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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의사여...통일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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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희망연대 댓글 0건 조회 4,173회 작성일 01-06-28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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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의사여...통일이여...
희망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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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에서 열린 안중근의사 남북공동기념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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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과 북의 포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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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발표
 

2000년 10월 26일 중국 시간으로 9시 30분, 하얼빈역.

제법 추운 공기 속에서 20명의 남과 북 동포들이 작은 원을 이루고 둘러서서 조용히 기도를 드렸습니다. 수 많은 중국 행인들과 역무원들과 공안들의 의아스럽다는 눈총을 받으며, 안중근(토마스) 의사의 뜻을 받들지 못한 부끄러움과 갈라진 핏줄의 아픔을 곱씹으며 그렇게 잠시 기도를 드렸습니다.
우리가 서있었던 그 자리는 91년 전인 1909년 10월 26일 9시 30분에 안중근 의사가 이등방문 이토오 히로부미를 7발의 총탄으로 쓰러뜨렸던, 그래서 이등방문이 제국주의 이무기로 쓰러졌던 바로 그 자리였습니다. 지난 91년간 우리 민족의 그 누구도 겉으로 드러나게 다시 찾지 않았던 그 자리에 그것도 남과 북의 형제들이 손을 잡고 같은 마음으로 함께 섰다는 것은 실로 대단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한많은 역사의 자취 위에 서있는 우리 모두의 마음은 몹시 무거울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직까지 풀리지 않은 역사의 매듭과 치료해야 할 역사의 상처가 너무 많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들 모두가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풀리지 않은 매듭과 치유되지 않은 상처를 씻는데 작은 힘이나마 보탬이 되자고 함께 기도드린 후 우리는 각각 남과 북으로 헤어져 돌아왔습니다. 이 시간 이 자리에 제가 함께 설 수 있었다는 사실에 대해 하느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2000년 10월 24일 중국 시간으로 오후 1시 경, 하얼빈 공항.

정의구현 사제단 신부님들 9분과 성가소비녀회 수녀님 4분과 함께, 저는 우리를 미리 마중나와 있던 북한의 적십자중앙위원회 장재언(사무엘)위원장과 북한의 종교협의회 간부 5분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북한의 종교협의회 간부들 중에는 '조선가톨릭교협회중앙위원회'인 강지영(바오로)서기장과 장춘성당의 사목회장인 차성현(베드로) 형제도 함께 있었습니다.

갈라진 시대의 가로막힌 장벽 틈사이로 동포를 만난다는 설레임과 분단의 장벽에 길들여진 모습으로 이북의 동포를 처음 대해야 한다는 부담감과 어색함으로 그렇게 그들을 처음 만났습니다. 설레임이 먼저 나의 마음을 활짝 열게 할 것인지 아니면 부담감과 어색함이 나를 곤란하게 할 것인지, 쉽게 마음의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래저래 조금은 긴장해 있는데 강지영 서기장이 먼저 저에게 인사를 건네 왔습니다. 서기장은 전에 몇번 정의구현사제단 신부님들과 만난 일이 있었기 때문인지 자연스럽게 저에게 먼저 손을 내밀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니 신부님들과 북측의 사람들은 고향친구를 오래간만에 만나기라도 한 듯이 서로 껴안고 반가워하며 눈빛과 웃음을 나누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저도 자연 그렇게 될 밖에요. 어느사이 어색함은 사라지고 함께 웃고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식사하고 잔을 부딪치며 우리는 자연스레 하나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 하나됨은 어느 외국인과도 나눌 수 없는 한민족 동포와의 그것이었습니다.

그날 오후 4시 경, 우리는 북한에서 제작된 "안중근, 이등방문을 쏘다"라는 영화를 함께 보았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안중근 의사에 대한 북한의 시각이 남한의 시각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북한 또한 순수한 민족애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영화를 본 후, 모두는 호텔 근처의 남한식 식당에서 저녁 늦게까지 같이 만찬을 나누었습니다. 갈라진 동포와 함께 마시는 소주의 맛이 어떠한 것인지, 그렇게 잔을 부딪혀보지 못한 사람은 알 수가 없을 것입니다. 갈라진 동포와 나누어 마시는 소주가 결코 자랑거리가 될 수는 없으련만, 이 시대의 역사로부터 저는 그런 기가막힌 맛을 선물받았던 것입니다.


다음 날인 10월 25일 아침 9시 30분,

우리는 호텔의 한 홀을 빌려 '안중근 의사 하얼빈 거사 91주년 기념 세미나'를 가졌습니다. 먼저 북한의 장재언 위원장이 주제발표를 하였습니다. 장위원장은 안중근 의사의 거사는 명백한 민족애의 행동이었으며, 천주교 신자였던 안중근 의사의 거사는 신앙인의 일이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현재 지속되고 있는 남·북 화해의 분위기 속에서 간절히 통일을 기원한다는 예기를 하였습니다. 특히나 위안부 문
제, 징용문제, 독도문제 등 일제의 만행에 대해 예기할 때에는 비장한 눈빛과 억양을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장위원장의 발표에 이어 남측에서는 전종훈(시몬) 신부의 주제발표가 있었습니다.전종훈신부는 '안중근의사의 삶은 평화이다'라고 하면서, 안중근 의사의 거사는 조
선의 독립을 넘어서 동양 전체의 평화를 되찾기 위한 거사였으며 세계의 평화를 지향한 거사였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안중근 의사여, 당신의 정신을 배우게 하소서. 당신의 정신이 우리 안에 스미게 하소서'라는 기도로 자신의 심정을 표현하였습니다.

