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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열열사 60주년 추모 시선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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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희망연대 댓글 0건 조회 397회 작성일 20-11-19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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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김주열 … “마산의 봄은 바다 가운데서 떠오르네”


|“우리 주열이 못 봤소?”
|3·15 의거 60주년, 김주열 열사 어머니 권찬주 여사의 울부짖음에 답하다
 

김주열. 그는 언제나, 어디서든 우리에게 끝내 외면할 수 없는 이름으로 온다. 모종의 죄의식으로 먼저 온다. 그것은 그의 주검과 함께 이름을 담아낸 시편들이 동시대에 일어난 아픔과 불행에 대한 열렬하고도 뼈아픈 추도사이기 때문일까? 1960년 봄, 꽃이 아니라 사람이 피어나고, 바람이 아니라 사람이 흔들렸던 당시를 떠올리면 마산은 아직도 아프다. 그리고 우리는 여전히 두렵다. 김주열이란 이름으로 대변되는 한 시대를 소환한 다음 우리는 지금 여기가 아니라 아직 거기다, 라고 말하고 싶은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때 어디서, 무엇을 하였느냐’라고 추궁할 때 이 물음을 피해가거나 등질 수 있는 길이 나 그리고 당신 또한 없는 까닭이다.


여보게! 그날 어디에 있었나
여보게! 그날 무엇을 했고 무엇을 보고 들었나

세상이 온통 거짓으로 장막 쳐 놓고 숨통 틀어막던 날
모두가 하나 같이 숨죽이고 입 닫고 있던 날
서로 눈빛으로만 주고받던 그날

해도해도 너무 한다며
이것만은 아니라는 선한 뜻과 기운이
마침내 드디어
합포만에 등댓불 밝히고
무학산에 봉홧불 올려놓고

끝끝내 순종할 수 없는
거부의 깃발 높이높이 흔들며
생목숨까지 갖다 바쳤던 바로 그날 말일세

(최정규, 「여보게!」 일부)


하나의 죽음이
혁명의 꼭지에 솟아올랐다
뜨거운 날들이 이어졌다 목이 탔다

이제 마산은 전국 방방곡곡이었다

(고은, 「김주열」 일부)


그렇다. “우리 주열이 못 봤소?” “우리 주열이 못 봤소?” 권찬주 여사의 울부짖음에 답하는 우리에게, “끝끝내 순종할 수 없는/거부의 깃발 높이높이 흔들며/생목숨까지 갖다 바쳤던 바로 그날”의 마산은 “전국 방방곡곡이었다”


|김주열의 이름으로 다시 빚어낸 민주주의와 봄의 형상들

1960년 그해 마산의 봄을, “혼란과 부패로/독재와 부정으로/피범벅 되어 떠내려가던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우무석, 「마산의 봄」) 다시 김주열이란 이름으로 내세운 여기, 마산은, 마산의 봄은 이 나라를 살아가고 살아내는 우리 모두의 ‘문학적 공유지’로서의 영토이자 한 세계이다.

마산(馬山)은
고요한 합포만(合浦灣) 나의 고향(故鄕) 마산(馬山)은     
세계(世界)로 통(通)하는 부두(埠頭)!   
썩은 답사리 비치는 달그림자에
서정(抒情)을 달래는 전설(傳說)의 호반(湖畔)은 아니다. 

진통(陣痛)이     
아우성이 소년(少年)의 피가
분노(憤怒)의 소용돌이 속에     
또 하나의
오ㅡ움직이는 세계(世界)인 것이다
기상도(氣象圖)인 것이다. 

(김태홍, 「마산(馬山)은!」 일부)


마산상고 합격여부를 알기 위해 남원에서 마산으로 갔던 김주열. 하지만 김주열은 3.15 부정선거 시위 속 실종됐고, 어머니 권찬주 여사는 아들을 찾아 헤매다 눈이 아프다고 말하는 아들의 꿈을 꾼다. 그러나 1960년 3월 16일 새벽, 마산경찰서 소속 경찰관 3명과 민간인 1명을 태운 지프차를 세운 곳은 지금의 '마산세무서' 앞. 숨진 김주열 열사는 탱자나무 울타리 옆 도랑에 반듯하게 눕혀져 있었다. 경찰들은 김주열 열사의 주검을 차 뒷좌석에 실었고, 사람들의 눈을 피해 가까운 바다에 버리기로 했다. 도착한 곳은 '마산항 제1부두'. 경찰들은 바닷가 공사장에 있던 가슴팍만한 돌을 김주열 열사의 상체에 얹은 뒤 철사로 칭칭 감아 바다에 던졌다. 하지만 주검은 한 달이 넘지 않은 4월 11일, 실종 27일 만에 오른쪽 눈에 최루탄이 박힌 채 마산 중앙부두 앞바다에 떠올랐다. 김주열 열사의 이 참혹한 주검은 전국에 알려졌고, 4·19 혁명의 도화선이 됐다.

