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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인색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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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희망연대 댓글 0건 조회 1,217회 작성일 06-03-28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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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인색한 사람들
이건 배신이다.
김영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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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3-28ⓒhopenews
누구라도 3.15의거와 4.19혁명을 이야기 하면서 '김주열'이라는 이름 석자를 뺄수가 없다.
그의 죽음이 혁명이라고 불리는 역사적인 대사건에서 절대적인 역활을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김주열을 추모하는 사업이나 단체가 생기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마산3.15의 1, 2차 시민봉기에서 경찰이 쏜 총탄에 희생된 이들이  12명이나 되는데 굳이 김주열만을 특별히 기리고 기념하는 것은 다른 희생자들에 비해 형평성에 맞지 않다고 말한다.
사실 3.15와 4.19라는 민주의 제단에 피를 뿌린 모든 민주영령들의 희생은 어느 누가 등급을 매길 수 있는 일이 아닌 것은 틀림없다. 이런 의미로만 볼때 그 말은 맞는 말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이유로 3.15와 4.19를 거론하면서 김주열을 의도적으로 외면하거나 추모사업에 딴지를 걸기위한 명분으로 내 세운다면 그 말에 절대로 동의 할 수 없다.

지난 해 3.15의거 탑 앞에 세워진 역사표지석에 새겨진 글을 읽고 마음이 편치 않았다. 3.15에서 4,11, 4,19, 4.26에 이르기 까지 4월 혁명의 전후 과정을 기술한 내용 중에 무언가 반드시 들어가야 할 하나가 빠졌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상하다는 생각에 다시 한번 찬찬히 읽어 보니 4.11에 대해 단 한마디의 언급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마산시민 2차 봉기일인 4.11일은 마산 중앙부두에서 떠오른 김주열의 참혹한 시신을 보고 마산시민의 분노가 다시 폭발하여 극렬한 시위가 일어났고 그것이 전국으로 번져 4.19로 이어진 것이다.
10줄의 문장을 추가한다 해도 넉넉하게 남을 표지석의 넓은 공간에 ‘김주열’이란 이름 석 자를 넣는 것에 마산사람들이 참 인색하다는 생각을 좀체 떨쳐 버릴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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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3-28ⓒhopenews


내 자신이 김주열 추모사업회 일을 하는 입장이다 보니 혹시 너무 과민하게 느끼는 것이 아닌지 스스로 자문해보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생생하게 느껴지는 46년 전의 기억을 자주 되새겨 보는 버릇이 생겼다.
분명 6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마산시민들의 김주열에 대한 애정과 연민과 자랑은 정말 대단했다. 그 당시 마산시민들에게 3.15는 바로 김주열이요, 4.19도 김주열이었다.
마산시민들 역시 3.15와 김주열 때문에 온 국민들로부터 엄청난 칭송과 대접을 받았다.

4.19 이후 희생자 유가족들이나 부상자들이 모두 제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것도, 그 당시 우리사회의 수준에서 희생에 상응한 대접을 받을 수 있었던 것도 다 주열이 덕분이라 말해도 시민들은 당연하게 받아드릴 분위기 였다.
그 당시 김주열을 추모하는 노래가 나와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지만 왜 다른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노래는 없느냐고 섭섭해 하는 이야기는 들어 본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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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1년 봄, 김주열의 입학동기생들이 청와대의 초청을 받아 찍은 기념사진
2006-03-28ⓒhopenews
마산상고 김주열의 입학동기들이 단순히 김주열의 친구라는 오해(?)로 서울로 간 수학여행 중 청와대에 초청받아 들어갈 수 있었던 사실만으로도 그 시대 김주열에 대한 국민들의 애정이 얼마 만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이처럼 46년 전 그때  마산시민들이 김주열에게 가졌던 마음을 안다면 지금의 일부 인사들이 형평성 운운하며 김주열의 기념사업을 마뜩찮게 생각하는 것은 마산시민으로서 김주열에 대한 엄청난 배신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그동안 3.15관련단체에서 다른 희생자와의 형평성을 운운하며 김주열추모사업에 제동을 걸때마다 곧잘 유관순의 예를 들었다. “3.1절만 되면 대한민국 국민들이 제일 먼저 떠올리는 역사적 인물이 어째서 유관순 뿐이냐고 나무라는 사람도 없고, 다른 독립열사들과의 형평성을 거론하며 딴지를 거는 사람이 없지 않는가?”라고 말이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3.1독립만세 하면 유관순을 자연스럽게 떠올리는 이유는 수 없이 많은 애국열사들이 일제의 총검에 희생되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몰라서가 아니라 유관순의 이야기를 통해 그 당시 수많은 독립애국지사들과 순국열사들의 고초와 민족의 수난사를 뼈저리게 감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주열 역시 27일 동안이나 행방불명되었다가 마산중앙부두에 극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그의 참혹한 시신 하나만으로도 이승만 독재정권의 온갖 부정, 부패와 만행 그리고 3.15, 4.19 모든 역사를 압축해서 설명하고 있다. 즉 두 사람은 역사적 사건의 상징성을 가진 인물들이라는 점에서 매우 유사하다는 이야기이다.
물론 유관순은 일정한 지역에서 상당히 계획적이고 주도적인 역할을 했고 감옥에 갇혀서도 일제에 끝가지 굴하지 않았던 감동적인 이야기를 남겼다. 그에 비해 김주열은 자신의 의지를 밝힐 기회도 없이 참사를 당했기 때문에 3.15밤의 시위에서 단순 가담자로 인식된다는 점에서 두 사람은 상당히 다른 차이가 있는 것 처럼 보인다. 그러나 만일 그런 이유로 김주열을 폄훼하려 든다면 그야말로 자신의 천박한 역사인식을 스스로 드러내는 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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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3-28ⓒhopenews
김주열 사건은 우연한 일인 것처럼 보이지만 절대 우연이 아니다. 경찰은 분명 시위대를 겨냥해 최루탄을 쏜 것이고 김주열은 경찰이 저지해야할 시민항쟁의 대열 속에 있었기 때문에 사고를 당한 것이다. 이는 이승만 정권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과 저항의식이 팽배한 그 시대, 그 시점, 그 장소에서 필연적으로 생길 수밖에 없었던 사건의 현장에 그가 있었던 것이다. 

김주열은 분명 자신의 의지로 역사의 부름 앞에 온몸을 바쳤다. 
그리고 4월 11일 그날부터 그는 전국적 시위를 주도한 주모자였다.
김주열은 죽어서 그의 주검으로 독재정권을 무너뜨리고 우리 현대사의 한 획을 긋는 대 사건,  4.19혁명의 선봉장이었다. 김주열이 해낸 시대적 역할은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를 열사라고 부른다.

김주열을 살려야 3.15도 산다. 남원출신인 김주열을 마산에서 대접해야 3.15도 전국적 차원에서 역사적 평가를 받고 대접 받을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3.15, 4,19에 오직 김주열만 있고 다른 민주영령들은 무시되어도 좋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다만, 김주열 추모사업회 측은 나름대로 꾸준히 추모사업을 진행해 나가야 할 것이고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또 다른 3.15영령들도 잊히지 않고 제대로 대접받게 되는 것이 세상사의 이치라는 이야기다.


*김주열 추모사업회는 순수한 민간인들이 자기 호주머니를 털어서 운영하는 단체이다.
2006-03-28 10:44
2006-03-28ⓒ희망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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