머니가 ‘퍽’하는 소리와 함께 총탄을 맞고 쓰러졌습니다. 곧이어 그녀도 다리에 총탄을 맞고 쓰러지고 가슴과 목 여기저기서 피가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와중에도 아이부터 살폈으나 아이는 울지 않았습니다. 아이의 죽음을 확인하고도 눈물조차 안 나왔다는 황 할머니. 그렇게 혼자 남겨진 할머니는 지금도 바람에 나뭇가지 흔들리는 소리만 들려도 혹여 남편이 돌아올까 하여 장지문을 열어본다 하십니다. 노근리에 미국진상조사단이 왔을 때 열린사회희망연대에서 곡안리 진상을 문건으로 만들어서 전달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등 관련부처에 수없이 많은 진정서를 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이나 한국정부 차원에서의 조사나 사과는 없었습니다. 황 할머니를 포함하여 곡안리에는 많은 유족들이 계십니다. 사과는커녕 올 초 예정됐던 국방부 조사조차 돌연 취소 되었습니다. 오는 10월 3일(낮 12시, 곡안리마을회관) 희망연대는 이 분들의 억울한 마음에 작으나마 위로를 드리고자 ‘곡안리 숲’에서 추석맞이 유족 위안잔치를 준비했습니다. 아울러 가족을 모두 잃고 외롭고 힘들게 사시는 황 할머니께서 따뜻한 겨울을 날 수 있도록 난방비를 지원해 드리고자 합니다. 희망연대 회원님들과 시민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협조를 부탁 드립니다. | ||||||
2006-09-18 15:03 | ||||||
2006-09-18ⓒ희망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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