저기 오네요 어머니
아지랑이 어질어질 두척(斗尺)의 이마를 짚으며 
월영(月影)언덕 가득히 꽃불을 놓는 봄이 
텃밭 봄상치에 맺히는 청청 푸른 힘살처럼
푸른 합포(合浦)의 해안선을 따라 
연신 싱싱한 소금가마니를 풀고 가는 마산(馬山)의 봄이
내 혈관마다 요란한 꽹과리 소리를 울려
나는 신명에 잡혀 봄신명에 잡혀
이 세상 끝까지라도 죽음의 끝까지라도
단숨에 달려갈 수 있을 것 같아요 어머니
달려가 겨울을 이기고 봄 문안 나오는
마산(馬山)의 풀꽃이여 돌멩이들과 함께
뜨거운 어깨를 맞대고 박수를 치며
겨우내 묻어놓았던 더운 해방의 노래를
힘차게 힘차게 부르고 싶어요 어머니
보세요 어머니
인동(忍冬)의 빗장을 풀며 골목마다 거리마다 
꽹과리소리 북소리를 높이 올리며 몰려나오는
아아 저기 저 눈부신 봄을
마산(馬山)의 모든 봉수대들이 봉불을 놓아
마산(馬山)의 모든 산봉우리들이 봉불을 놓아
마산(馬山)의 모든 산봉우리들이 몰려오고 있어요
우리나라의 모든 산맥들이 굽이쳐오고 있어요
달려가고 싶어요 어머니
마산(馬山)의 봄 속으로 달려가
이 세상 가장 붉은 꽃 한송이로 피고 싶어요
육신 살라 불살라 훨훨 타오르고 싶어요

(정일근, 「김주열」 전문)


김주열의 이름을 제목으로 올려놓고 동시에 화자로 내세운 이 작품은 우선 시인의 의지로 내장된 비장한 언술이 돋보인다. 그의 이름과 그 참혹한 주검에 자신을 감정을 투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기 오네요 어머니/아지랑이 어질어질 두척(斗尺)의 이마를 짚으며/월영(月影)언덕 가득히 꽃불을 놓는 봄이/텃밭 봄상치에 맺히는 청청 푸른 힘살처럼/푸른 합포(合浦)의 해안선을 따라/연신 싱싱한 소금가마니를 풀고 가는 마산(馬山)의 봄이/내 혈관마다 요란한 꽹과리 소리를 울려/나는 신명에 잡혀 봄신명에 잡혀/이 세상 끝까지라도 죽음의 끝까지라도/단숨에 달려갈 수 있을 것 같아요 어머니” 실상은 피를 토하듯 울고 싶은 화자의 마음이 김주열이란 이름과 그 숭고한 주검으로 투사될 때의 풍경이 가슴 저리도록 눈부시다. 서경을 먼저 내세웠지만 시인의 서정이 그 서경을 압도하고 있는 이런 시편들의 힘은 시적여운마저 거부하듯 그저 “육신 살라 불살라 훨훨 타오르고 싶“을 만큼 “아아 저기 저 눈부신 봄”으로 형상화된다. 이 같은 마산의 봄은 우무석 시인의 작품에서도 전면화 된다. “마산의 봄은/바다 가운데서 떠오르”고 “바다 모서리 당기듯이/캄캄한 한 세상 끌어안”는다. 이처럼 “열일곱 숨 멎은 몸/가라앉다가 떠올라/시뻘건 먼동처럼/봄의 넋으로 떠오르”는 마산의 봄은 김주열의 이름이자 우리가 살아내는 그의 주검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오라, 마산의 봄이여”(정일근, 「마산의 봄」) “짓밟아도 짓밟아도 뿌리내리는/질경이 마음으로” 영원하라.
 