세미나를 마친 후 우리는 곧바로 함께 미사를 봉헌하였습니다. 가장 원로 신부님이신 안성길(로베르또)신부님께서 주례를 하고 장춘성당의 사목회장인 차성현(베드로)씨가 복사를 서고 봉헌한 남북공동미사는 안중근(토마스) 의사를 기리는 미사였으며, 남북통일기원의 미사였음은 물론, 그 자리에 함께 한 우리 모두를 뜨겁게 감동시키고 하나되도록 하기에 충분한 미사였습니다. 미사를 마치며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모두가 손잡고 목청껏 부를 때에는 정말이지 코끝이 찡해왔습니다.

그날 저녁, 우리는 '금강산 식당'이라는 북한식당에서 함께 만찬을 나눴습니다. 갖은 북한 요리와 북한 소주는 우리의 흥을 돋구기에 충분했습니다. 더구나 우리보다 하루 늦게 도착해서 우리와 자리를 함께한 문규현(바오로)신부님을 환영하느라 남북의 형제 모두는 어제보다 한껏 잔치분위기가 되었습니다. 갑자기 노래방 반주기에서 '반갑습니다'와 '휘파람'이 흘러나오고 북한이 고향인 아가씨들이 그 특유의 북한 창법으로 불러주는 그 노래들은 우리 모두를 덩실덩실 춤바람으로 몰아 넣었습니다. 갈라진 형제·자매와 손잡고 함께 추는 춤이 얼마나 즐거웠던지 또 얼마나 서글프고 애틋했던지 정말 모든 부끄러움을 떨쳐버리고 춤추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때 한 북한 아가씨가 적어준 이름 세글자와 "통일의 즐거운 시간에…"라는 짧은 글은 너무나 많은 기쁨과 슬픔을 담고 저에게 다가왔습니다.

안중근 의사의 최후의 유언입니다. "내가 죽은 뒤에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 두었다가 우리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반장해다고. 나는 천국에 가서도 또한 마땅히 우리나라의 회복을 위해 힘쓸 것이다. 너희들은 돌아가서 동포들에게 각각 모두 나라의 책임을 지고 국민된 의무를 다하며 마음을 같이 하고 힘을 합하여 공로를 세우고 업을 이루도록 일러다고. 대한 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 일제는 이등방문이 죽은지 딱 5개월만인 1910년 3월 26일 오전 10시에 안중근을 교수형에 처했다고 합니다.

우리 남·북의 후예들은 안중근 의사가 이등방문을 저격한 일에 대해서만 짐짓 화려한 수식어를 붙여 입을 놀릴뿐 안의사의 유언을 거의 들어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 준다는데…'라는 말도 있는데 참으로 못난 후예들입니다. 적어도, 조선이 독립되면 뼈라도 조선땅에 반장해 달라는 유언이나마 들어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실 일제는 안중근의사의 시신을 그 누구에게도 내어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안의사의 친동생들이 찾아가 그렇게 애워을 했어도 시신을 내어주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일제는 안의사의 시신을 넘겨주는 경우, 안의사의 무덤이 조선민족해방운동의 성지가 될 것을 두려워해 안의사의 시신을 여순감옥 묘지터 어딘가에다 아무렇게나 매장해버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10월 25일에 있었던 우리의 남북공동세미나에서 우리는 각각 남과 북으로 돌아가 남과 북의 정부에 안중근의사 유해찾기에 함께 나서줄 것을 요청하기로 약속을 하였습니다. 그것은 남과 북의 양 정부가 합의하여 유해발굴을 요청할 시에만 중국정부의 협조를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까지 왔지만 우리 민족과 한반도의 나아갈 길은 아직도 멀기만한가 봅니다. 남의 나라 땅에서 잡아야 했던 갈라진 동포의 손, 그 손에서 느꼈던 기쁨과 슬픔, 민족이 갈라져 있었기에 아직도 돌아오지 못한 안중근의사의 주검, 그 추운 만주벌판의 매서운 바람에 떨고 있을 안중근의사의 소망을 우리는 다시금 새겨보아야 합니다.
초등학교 시절, 조그맣고 낡은 2인용 책상의 한 가운데에 굵은 금을 그어놓고 짝꿍과 다투던 기억이 납니다. 짝꿍의 연필이나 지우개가 넘어오면 내 것이 되었다고 우기고, 짝꿍의 팔꿈치라도 넘어오면 내 팔꿈치로 쎄게 밀어내며 경계선을 넘어오지 말라고 소리를 질러대곤 했었죠. 저만의 기억은 아닐 듯 합니다. 다 자란 어른이 되어서도 우리는 어린시절의 그 철없는 경계선상의 삶을 살고 있으니 어찌된 일입니까? 안중근의사는 예수님처럼 조선의 독립만이 아니라 동양의 평화·온 세상의 평화를 위해 목숨을 바치셨는데…

2000년 10월 26일 아침 9시 30분의 그 자리는 내 인생의 기억에 영원히 자리잡을 것입니다.


ⓒ HopeNews 2000.11.04 13:20 이상원신부(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마산교구 총무)
 

2001-06-28 17:28
2001-06-28ⓒ희망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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