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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5 정신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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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희망연대 댓글 0건 조회 1,397회 작성일 08-01-16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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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5 정신을 생각한다
건국 60년의 마산문화 단상
희망연대   
20080227103050_kjy.jpg
▲ 김주열 열사 시신인양지 표지판
1960.4.11. 사진의 바다속에서 김주열 열사의 시신이 떠오르면서 4.19혁명이 시작되었다.
2008-01-16ⓒhopenews


연말연시의 반성과 다짐을 하나하나 풀어나가야할 때다. 먼저 자신과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가까운 데서 일어나고 있는 모순을 바로잡아, 비상식을 상식으로 만드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사는 마산의 시민정신이라는 3.15 정신을 현재적 의의를 성찰해 보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3.15'와 '가고파'를 두고 견해를 달리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사실 생각의 차이 정도라면 큰 문제가 아닌데, 지역의 문화권력을 둘러싼 이해관계의 충돌이기 때문이다.이에 대한 정성기 교수(부마민주항쟁기념사업회 회장)의 도민일보 기고와 오하룡시인의 반론을 싣는다. (hopenews)


건국 60년, 마산문화 단상 
     
새 정부가 출범하는 올해는 '건국 60년'을 맞는 해이기도 하다. 60년간 무학산은 변함없는 모습으로 우리를 굽어보고 있지만, 합포만은 참 많이 변한 듯하다. 바다가 변한 만큼 세상이 변한 것이 아니라, 세상이 변해서 바다를 저렇게 만들었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식민지에서 해방된 민족 중에서 한국은 산업화와 민주화에 모두 성공한 거의 유일한 나라라 평가받고 있다. 우리의 남다른 저력이 발휘된 것이지만, 그 과정은 파란만장하기 이를 데 없다. 그중에서도 마산만큼 한국 근현대사의 영욕을 전형적으로 집약하고 있는 곳은 없을 것이다.
일제하에서 드물게 산업화와 수탈의 기지였고 항일과 친일, 이념 대립이 없을 수 없었다. 격렬한 좌우 대립 속 건국 이후 6·25 전시에는 최후의 전선이 되었다. 이 과정의 좌우 양측에 의한 학살은 아직도 깊고 깊은 갈등의 뿌리가 되어 있다. 그리고 건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의 정권과 마산은 3·15 의거를 통해 생사를 건 결전을 벌였으니, 마산은 건국과 이승만 정권에 대한 둘도 없는 증인이다.
박정희 정권의 성립 이후 마산의 한일합섬, 마산수출자유지역은 '조국근대화의 전진기지'였으며, 그 산업화 자체의 모순은 부마민주항쟁, 6월항쟁이라는 민주화운동의 조건이 되었다. 그리고 '1987년 체제' 20년이 지난 시점에서 산업화 이후, 민주화 이후를 놓고 몸부림을 치고 있다.

그런 몸부림 과정에서 마산이 되는 일도, 안 되는 일도 없게 만드는 핵심적 쟁점의 하나는 아마도 '가고파 문화'와 '3·15 문화'의 충돌일 것이다. '가고파'와 '3·15' 는 따지고 보면 완전히 같은 무대에서 일어났다. 일제하 노산의 '가고파'가 마산만을 두고 노래한 것이며, 참혹하게 죽은 김주열을 품었다가 세상 앞에 내놓은 것도 바로 그 '내 고향 남쪽 바다'다.
그리고 노산이 일제하에서 언론, 역사, 문화, 종교 각 방면에 큰 족적을 남긴 반면, 고향의 3·15의거를 비난하고, 전두환 군사정권까지 옹호한 한 개인의 행적이 해방 전후 이 나라 현대사 전체를 집약하고 있고, 역사적 뿌리를 가진 '3·15의거 정신' 또한 70∼80년대를 거치며 치열하게 계승되어 왔으니 양자 간의 충돌은 한국현대사 전체의 갈등을 상징하고 있다.
그 갈등은 2000년을 전후하여 거액의 국가예산까지 들여 마산시가 추진한 '이은상 문학관' 건립이 반대 측의 강력한 저항으로 무산되고 '마산문학관'으로 귀결된 것에 집약되어 있다.