마산의 봄은
바다 가운데서 떠오르네

먹먹한 파도 소리
온 몸에 새겨 넣은
열일곱 숨 멎은 몸
가라앉다가 떠올라
시뻘건 먼동처럼
봄의 넋으로 떠오르네
떠올라
둥실 떠올라
바다 모서리 당기듯이
캄캄한 한 세상 끌어안으니
파릇한 봄빛 줄기
바람으로 내달리다
누리 가득 꽃 피어
눈부신 큰 봄을 만들었네

(우무석, 「마산의 봄」 전문)


오라, 마산의 봄이여
그리운 나라 상상봉마다
해방의 봉불을 피우는 뜨거운 가슴으로
월영동 산번지 번지마다
펄럭이는 흰빨래의 눈부심으로도 오라
3·15탑 언덕배기에 흐드러진 풀꽃들아
이리저리 뒹구는 마산의 돌멩이들아
오늘 너희들의 참이름을
온몸 온 사람으로 불러보고 싶구나
짓밟아도 짓밟아도 뿌리내리는
질경이 마음으로 마산의 마음으로
힘차게 불러 만나고 싶구나

(정일근, 「마산의 봄」 일부)


언제나 민주항쟁의 꽃샘바람은 마산에서 분다.
선혈을 뿌려 분연히
일어서던 빽빽하게 밀고가던 자리
그 삼월에 진달래꽃은 또 피는가.
아직도 묻어나는 선연한 핏빛으로
삼월에 진달래꽃은 붉게 타오르는가.

(김석규, 「그 삼월에 진달래꽃은 또 피는가」 일부)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말할 때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이름, 김주열. 그러나 그가 가졌던 삶의 실체는 아직도 유효한 걸까. 2003년 말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펴낸 책 『김주열』의 서문처럼 그의 이름을 아는 사람은 많았으나 정작 그를 아는 사람은 드물었던 건 아닐까. “언제나 민주항쟁의 꽃샘바람은 마산에서” 불고, “아직도 묻어나는 선연한 핏빛으로/삼월에 진달래꽃은 붉게 타오르는”데 말이다. 해서 우리는 다시 여기, 마산이다.

 
|왜 다시 김주열인가
|그렇다, 시대의 짐승들에게도 詩는 필요할 것이다


그 날은 콜럼비아 찻집에서 시화전을 여는 날이었다.
손수 만든 시화전 입간판을 둘러메고 신마산 부두쪽으로 혼자 걸어가고 있었다.
낮게 갈앉은 희뿌연 하늘과, 감기 기운이 도는 음산한 바닷가, 갈매기 두어마리
날고 있는 황량한 부둣가에 잠시 앉아 담배 한 대를 피워 물었다.
그 날 1960년 4월 11일 아침 11시 30분.......
너는 바다 속 깊은 곳에서 나를 향해 걸어 나오고 있었다.  물 위에 반쯤 떠 있는
너희 머리가 처음에는 바가지처럼 예사로 보였다.  1분, 3분, 10분..... . 그렇게 눈먼
시간이 내 무료를 찍어 누를 때 바다 너는 천근같은 음모를 감춘 파도자락을
가르며 한 발 또 한 발 부둣가로 다가왔다.
드디어 내 눈높이에 너의 주검이 닿아 왔을 때 나는 후딱 몸을 일으켜 세웠다.
얼굴 중심부에 큰 쇠붙이 덩이가 박힌 채 너의 눈은 아직도 부릅뜨고 있었고 너의
두 주먹은 불끈 쥐어 있었다.
(저건 분명 金朱烈이다. 온 나라 사람들이 마산땅을 다 뒤지며 찾던 주열이다)는
확신이 용수철처럼 내 몸을 공중에 튀겼다. 순간 나는 달렸다. 콜럼비아 다방을
향해 숨가쁘게 달렸다. 카운트 밑으로 전화기를 숨긴 채 馬山日報의 B기자에게 이
사실을 통보했다.
그리고 또 달렸다. 제일여고 뒷산으로 도망치듯 달렸다. 30분쯤 지나자 신마산
부둣가는 수천명의 성난 군중들로 꽉 메워졌다.
그날 밤 마산 3·15의거 제2차 민주시민항쟁의 의로운 횃불이 마산 하늘을 뒤덮었다.
저마다 뜨거운 가슴으로 민주의 깃발을 올린 마산의거는 마침내 4·19학생혁명의
도화선에 불을 당겼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90년 4월 11일 나는 혼자서 그 부둣가로 나가 보았다. 
여객선 뱃머리가 된 그 분노의 바다는 아직도 잠들지 못한 채 보채이고 있었다.
아직도 해명이 덜 된 金朱烈의 시퍼렇게 부릅뜬 두 눈이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마산의 정신, 마산의 민주는 지금 어디에 있느냐>고.
구암동 허름한 야산 3·15의거 영령 유택에서 金朱烈은 지금도 마산시민을 향해
전화를 걸고 있다.

