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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야!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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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희망연대 댓글 0건 조회 1,362회 작성일 10-02-25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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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야! 미안하다"
김주열 열사 다큐멘터리 공개 촬영
희망연대   
어제(24일) 12시, 마산 신포동 대한통운 앞 바닷가에서는 김주열열사 다큐멘터리 "친구야! 미안하다" 촬영 현장을 공개했다. 처음에는 출연자와 촬영관계자만 직접적인 촬영에 임했으나 나중에는 행사를 보러온 회원들이 분장, 의상, 소품등 스텝으로 참여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에 링크한 오마이뉴스 기사를 참조하면 된다.

링크 오마이뉴스 여기를 꾸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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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25ⓒhope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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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25ⓒhope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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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25ⓒhope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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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25ⓒhopenews

다큐멘터리 <친구야, 미안하다>의 줄거리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주열이에게 큰 죄를 지은 것 같다. 요즘 주열이 일 때문에 맘이 불편해 밤에 잠을 설치기 일쑤다. 주열이와 나의 첫 대면은 꼭 50년 전인 1960년 4월 11일 마산도립병원이었다. 시신 안치실에 누워 있는 그의 모습이 너무나 끔찍해 어떤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듯 그 자리를 바삐 빠져나갔지만, 나는 오른쪽 눈에 최루탄이 깊숙이 박힌 채 바닷물에 퉁퉁 불어 있는 그의 시신을 한참 동안 응시하며 걷잡을 수 없는 분노에 치를 떨었다.

 

 김주열과 나의 운명적인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고 그날 이후 나는 마산 3.15의거나 4월혁명 이야기만 나오면 "주열이와 나는 마산상고 입학동기"라는 말을 자랑스럽게 했다. 세월은 흘러 소년이 청년이 되고 장년, 노년으로 접어들면서 그만큼 세상도 많이 변했지만 마산 사람들이 참 무심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40년이 지나도록 마산에서는 그를 기념하는 돌멩이 하나 세운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1960년 4월혁명 이후 한동안 마산은 김주열이었고 김주열은 마산이었다. 지금도 3.15의거는 잘 몰라도 김주열이라고 하면 "아! 마산"이라고 말하는 국민들이 많다는 것을 생각하면 더욱 그랬다.  

 

 김주열은 남원에서 마산으로 유학을 온 학생이었다. 그는 살아서는 남원의 아들이었지만 죽어서는 마산의 아들이 되었고 4월혁명을 통해 국민의 아들이 되었다. 그래서 그의 묘소는 무려 3곳에 있다. 서울 수유리 국립묘지와 마산 3.15국립묘지 그리고 고향인 남원에 묘가 있다. 이런저런 이유로 나는 1999년 그를 역사의 책갈피 속에서 밖으로 불러냈다. 김주열추모사업회를 만든 것이다. 망국적인 지역주의를 타파하고 동서화합을 위한 촉매제 역할을 하는 데 주열이야말로 하늘이 특별히 점지한 인물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10년, 끈질긴 노력으로 추모사업에 제법 탄력이 붙기 시작했지만 동서화합은커녕 왠지 마산의 분위기가 이상해진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언제부터인지 "김주열은 파자마 바람에 이모할머니집 앞에서 데모 구경하다 죽었다"는 황당한 이야기부터 "그때 죽은 사람이 어디 주열이 뿐인가?" 등등,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저 웃어 넘겼지만 생각보다 상당히 심각한 수준임을 감지하고 걱정을 하고 있던 중, 지난해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서 발행하는 월간지 <희망세상>에 어느 르포 작가가 마산의 3.15현장을 둘러보고 3.15관련단체 인사들과 인터뷰를 한 기사 속에 뜬금없이 "김주열은 이모할머니 댁에서 시위구경을 하러 나왔다가 변을 당했던 것이다"라는 글을 썼다. 어떤 사람들이 악의적으로 퍼뜨린 이 소문이 정부의 공식기구에 기록으로 남을 뻔했던 이 일로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다행히 당시 혁명재판소의 판결문에서 김주열이 시위대열에서 최루탄을 맞은 기록을 찾아내었고,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서는 정정보도문을 냈지만 그 과정에서 모두 깊은 상처를 입었다.

 

이후 나는 동서화합이니 뭐니 하는 일로 괜히 주열이를 욕되게 했다는 후회와 함께 살아 있는 인간들도 도저히 해결 못하는 동서화합이라는 국가적 난제를 그의 어께에 지운 것부터 큰 잘못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이제 그를 떠나보내기로 결심했다.

 

 

2010-02-25 13:32
2010-02-25ⓒ희망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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