휴화산이 되어 있는 이 '역사적 마산만'의 문제가 합리적으로 해결되지 못하면 마산사회는 '되는 일도, 안 되는 일도 없는 혼돈 상태'가 지속할 것이다. 이제 그간의 역사를 성찰하며 인간의 지성이 빛을 발하는 해결을 향한 밭갈이부터 시작해야 한다. 말할 것도 없이 문화예술도, 민주화운동도, 경제도 정치도 사람이 하는 '일'이다.
이제 '일하는 문화'를 바로 세워야 한다. 욕심과 명분이 앞서 '밀어붙이기'를 즐기면 크고 작은 일의 성과가 모래성처럼 된다는 것은 보수나 진보 가릴 것 없이 얼마나 쓰라리게 겪었는가.
마산과 한국의 거목인 노산의 행적에 대한 논쟁도 그렇게 뜨겁게 벌였지만, <마산시사(馬山市史)>를 보면 소개된 인물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해방 전까지의 행적만 기록하고 있고, 해방 이후 행적에 대해서는 단 한 줄도 없다.
그 흔한 전기나 평전 한 권도 없다. 그러니 합당하게 노산의 공과를 시민대중적 차원에서 구체적으로 논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이렇게 역사를 은폐하고도 노산의 '가고파'는 마산시민의 날을 비롯한 각종 행사 이름에서부터 문학관, 심지어 마산의 초등학생 교과서명칭에 이르기까지 마산사회를 '도배'하다시피 밀어붙이기식의 현양(顯揚)이 계속되어 왔다. 이런 상황이 필자를 비롯한 많은 시민이 국민가곡 '가고파' 노래를 '가곡'으로 즐겨 부르는 것조차 심히 불편하게 만든다.
옛 어른들은 선후(先後)를 따지고 본말(本末)을 가리는 것이 일의 근본이라고 가르쳤다. 근본을 튼튼히 하는 '정신'이 살아야 지역이나 나라도, 문화와 경제도 살아나지 않겠는가?

2008년 01월 08일 (화) /정성기(경남대 경제무역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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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5와 가고파 문화, 공존 위한 제언 
3·15만의 이미지는 곤란

2008년 01월 16일 (수)  독자  webmaster@idomin.com 


   
 
며칠 전 이 난에 어떤 분이 기고한 글을 읽고 생각나는 몇 가지를 제기해 보고자 한다. 우선 이분이 "마산만큼 한국 근대사의 영욕을 집약하고 있는 곳은 없을 것이다"라고 못박고 구체적으로 "일제하에서 드물게 산업화와 수탈의 기지였고 항일과 친일 이념 대립이 없을 수 없었다. 격렬한 좌우 대립 속 건국 이후 6·25 전시에는 최후의 전선이 되었다. 이 과정의 좌우 양측에 의한 학살은 아직도 깊고 깊은 갈등의 뿌리가 되어 있다"고 한 부분에 대해서이다.

마산 아니라도 우리나라 대다수 지역이 영욕을 겪었다고 나는 보고 있다. 마산만이 수탈의 기지가 아니었고 항일과 이념의 대립 현장도 마산만이 아니었다. 좌우 양쪽의 학살도 마산에만 있은 것이 아니고 최후의 전선도 마산만이 아니었다. 당시 최후의 전선은 넓고도 길었다. 마산은 그 일부였을 뿐이었다. 이처럼 마산을 굳이 사건 많고 문제 많은 도시로 부각시키려는 점이 자연스럽지 못해 보였다.

3·15의거에 대한 성격 규명은 분명히 난 상태이다. '의거'라는 말에 잘 집약되어 있다. "이승만 정권과 생사를 건 결전을 벌였으니" 같은 표현도 순리적이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생사를 건 결정"이라는 살벌하고 과장된 표현보다 '부정을 시정하기 위한 의로운 항거'로 표현하는 것이 합당하고 자연스럽지 않을까 싶다.