(이광석, 「김주열 사설(金朱烈 辭設) 전문)


시인은 먼저 1960년 4월 11일 김주열의 주검이 떠오르고 성난 군중들로 꽉 메워졌던 신마산 부둣가의 상황을 구체적인 서사와 섬세한 언어로 포착해낸다. 그리고 동시에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후 같은 날의 부둣가에서 선 마산시민으로서의 안타까움과 분노를 김주열의 두 눈으로 담아낸다. 이때 시인은 당시 역사를 옮겨 적는 기록자가 된다. 그리고 그 역사에 죄의식을 가진 한 (마산)시민으로서의 그의 그림자는 아직도 생생하게 그려지는 액자 속 풍경의 일부분이 된다. 그 풍경속으로 뛰어든 모든 인간은 투명하게 존재한다. “<마산의 정신, 마산의 민주는 지금 어디에 있느냐>고./구암동 허름한 야산 3·15의거 영령 유택에서 지금도 金朱烈은 마산시민을 향해 전화를 걸고 있”고, 시인은 나아가 우리 모두는 온몸으로 그 전화를 받아야하기 때문이다.

김주열이란 이름은 과거에 속하지만 김주열을 담은 문학은 미래다. 미래의 독자 나아가 이 나라를 위해서도 필요하다. 이른바 ‘공유지의 문학’이다. 3·15 의거, 부마민주항쟁으로 대변되는 마산의 경우 이 ‘공유지의 문학’에 대한 담론은 더욱 절실하다. 굳이 문학사적 의미를 들먹일 필요조차 없을지 모른다. 거듭된 민주화운동을 통해 진보하는 듯하나 여전히 사회적 불평등과 부조리는 그대로인 현실은 우리는 부인할 수 없다. 심지어 권력을 가진 자들이 약자의 울분과 아픔을 모방해 오히려 힘없고 가난한 약자들의 저항공간인 ‘광장’마저 차지하기 위해 아직도 온갖 술수를 부리는 마당 아닌가. 해서, 과거를 통한 ‘미래의 출구’라는 것은 문학적 통찰과도 맥이 닿는다. 이 땅의 시인들 나아가 독자들의 선구적인 역할이 유효한 것은 이 때문이다. 사실 민주화 운동이라는 말이 이즈음 청소년들에게 선뜻 얼마나 가깝게 다가설 수 있을까. 마치 옛날 얘기처럼 들릴 수 있을 만큼 ‘화석화’되었다는 걸 우리는 과연 단오하게 부인할 수 있을까. 다시 김주열을 호명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여기에 있다. 어떤 시대를 떠나 개인의 삶과 고민을 구체적으로 드러내면서 그들 또한 쉽게 이해하고 가슴으로 껴안을 수 있는 공감대를 형성해야하는 과제를 안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다시 김주열』은 그냥 단순히 한 권의 시집이 아니라 민주화 운동이 화석화되지 않고 오늘날의 의미를 담아내는 것은 물론 ‘시대의 봄’이 되기를 바라는 기대와 염원이 담긴 미래역사의 공유지인 셈이다.


