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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김명시 장군, 이번에 서훈 받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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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희망연대 댓글 0건 조회 23회 작성일 19-08-28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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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사회희망연대, 김명시 장군 '서훈신청서' 제출 ... 흉상 건립 등 요구 계속


19.01.09 14:44l최종 업데이트 19.01.09 14:44l

윤성효(cjnews)







 
 
정부는 '항일독립운동의 여장군'으로 활약한 공적이 뚜렷한 김명시(金命時, 1907~1949) 장군에 대한 독립유공자 포상을 할까.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을 한 그녀에게 독립유공자 포상을 해달라는 신청이 있어 관심을 끈다.

열린사회희망연대는 1월 9일 오전, 창원마산 정부경남지방종합청사 내 경남동부보훈지청에 김명시 장군의 '독립유공자 포상신청서'를 제출했다. 포상신청은 이순일 공동대표의 명의로 되어 있다.

마산 출생인 김명시 장군은 '백마탄 여장군' 내지 '스베츠로바', '김희원(金喜元)', '김휘성(金輝星)', '김휘연(金輝然)'으로 불리기도 했다.

 
 
 열린사회희망연대는 김명시 장군에 대해 "1925년 19세에 모스크바 공산대학에 입학, 재학 중 상하이로 파견되어 동방피압박민족반제자동맹을 조직, 1930년 동만폭동 때 하일빈 일본영사관 습격, 1932년 국내에서 활동하다 신의주에서 일경에 체포, 7년간 수감되었다"고 밝혔다.

이어 "1939년 중국으로 건너가 항일전쟁의 최전선인 화북지역에서 일본군과 총을 들고 싸우며, 1945년 해방때까지 항일독립전쟁의 여장군으로 활동한 공적이 뚜렷하다"고 덧붙였다.

이 단체가 밝힌 주요 경력을 보면, 김명시 장군은 1924년 3월 마산공립보통학교 졸업, 1925년 서울 배화공립고등학교 중퇴, 1925년 10월~1927년 6월 모스크바 동방노력자공산대학 중퇴, 1928년 6월 중국 상하이 동방피압박민족반제자동맹 조직과 의원으로 활동이라고 되어 있다.

또 1929년 10월 중국 재만조선인반일본제국주의대동맹 조직, 1930년 5월 중국 하얼빈 시내 기차역과 경찰서 공격, 1931년 9월 중국 상해한인반제동맹 조직, 1932년 5월 신의주 백마강역에서 일경에 피체, 1939년 신의주형무소를 7년 만기 출옥했다.

김명시 장군은 1939년 중국으로 탈출하여 조선의용군 화북지대원으로 텐진, 베이징 등 일본 점령 지구에서 항일투쟁을 전개하고, 이때 '여장군' 내지 '백마 탄 여장군'으로 불렸다.

그리고 그녀는 1945년 12월 귀국하여 조선부녀총동맹 선전부 위원으로 선출되었고, 1949년 10월 10일 부평경찰서에서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당시 내무부 장관은 그녀의 죽음에 대해 '자살'이라 발표했다.

"이 사람을 아십니까" 광고까지 냈지만

 열린사회희망연대는 지난해 말부터 김명시 장군의 후손(가족)과 묘소를 찾고자 했지만 찾지 못했다. 이 단체는 신문에 "이 사람을 아십니까"라는 제목으로 광고까지 냈다.

이 단체는 "비운의 여장군 김명시", "학살 당한 평등주의자들", "여장군, 또는 혁명의 화신"이라는 제목의 관련 자료를 모아 함께 국가보훈처에 제출했다.

열린사회희망연대는 지난해 12월 창원시에 애국지사 명도석(1885~1954) 선생과 함께 김명시 장군의 '흉상(동상)'을 마산오동동 문화광장 부근에 세울 것을 요청했다.

이 단체는 3·1독립항쟁 100주년을 앞두고 "창원에는 시인들을 기념하는 시비나 기념비는 곳곳에 세워져 있지만, 일제강점기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독립운동가들의 흉상이나 동상은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가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 단체는 "오동동 문화광장 귀퉁이에 쓰임새를 찾지 못한 자투리땅이 있고, 그 공간 주위에 태어나고 활동하신 독립운동가의 흉상이나 동상을 세우자"고 주장했다.

김명시 장군에 대해, 이 단체는 "대다수 시민들에게는 생소한 분이다. 그 이유는 사회주의계열의 독립운동을 한 탓이다"며 "오직 조국의 광복과 민족을 위해 일제와 목숨을 걸고 싸웠지만 이데올로기로 인해 우리의 기억과 역사 속에서 잊히고 감춰진 김명시 장군 같은 분들도 이제는 합당한 재평가를 통해 명예회복이 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앞으로 김명시 장군의 독립운동 공적이 인정되어 반드시 서훈이 추서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창원시 "흉상 건립 안된다"... 희망연대 "의지 있나"

이에 대해, 최근 창원시는 '과장 전결'의 회신문을 통해 "김명시 장군은 독립운동가로 활동한 행적은 확인할 수 있지만, 국가보훈처에 독립유공자로 등록되어 있지 않으므로 국가보훈처에 '신청에 따른 포상' 절차를 거쳐, 독립유공자 선정이 우선되어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고 전했다.

창원시는 "현재 창원시에는 국가보훈처에서 공훈을 인정한 독립유공자 106분이 있으며, 현재까지 동상을 건립한 분은 없다"며 "독립운동의 공훈 정도를 가려 선별적으로 흉상을 건립하는 것은 애로가 있고, 건립하고자 하면 주민공청회 등 지역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을 거쳐 건립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된다"고 밝혔다.

창원시의 답변에 대해, 열린사회희망연대 김영만 고문은 "서훈을 받지 않아도 흉상을 만들고 기념사업을 하는 지역이 많다. 대표적으로 김원봉 장군이 있고, 정률성 선생이 있다. 중국 해방군행진곡과 북한 조선인민해방군가를 지은 정률성 선생은 광주에 가면 흉상이 있고 거리 이름도 있다"며 "서훈과 상관 없이 자기 고향에서 자랑스러우면 하면 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또 김 고문은 "서훈을 받은 독립운동가가 106명이나 있는데. 아직 흉상 건립을 한 명도 하지 못했다는 것은 굉장히 부끄러운 것"이라며 "그렇다면 다음에 서훈을 받았다고 해도 흉상을 세우지 않은 독립운동가가 106명이나 있기에, 김명시 장군도 서훈을 받았다고 해서 된다고 (흉상 건립을) 보장받을 수 없다는 뜻이 된다. 그렇게 할 게 아니고, 지금이라도 시민 요구가 있으면 한 분씩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영만 고문은 "공청회를 하게 되면 말썽만 빚게 된다. 한 마디로 말해 할 의지가 없다는 것이 된다"고 말했다.

그는 "사회주의계열을 독립운동을 한 조봉암 선생의 부인인 김조이 여사는 2008년 건국포장, 박헌영 선생의 부인인 주세죽 여사는 201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각각 받았다"며 "김명시 장군의 서훈이 되지 않았던 것은 고향에 있는 후대들이 노력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서훈과 함께 흉상 건립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영만 고문은 "이번에 김명시 장군의 서훈신청서에 보면 빈 칸이 많다. 이는 호적등본을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내용이 있었기 때문이다. 현재 다른 사람은 호적등본을 뗄 수 없다"며 "창원시에서 적극적인 관심을 보였더라면 호적등본을 뗄 수 있었을 것인데, 그렇게 되지 않아 아쉽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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