"산업화 자체의 모순은 부마민주항쟁, 6월 항쟁이라는 민주화 운동의 조건이 되었다"에 대해서도, 산업화 과정에도 물론 모순이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정말 산업화의 모순이 항쟁의 빌미가 되었는가. 더 정확하게는 비민주적인 군사정권의 집권행태에 대한 저항운동이 이 항쟁이 아닌가. 이분은 또 "87년 체제 20년이 지난 시점에서 산업화 이후 민주화 이후를 놓고 몸부림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지금도 산업화는 진행형이고 민주화도 진행형일진대 그 몸부림의 원인이 3·15와 가고파 문화의 충돌에 있다고 그 '몸부림'을 마산만의 것으로 진단하는 것도 자연스럽지 못하다. 그러면서 이분은 마산바다 '가고파'가 굳이 일제 때 쓰인 것이 문제가 있는 것처럼 거론하고 있다.

김주열의 시신이 이 바다에서 떠올랐으므로 대립적일 수밖에 없는 것처럼 기술하고 있는 것이다. 이분도 이번 글에서 친일을 들고 나오지 않은 걸 보니 그 부분에 대해서는 다소 무리가 있음을 인정해서가 아닌지 짐작된다.

나는 지난 명절 때 거리에 쳐진 현수막을 보고 아연했다. 3·15 정신을 손상하는 원인이 거기 있음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 현수막 내용은 "3·15의 고장에서 즐거운 추석을 보내십시오"였다. 표현은 좋았다. 고향을 찾는 분들에 대한 고향 인심이 이 정도의 인사는 있어야 도리가 아니겠는가.

그런데 이 내용을 찬찬히 음미해보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색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3·15의 상징성은 즐겁게 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3·15 의거는 부정을 추방하고 정의를 확립하고자 피를 흘리며 항거한 시위의 상징이다. 따라서 3·15를 떠올리면 희생된 사람들이 떠오르고 그날 많은 군중이 희생을 각오하고 시위하던 광경이 떠오른다. 어찌 즐거운 마음으로 지낼 수 있겠는가 말이다.

3·15가 시민의 날이 될 수 없는 것도, 어떤 특정 거리를 김주열의 이름으로 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일부 사람들은 마산에는 3·15의 가치밖에 다른 가치는 하찮게 취급되거나 있어서는 안 될 논리에 매달려 있음을 본다. "3·15의 고장에 와서 즐겁게 지내다 가십시오." 이런 구호로서는 마산에 볼거리 먹을거리가 아무리 많아도 마산의 진정한 활성화에 도움되게 할 수 없다. '3·15'는 먹고 마시고 즐기는 의미가 아니기 때문이다.

방법이 있을 수도 있다. 마산을 아예 3·15 상징물로 도배하여 아예 상장(喪章)을 달고 와서 추도하는 기분으로 지내다 가도록 할 수만 있다면 그런 방법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숙연한 도시로만 기능 하게 하기는 어렵지 않은가. 과문한 탓인지 모르나 세계 어떤 나라를 보더라도 피를 동반한 혁명을 축제로 하는 나라는 없는 걸로 알고있다.

전통 있는 생활문화나 예술 행위만이 축제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3·15 문화와 가고파 문화는 충돌 문화가 아니라 3·15는 의거 문화로 마산을 상징하는 국민의 정신으로 엄숙하고 장중하게 길이 기림을 받게 해야 하고, 가고파 문화는 억지 논리로 없는 상처를 만들어 내돌려둘 게 아니라, 전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1천만 동포까지 '가고파 노래'의 무대 마산 앞바다를 보지 않고는 못 견디게 만들어 3·15와 가고파 문화가 공존공영하는 세계적인 향수의 명품도시가 되도록 해야 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오하룡(도서출판 경남 대표)

2008-01-16 11:18
2008-01-16ⓒ희망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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