우리는 오늘 그대 곁으로 간다
너무도 싱싱하고 화창한 이른 봄날
일찍이 열사의 반열에 당당하게 올라있는
김주열 열사
그대가 태어나 자라고,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꽃망울도 터뜨리지 못하고 현대사에
한 획으로 기록된 그대가 잠든
남원시 금지면 옹정리 금정마을 우비산 기슭에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우리는 분명 그대를 떠나보내지 않았지만
힘있는 그 누군가에 의해 그대의 그 처참한 시신을
무엇이 급해 똥줄이 탔는지 누가 볼새라 누가 알새라
칠흑 같은 야음을 틈 타 국립요양소 소속
앰블런스에 짐짝 취급하듯 제대로 염도 하지 않은 채로 싣고간 후 얼마만인가
실로 삼십구 년 만에 우리는 그대 보러
남원으로 달려간다
지난날 돌이켜보건대
우리들은 숨죽이는 시간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말을 할 수도 그림을 그릴 수도 노래를 부를 수도
과연 이 말을 이 그림을 이 노래를
하여도 그려도 불러도 괜찮은지를
먼저 생각해야 하는 변명 아닌 변명으로 세월이 흘러 갔구나
부끄럽구나 민망하구나 죄송하구나
그대의 맑디맑은 혼과 용광로보다 뜨거운 불
그 거룩한 혼불은 우리가 사는
따뜻한 남쪽 고장에 두고
그대의 시신만이 안장된 곳으로
그리하여 죽음의 안개를 뚫고 살아있음의
순수함이여 순수함의 분노여
그대의 혼불은 그래서 제 이의 삼일오가 되고
사일구의 기폭제가 된 것을
오 민주주의여
우리는 오늘 그대 곁으로 간다
경상도와 전라도를 경계선으로 한
파랑재란 고개를 넘어 우리가 가지고 가는 것은
강대국이 갈라놓은 남북이 아니라
정치꾼들이 찢어놓은 동서가 아니라
정당성을 들라 하면
그대가 잠든 무덤 앞에 놓아드릴 선물 하나
옛날옛적 마한 진한 가락국부터
우리 어머니들이 직조한 삼베 한 필
동서남북을 상징하는 씨줄과 날줄
면면히 이어져 온 그 씨줄과 날줄로 직조된
삼베 한 필
받으소서 그리고 고이 잠드소서


(이선관, 「우리는 오늘 그대 곁으로 간다」 전문)


|절망을 딛고 일어서는 노래들


“낙화한 꽃잎이여” 그리하여 “목숨보다 존엄한 것을 받들기 위하여/죽음보다 가중한 것을 잊지 않기 위하여”(유치환, 「안공에 포탄을 꽂은 꽃 ―김주열(金朱烈)군의 주검에」) 우리는 절망을 극복하기 위해 다가올 희망을 노래하며 기대에 차 힘을 내보기도 하지만 최명학이 버티는 방식은 희망을 노래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절망을 응시하며 하염없는 슬픔을 노래한다. “그 날의 서슬 푸른 함성/이제는 땅 밑에나 숨어/기약없는 겨울잠으로/끝없이 울고만 있느냐/울음도 지극하면/언 땅을 뚫고 솟아/들끓는 물기둥 되련만/아아 울지도 못하고/허새비 허새비로/쓰러지는 가슴아/분노도 용기도 없이/희망도 의지도 없이/마른 짚북더기 가슴에/우수수 잎만 지누나”(최명학, 이 가을의 삼일오) 그의 서정에 따르면 우리가 세계가 기대할 수 있는 것은 더 이상 남지 않은 것 같다. 여린 자의식과 언술의 섬세함 때문일 것이다. 그는 시대의 아픔에 순박하고 세련되지 못한 삶을 묶어 서정을 취한다. 그는 힘없고 가난해서 내세울 것 없는 사람들의 편에 있지만 그들을 위해 싸워주는 투사가 아니라 그들과 같이 아파하는 것이 그의 일인 것처럼 느껴진다. 그의 이런 서정은 “혼란과 부패로/독재와 부정으로/피범벅 되어 떠내려가던 우리나라 민주주의를/자신의 주검에 매달아 묶어서/견고한 민주화의 고리봉이 되었다”(우무석, 「하용웅 선생님의 말씀 ―김주열을 기억함」)는 투사적 메시지를 담은 시적의지와는 또 다른 측면에서 인간적인 이해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갈 수 없구나 청산가리 극약
품에 품지 않고서는
프로펠러 달린 최루탄
눈에 꽂지 않고서는

오늘도 어제도 내일도
김주열(金朱烈)이 헤엄치는
저기 저
바다

(이제하, 「다시 바다」 일부)
 

삼월과 사월 사이
마산 바다는 너무 잠잠하다.
마산 바다는 너무 잠잠하다
무학산을 오르다
혹은,
어시장을 지나다
문득문득 다가서는 바다
죽은 듯 누워있는 저 섬
늘 고여서 썩는다.
어디 싱싱히 살아오르는
눈빛 하나 없이
자유수출을 빙자한 폐수며
더 기다려야 한다는 보수주의며
사과탄이며
눈물이며
김주열이며
함성이며
고여서 안온하게 썩어가는 바다
삼월과 사월 사이
마산 바다는 너무 잠잠하다.
                                                 
(성선경, 「마산바다는 너무 잠잠하다」 전문)


