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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찾은 '백마 탄 여장군' 친족... "그동안 숨기고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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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희망연대 댓글 0건 조회 573회 작성일 19-08-28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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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계열 독립운동가 김명시 장군 친족 기자간담회 "서훈 추서해달라"


19.08.21 16:17l최종 업데이트 19.08.21 16:32l
윤성효(cjnews)


 
"그동안 공개적으로 밝히기가 어려웠다. 한때 해외 나갈 때 제약을 받았던 적이 있다."
 "공기업에 취직하려고 했을 때 친인척 중에 남로당 계열이 있다고 해서 되지 않았다."
 
 '백마 탄 여장군' 김명시(金命時, 1907-1949년) 장군의 친족들이 처음으로 밝힌 말이다. 21일 창원마산 오동동문화광장에 모인 김명시 장군의 친척들은 그동안 함부로 드러내지 않았던 '역사'를 털어 놓았다. 이곳은 김명시 선생의 생가가 있었던 자리다.

열린사회희망연대가 지난해 말부터 "사람을 찾습니다. '백마 탄 여장군' 김명시 장군의 형제자매 후손(친족)을 찾습니다"라며 신문광고를 냈다. 이 단체는 지난 2월부터 친척들의 제보를 받아 확인과정을 거쳐, 이날 '김명시 장군 친족 기자간담회'를 마련한 것이다.

     
김명시 장군의 형제들은 일제강점기 때 '사회주의 독립운동'을 벌였다. 5형제 가운데 오빠 김형선(金炯善, 1904~1950), 남동생 김형윤(金炯潤, 1910~?) 선생이 함께 독립운동에 나섰던 것이다.

 
 김명시 장군은 여성의 몸으로 중국 일대에서 항일무장투쟁에 앞장서고 하얼빈의 기차역과 경찰서, 일본영사관을 습격했다. 마산공립보통학교를 나온 김명시 선생은 조선의용군으로 항일무장투쟁에 앞장섰고 '백마 탄 여장군'이라 불리었다.

김명시 장군은 "정말 여성으로서는 초인적인 의지와 기개", "불굴의 독립투쟁을 펼쳐나간 당대 최고의 여투사", "여성임에도 직접 조선의용군의 선봉에서 항일무장투쟁을 용감하게 이끌었던 여장부"라는 평을 들었다.

김명시 장군은 1925년 오빠가 가입해 있던 '고려공산청년회'에 들어가 활동하였고, 그 뒤 모스크바 동방노력자공산대학 유학생으로 가서 공부하다 1927년에 상해로 파견되었다. 이후 중국 일대에서 항일무장투쟁에 앞장섰으며 하얼빈 기차역과 경찰서, 일본영사관을 습격했던 것이다.

1932년 신의주에서 일본경찰에 체포된 김명시 장군은 징역 7년을 살고 1939년 신의주형무소에서 만기 출소했다. 이후 만주로 건너가 조선의용군 여자부대 지휘관으로서 항일무장투쟁에 나섰다.

1917년 마산공립보통학교를 나온 오빠는 마산과 중국에서 독립운동했고, 1932년 4월 반일 격문을 인쇄하여 배포했다가 이듬해 7월 영등포에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1934년 12월 치안 유지법 및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8년을 선고받았다.

김형선은 1946년 2월 민주주의 민족전선 결성에 참가하고 중앙 위원으로 선출되었고, 그해 11월 남조선 노동당 결성대회에 참석하여 의장단의 한사람으로 선출되었으며, 그해 12월 남로당 중앙감찰위원회 부위원장이 되었다.

남동생 김형윤은 1930년대 부산과 진해에서 '적색노조운동'을 이끌었고 비밀결사교원회(마산적색교원회) 사건 등으로 징역 2년 6월을 받았다.

친족찾기 결과, 외사촌-친사촌 등 찾아
 
열린사회희망연대는 사회주의계열 독립운동을 벌였던 김명시 장군의 친척들이 참석한 가운데 21일 창원마산 오동동문화광장에서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김명시 장군의 친족찾기 결과 형제와 자매 및 그의 후손들이 나타난 것이다. 김명시 장군의 언니 후손들은 현재 경기도 이천에 거주하고 있는 게 확인되었고, 여동생의 후손들은 경북 상주에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영만 열린사회희망연대 고문은 "김명시 장군의 언니와 여동생의 후손들한테 연락을 해봤다. 다들 김명시 장군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는 반응이었고, 연락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했다"며 "이는 가족과 친척의 아픔뿐만 아니라 민족의 아픔이다"고 했다.

김명시 장군의 오빠(김형선)는 독신으로 자손이 없었고, 남동생(김형윤)은 2남1녀를 두고 있었으며, 이들은 1950년 6‧25 직전 서울로 이전한 뒤 생사 확인이 되지 않고 있다.

