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 소감
- 다시 옷깃을 여미며 수상소식을 듣고 갑자기 몸이 졸아드는 느낌을 받았다. 수상의 기쁨보다 더 큰 부끄러움들이 사정없이 밀려들기 때문이다.
40년 전, 그저 평범하게 살고 싶었던 한 청년이 있었다. 어느 해, 국방의 의무를 지켜야 할 나이가 되었고, 이왕 군에 갈 바에는 심신을 좀 더 강하게 단련하는 기회로 삼아야겠다는 단순한 생각에 해병대를 지원 입대했다. 그러나 이 청년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악몽과 같은 베트남 전쟁이었다. 결국 이 더러운 전쟁은 한 젊은이의 영혼에 깊은 상처를 입혀 마음의 평화와 안정을 찾지 못해 전전긍긍하며 늘 방황하게 만들었다.
그런 모습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내 인생은 실패의 연속이었고 끝내는 큰 병을 얻어 꼼짝 못하고 오랫동안 누워 지내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어떤 사회적 보장제도도 없었던 그 당시 긴 투병과 가난은 곧 죽음을 의미했다. 그러나 죽기 전에 꼭 알고 싶은 게 있었다. “내가 처한 이 고통의 연유는 도대체 무어란 말인가?”라는 의문이었다. 내 자신을 향한 이 질문을 푸는데 골몰하다 보면 어느새 죽음에 대한 유혹도 이 사회를 향한 분노도 사라지고 상념의 심연 속으로 깊이 빠져든 자신을 발견하곤 했다.
바로 그 때 깨달은 것이 나 같은 사람들이 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는 우리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만들고 그것을 더욱 심화, 확대시키는 기득권자들이 사실은 해방과 동시에 응당 단죄되고 청산되어야 했을 친일세력들이라는 놀라운 사실이었다. 이때부터 나는 너무 억울해서 끝까지 살아남아 과연 이 땅에 진실과 정의라는 것이 있기나 한지 확인하고 싶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가진 조건과 환경에서 특별히 할 수 있는 일도 없었다. 다만 감당하기 힘든 병과 버겁기만 한 삶을 안고 뒹굴면서 생긴 고집과 오기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아닌 것은 ‘아니다’라고 말해야 직성이 풀리고, 상식과 원칙이 아닐 때는 가능한 한 동의하지 않으려고 애를 썼을 뿐이었다. 어느 날 우연히 민주화 운동의 말석에 들어선 이후 지금까지 다양한 사상과 주의, 노선을 접했지만 내 사고의 영역은 그 때 체득한 그 생각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임종국 선생님이 ‘친일문학론’을 저작, 출판하신 그 해 나는 베트남 전장에서 처절한 살육전을 치르고 있었다. 임종국 선생님과 나의 영육은 너무나 먼 거리에 있었다. 그런데 무슨 인연이 있었을까? 선생님은 당신의 갑년에 세상을 떠나셨고, 올해 갑년을 맞이하는 내가 선생님의 상을 받게 되니 보이지 않는 인연의 끈이 있음을 느끼며 다시 한 번 자세를 가다듬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오늘 이 상을 받게 된 조그마한 이유라도 있었다면 그것은 그동안 나와 함께 했던 많은 동지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희망연대 공동대표들과 회원여러분들에게 이 영광을 함께 나누어 드리고 싶다. 열린사회희망연대 상임대표 김영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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