마산의 봄과 함께 김주열의 주검이 떠오른 바다에 대한 시적형상화도 제각기 다른 시인의 세계관만큼이나 암울하면서 다채로운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작가 이제하가 마산 바다를 “청산가리 극약/품에 품지 않고서는/프로펠러 달린 최루탄/눈에 꽂지 않고서는” “갈 수 없”는 바다, “오늘도 어제도 내일도/김주열(金朱烈)이 헤엄치는/저기 저/바다”라고 비장하게 말할 때 성선경은 마산을 살아가는 시인으로서 품은 서정보다 먼저 침묵보다 깊어진 서경을 전면화 시킨다. 어떤 다짐이나 단편적인 반성이 아닌 공감의 차원에서 우리 모두를 끌어안고 싶은 시적전략 때문일 것이다. 이때 공감은 짧지만 섬세한 언어들로부터 만들어진다. “너무 잠잠하다”는 말에서 보듯 성선경 시인은 이 시집에 실린 여타 시편들과는 달리 다소 냉소적 감수성을 보이는 것으로 비칠 수도 있다. 하지만 시인은 그저 막막한 현실에 반추된 허무적인 냉소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자유수출을 빙자한 폐수며/더 기다려야 한다는 보수주의며/사과탄이며/눈물이며/김주열이며/함성이며/고여서 안온하게 썩어가는 바다/삼월과 사월 사이”의 “마산 바다”를 통해 이렇듯 피폐해지고 암울한 현실을 잠잠해진 ‘절망의 힘’으로 극복하자고 설득하는 것이다. 시대가 바뀌어도 반복되는 폭력적 일상에 저항해 “어디 싱싱히 살아오르는/눈빛 하나”를 갈구하며 우리가 본래 소유했던 마산의 봄을 되찾고 싶은 간절함을 담아낸 것이다. 이 같은 간절함은 세계관이나 언술방식이 전혀 다른 시편에도 찾을 수 있다. “정말 세상 많이 변했네요/무섭게 변했네요/4월혁명 횃불 김주열도/차면 넘어지고 밀면 떨어지네요/근데 이건 알아야 해요/당신들이 추락시킨 김주열에겐 날개가 있다는 것을/한쪽 날개는 역사의 진실이요/다른 한 쪽 날개는 민주의 혼이지요”(김영만, 「추락하는 김주열은 날개가 있다」 일부) 2007년 4월 9일~11일까지 2박 3일 동안 5000여명의 시민과 학생이 남원 김주열 생가에서 마산 3.15민주묘지까지 186Km를 민주횃불을 들고 186구간으로 나누어 이어달리기를 한 행사 후의 기록이기도 한 이 시편은 “차면 넘어지고 밀면 떨어지”지만 그로 인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깨우친다. 그러니까 추락하는 힘, 그 힘으로 우리는 달리고 추락하는 날개를 통해 “역사의 진실”과 “민주의 혼”을 다시 간절하게 그려내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한 목소리로 말할 수 있다. “김주열은/의거다!/항쟁이다!/혁명이다!”(김영만, 「다시 김주열」)고, “누가 주열이의 죽음을 말하는가/우리가 누리는 이 광명과 자유가/주열이가 나누어준 것을 아는 사람이라면/주열이의 죽음을 말하지 말라/주열이는 살아 있다”(복효근, 「누가 주열이가 죽었다고 말하는가」)고 외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또 다시


차라리 휘날리는 네 치맛자락 피묻은 깃발로 펄럭이거라
4월이여 너 아니었다면 여기에 무슨 진리 무슨 꽃이 피겠느냐
꽃이여 총칼 없이도 무지막지 돈 없어도 오 빈 주먹 혁명의 문화여
4월이여 4월의 싸움과 죽음이여 승리여 허공속의 크나큰 고통이여
오늘이거라 돌아오라 20년 전의 청춘 오늘이거라 돌아오라
싸워서 원수와 하나로 죽어간 형제들이여 젊은 짐승이여 풀들이여
그대들이 꼭 쥐고 죽었던 그 굳은 손안에 든 힘 이제 어디 있느냐
두 눈 부릅뜨고 소리 지르며 달려가던 그 번개칼의 힘 어디 있느냐
이 세상 제일의 일 위해 역사의 힘이여 민중의 힘이여 돌아오라
4월이여 하늘을 상대로 대지를 상대로 싸우는 병사여 노래의 자식들이여
4월이여 역사의 날 피로 노래하는 예술이여 붉은 노을의 에미애비여
오 모든 진리는 끝네 피의 진리 피로서 펄펄 살아서 뛰노는 진리 거라
4월이여 오 4월의 꿈이여 그 낮의 대낮인 진리여

