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표지석 사건, 그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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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희망연대 댓글 0건 조회 1,368회 작성일 05-06-21 17:25본문
역사표지석 사건, 그 후 | ||||||||||||||||||||||||||||||
역사표지석이 또 하나의 역사를 쓰다. | ||||||||||||||||||||||||||||||
김숙진 | ||||||||||||||||||||||||||||||
올해 초, 우리지역을 뜨겁게 달군 화젯거리가 하나 있었다. 이른바 '역사표지석 사건'이 그것이다. 사건의 발단은 희망연대 등산반 회원들이 팔용산에 등산을 갔다가 우연히 발견한 수상한 빗돌 하나로 시작되었다.
예기치 못한 사건
뒤늦게 경남대 박물관이 마산시로부터 학술용역을 받아 24개나 설치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중 몇 개의 표지석이 심각한 문제가 있음이 드러났지만 희망연대는 오히려 건전한 논쟁을 기대했고 이를 위해 학술용역측과 마산시측에 역사표지석 바로 잡기를 위한 3자 협의를 제안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이성적이고 상식적인 논쟁이 아니라 예기치 못한 일련의 사건으로 비약해 버리고 말았다. 여기에는 희망연대에 대한 모 언론의 악의적인 기사가 단단히 한몫을 했고 이를 시작으로 희망연대는 계속해서 많은 상처를 입게 되었다.
그 당시, 24개의 역사표지석 중 희망연대가 문제삼은 것은 모두 4개로 제일 처음 역사표지석 사건의 발단이 되었던 '마산 수원지' 역사표지석은 내용과 위치가 완전히 바뀐 채, 새로 세워져 있는 것을 최근에 확인했다.(사진 참고)
슬그머니 사라지거나 새로 세워진 역사표지석
두 번째로 문제가 되었던 신마산 월남 성당 앞에 세원 둔 "일본 제일은행 마산출장소 터"라는 표지석은 언제부터인지 슬그머니 사라지고 없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 표지석은 당시 희망연대로부터 '역사가 없는 역사표지석'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곳은 1907년 마산에서 근대적 금융의 효시라고 할 수 있는 일본제일은행 마산출장소가 있던 자리이다"라는 새김글은 이 역사표지석을 세운 이들의 역사관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수준이었다.
세 번째는 가포에 있는 경남대학 재단 부지 안에 일반인들의 접근을 막은 상태로 세워져 있는 '가포청동기 출토지' 표지석이다. 이는 본래 목적 중의 하나인 시민들의 접근성은 말할 것도 없고, 시민의 세금으로 세운 역사표지석이 마치 경남대 소유인양 되어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희망연대는 표지석을 밖으로 들어내던지 아니면 경남대학이 철책을 풀던지, 두 가지 중 하나를 택해야한다고 주장했지만 오늘 현재까지 처음 그대로이다.
표지석 논쟁을 주도했던 희망연대 김영만 상임대표는 역사표지석 논쟁은 아직 끝난 것은 아니라는 단서를 달면서 "상처뿐인 '역사표지석 바로 세우기 운동'이었지만, 상처 입은 소나무에서 송진이 나와 나중에 어둠을 밝히는 광솔이 되듯, 우리의 상처 속에서 역사의 진실을 밝힐 수 있는 송진같은 피고름이라도 흘러나온다면 그것만으로도 우리의 역할은 다 했다" 고 말했다. | ||||||||||||||||||||||||||||||
2005-06-21 17:25 | ||||||||||||||||||||||||||||||
2005-06-21ⓒ희망연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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