이날 기자간담회에는 김명시 장군의 외사촌과 친가 쪽 친척 20여 명이 참여했다. 친사촌 김형도(91)씨는 "어릴 때 명시 누나를 몇 번 봤던 기억이 있다. 해방 이후 마산에 왔을 때 몇 번 보았다"고 했다.

그는 "제가 젊었을 때 공기업에 취직을 하려고 했더니 되지 않았다. 나중에 알아보니 집안이 남로당 계열이라서 그랬다는 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김명시 장군의 오촌조카인 김향임(73)씨는 "이런 시간을 갖게 해주어 고맙다.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명시 고모 이야기를 자주 했다. 사촌 집안이 독립운동 하다 감옥소에도 갔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그는 "후손들은 한때 해외에 나갈 때도 제약을 받았다"는 말도 덧붙였다.

김명시 장군의 외사촌 김재두(88)씨는 "해방 전후 누님을 몇 번 봤다. 큰형님(김형선)을 본 적은 없고, 누님은 작은형님(김형윤)과 몇 번 마산 양덕동에 살던 집에 왔던 기억이 난다. 오면 식사를 했고, 자지는 않고 갔다"고 했다.

외사촌 김필두(81)씨는 김명시 장군을 기록한 책 <조선의 딸 총을 들다>와 <한국의 근대사>를 들어 보이며 "명시 누님의 삼형제가 다 독립운동을 했다. 1975년 텔레비전에서 드라마를 하는 걸 봤는데 분명히 '백마탄 여장군 김명시'에 관한 이야기도 다루었다"고 했다.

1949년 부천경찰서 체포... 고문에 타살 의혹도 제기
 
김명시 장군은 1949년 부천경찰서에서 사망했다. 당시 경찰은 자살이라고 했지만, 이날 친척들은 '타살' 의혹도 제기했다.

외사촌 김재두씨는 "남로당 계열 활동을 하다 경찰에 체포되었다. 당시 경찰은 누님(김명시)이 왜정시대 때 독립운동을 했는데 귀국한 뒤 경찰에 체포되어 비관해서 입고 있던 치마끈으로 목을 매 자살했다고 했다"며 "그러나 타살 의혹도 제기되었다"고 했다.

김형도씨는 "1949년 10월 10일로 기억한다. 경찰은 치마 끈으로 목을 매 자살했다고 했지만, 당시 경찰에 고문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며 "성격을 보았을 때 자살할 분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김영만 고문은 "경찰에 체포되어 남로당 활동하던 사람들의 밝힐 수 없다는 생각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했지만, 타살 의혹도 제기되었다"고 했다.

"김명시 장군 형제의 독립운동 서훈 되어야"

김영만 고문은 "김명시 장군의 형제들은 사회주의 독립운동을 했다. 그들이 독립운동을 했을 때는 나라가 남북으로 갈라질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며 "사회주의계열의 독립운동가들은 중국에서 총을 들고 일본군과 전쟁을 하며 치열하게 싸웠다"고 했다.

그는 "선조의 독립운동을 후대들이 모른다면 사람의 도리가 아니다. 국가보훈처는 사회주의계열의 독립운동가들에 대해 서훈을 하지 않고 있다"며 "국민 여론이 뒷받침 되면 가능도 할 것이라 본다"고 했다.

열린사회희망연대는 지난 1월 국가보훈처에 김명시 장군의 서훈을 추서해 달라고 신청했다.

김영만 고문은 "김명시 장군의 친가와 외가 모두 피해를 입었다. 김명시 장군의 무덤이 어디에 있는지 조차 모른다"고 했다.

김 고문은 "김명시 장군 형제들이 독립운동가로 서훈을 받게 되고, 기념사업도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김명시 장군의 친족들은 이날 생가 터를 찾아 함께 사진을 찍기도 했다. 열린사회희망연대는 친족들한테 꽃다발을 '선물'하기도 했다.

한편 이날 김형선, 김명시, 김형윤 형제의 젊었을 때 모습이 담긴 사진이 처음으로 공개되었다. 이 사진은 외사촌 김필두씨가 갖고 있던 것이다.

김영만 고문은 "젊었을 때 모습의 사진으로, 사회주의계열 독립운동가의 사진이 별로 없는데 매우 소중하다"고 했다.
 
열린사회희망연대는 사회주의계열 독립운동을 벌였던 김명시 장군의 친척들이 참석한 가운데 21일 창원마산 오동동문화광장에서 기자간담회를 가졌고, 김영만 고문이 김명시 장군과 남동생 김형윤 선생의 젊었을 때 모습이 담긴 사진을 공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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