(고은, 「돌아오라 영령이여 새로운 영령이여」 일부)


위의 시편에 놓인 언어는 이른바 민중을 지향하는 시의 대부분이 그렇듯이 자신의 시간, 자신의 내면에만 갇혀 있길 거부하고 언제 어디서든 시를 읽는 타자에게로 힘차게 가지를 뻗고 있다. 개인의 사소한 일상보다 공동체의 선을 중시하고 미래지향적인 시에서의 언어에는 이처럼 깊은 사유에 덧댄 팽팽한 힘이 있다. 이런 성취는 시에 대해, 한 시대의 궤적을 시적 언어와 상상력에 대해 웬만큼 첨예하고 혹독하게 자신을 몰아넣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이때 발현되는 시의 형식은 투사적이지만 삶의 의미는 철저히 인간적이다. 시인이기 전에 한 인간으로서 그러니까 피가 끓는 몸을 가진 존재로서 구체적 현실을 살아가는 인간이라는 자각을 불러오고 과거를 벗어나 새로운 희망 상상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문학의 역할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2차 세계대전 직후 프랑스 드골정부가 했던 나치협력자에 대한 처벌은 지금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했다. 그 당시 프랑스에서 존경받던 작가 ‘프랑수와 모리악’은 '관용론'을 내세워 그만 용서하고 화합하자고 호소했다. 그러나 '이방인(1942년)'이란 소설로 한국독자들에게도 유명한 알베르 카뮈는 당시 '꽁바(Combat) 신문'에 다음과 같은 글을 기고했다. “어제의 범죄를 벌하지 않는 것은 내일의 범죄에 용기를 주는 것과 똑같이 어리석은 짓이다. 프랑스공화국은 관용으로 건설되지 않는다. 우리는 마지막 순간까지 인간의 정의를 좌절시키려는 자비를 거절할 것이다.” 우리는 과연 가톨릭 신자인 모리악의 관용론과 까뮈의 정의론 중 어디에 동의할 수 있을까. 프랑스는 까뮈의 주장처럼 철저히 나치 협력자들을 처단했다.
우리는 어땠는가? 과거 친일 세력들은 물론, 과거 군사독재나 5.18 학살 책임자들도 제대로 단죄하지 못했다. 그 결과 당시 가해자들은 반성은커녕 오히려 자신들의 행위를 합리화하며 끊임없이 거짓과 왜곡으로 광주와 5.18 피해자들을 폄훼하고 있다. 카뮈의 말처럼 우리는 어제의 범죄를 제대로 벌하지 않고 자비를 베푼 결과, 정의가 좌절되는 현실을 목도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니까 이 한 권의 시집이 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혁시킬 순 없겠지만, 우리 사회나 인간이 과거의 역사에 대해 어떻게 바라보고 대응해야 하는지에 대한 최소한의 질문을 던질 수는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 의미는 깊다.
물론 오늘날의 문학이 혹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그렇게 큰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일까? 하는 의구심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인터넷과 과학기술의 발전 속에서 문학은 그저 이 시대의 주변화한 조연에 지나지 않는 것도 엄연한 현실이다. 올봄 몰려온 신종 바이러스 코로나19라는 재난 앞에서도 우리는 문학의 무력과 무능을 실감하게 된다. 어느 중국작가의 말처럼 문학은 마스크가 되어 역병지역으로 보내질 수도 없고 진정으로 의료를 위한 방호복이 되지도 못한다. 음식이 필요할 때, 문학은 빵과 우유가 되지도 못하고 채소가 필요할 때, 무나 배추, 시금치가 되지도 못한다. 심지어 사람들이 두려움과 초조함 속에 떨고 있을 때, 한 알의 신경안정제마저 되어주지 못한다. 그러나 1940년부터 5년 동안 한 수용소에서 400만 명 민간인의 생명을 앗아간 악마의 현장, 폴란드의 아우슈비츠를 떠올리면 상황이 크게 달라진다. “아우슈비츠 이후에도 시를 쓰는 것은 야만이다.” 시인 ‘테오도르 아도르노’는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언제 닥칠지 모르는 죽음의 참혹한 수용소에서도 시를 쓴 사람이 있었다. 시인 ‘이작 카체넬존’은 아비규환의 참상을 시로 기록했다. 마침내 카체넬존이 가스실로 끌려가 한 줌의 재로 변했을 때 감방 동료들은 그의 시들을 유리병 속에 넣어 땅에 묻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아우슈비츠가 진주한 소련군에 의해 해방되고 유리병 속의 시들은 살아남은 유대인들에 의해 세상에 공개됐다. 이미 널리 알려진 이런 이야기들은 시를 쓸 수 있을 때는 시를 써야 한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 아닌가. 이때의 시는 시가 아니라 다른 목소리이자 일종의 전달이며 ‘살아있음’이다. 해서, 우리는 말할 수 있다. 시대의 아픔을 끌어안는 게 문학의 힘이다.

1960년 마산의 봄처럼 “눈도 귀도 없던 저 괴물”(유치환)들의 부정선거와 무자비하게 총을 앞세운 폭정, 이른바 인위적인 재난 앞에서 다른 목소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재난이 아니겠는가. 김주열의 죽음보다 그의 주검을 보지 못하고 총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이 훨씬 더 잔혹하고 부조리한 일일 것이다. 심지어 분명히 죽음을 보고 총소리를 듣고도 그 총성을 권력자들을 위한 폭죽소리라고 말한다면 이는 전쟁이나 역병의 재난보다 더 부조리하고 무서운 일일 것이다. 우리 문학사를 뒤돌아보면 종종 총소리를 폭죽소리로 변질시킨 시인이나 작가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이런 시각에서 말하자면 60년 전 김주열이 주검으로 떠올랐던 그 시대 나아가 오늘날의 상황을 담아낸 이 시집은 시인들과 작가들에게 무엇을 쓸 것인가 하는 질의를 던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지난 역사와 오늘의 현실 속에서 너무 많은 부조리와 폭력과 죽음을 목도했고 그리고 이를 망각한 뒤에 다시 발생하는 일련의 사태들을 직접 경험하고 아프게 목도했다.


겨레의 통일로 가는 유구한 항전의 마산은
투쟁하는 역사를 일구어 온 대중의 땅이다
투쟁의 땅은, 셀 수 없는 민간인을 살육하고 반민특위를 학살하고
남과 북이 하나되는 통일의 길을 국가보안법으로 죽이고
이 나라 민주주의를 살해한 이승만을 무너뜨린 땅이다
자주 민주 통일로 가는 길에서
동횃불 꺼뜨리지 않고 이어져 끝없이 출렁이는 땅이다

(김성대, 「김주열 열사가 되살아난 땅, 마산이여」 일부)


프랑스의 작가이자 비평가였던 모리스 블랑쇼(1097~2003)는 “오늘날 문학의 문제는 경험 자체의 구성뿐만 아니라 그 역동성까지 포함한 모든 것들에 대한 재검토가 이뤄질 수 있는 근원적 체험으로부터 시작한다”고 말했다. 이는 문학 창작의 본질적인 조건이 단순한 감각경험을 넘어 지적성찰을 통한 시대의 총체적인 경험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시는 무허가다. 우리의 인생 또한 그렇지 않은가. “허가받을 수 없는 인생//그런 내 삶처럼/내 시도 영영 무허가였으면 좋겠다/누구나 들어와 살 수 있는/이 세상 전체가/무허가였으면 좋겠다”(송경동, 「무허가」 중에서)고 아프게 말한 송경동의 시처럼, 문학은 살아가는 일의 알 수 없는 심연을 거느린다. 그리하여 2020년,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시(詩)는 무용하거나 쓸모없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더욱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다시 김주열을 호명한 시편들을 읽다 보면 60년 전의 과거가 아니라 60년 후 600년 후의 미래를 위해 시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만 같은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진심을 다해 이 시들을 써내려가며 그들은 자신의 말 나아가 시대의 말을 증명하고 있기도 한 것이다. “남원의 아들이면서 마산의 아들, 한반도의 아들아/한 어머니의 아들이면서 칠천만의 가슴속에서/섬진강 매화로도 피어나고/지리산 진달래로도 피어나고/언제나 현재형이면서 미래형으로/살아 있는 아들아”(복효근, 「다시 너를 부른다」) 그렇다. 『다시 김주열』이다. 3·15 의거 60주년을 맞아 뜻깊게 펴낸 한 권의 시집만으로도 우리는 왜 우리에게 시가 필요한지, 아프지만 아름답다는 것은 언제 어디서 쓰는 말인지를 확인하고 확신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마산이 얼마나 자랑스러운 땅인지를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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