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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마탄 여장군' 김명시, 독립유공자 포상 재심 신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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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희망연대 댓글 0건 조회 516회 작성일 19-11-19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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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사회희망연대가 국가보훈처에 '백마탄 여장군' 김명시(金命時, 1907~1949) 독립운동가에 대한 독립유공자 포상 신청을 다시 하기로 했다.

지난 15일 국가보훈처는 김명시 독립운동가에 대해 "사망 경위 등 광복 후 행적 불분명"을 이유로 포상할 수 없다고 통지했다.

열린사회희망연대는 올해 1월 이순일 회원 명의로 국가보훈처에 김명시 장군의 포상신청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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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명시 장군은 창원마산 동성동 출신으로 일제강점기 중국 화북지역에서 조선독립동맹 조선의용군의 여성부대를 이끌고 일본군과 직접 전투를 벌려 '조선의 잔다르크' '백마탄 여장군'으로 칭송받아 왔다.

국가보훈처의 김명시 장군에 대한 '독립유공자 공적심사 결과 안내'에 대해, 열린사회희망연대는 18일 낸 입장문을 통해 "실망을 금할 수 없다"고 했다.

열린사회희망연대는 "해방 후 조선독립동맹 주요 간부들은 개인 자격으로 입국하여 평양에서 활동했다"며 "조선의용군 총사령 무정과 박일우, 허정숙 등은 조선공산당에 가입했고, 조선독립동맹 주석 김두봉과 부주석 최창익, 한빈 등은 1946년 2월 기존 조직을 조선신민당으로 개편했다. 조선신민당 당수가 된 김두봉은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의 부위원장이 되는 등 북한 정부 수립에 참여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들과는 달리 김명시는 오빠 김형선과 박헌영, 홍남표 등 화요계가 활동하고 있는 서울로 왔고, 사회주의 입장을 견지한 것은 사실이지만 '백마 탄 여장군'으로 언론의 칭송과 주목을 받는 동시에 항일 여전사의 긍지를 갖고 통일정부 수립을 위해 활동하였다"고 덧붙였다.

김명시 장군의 해방 이후 활동과 관련해, 열린사회희망연대는 "김명시의 해방이후 활동은 당시 신문기사나 관련서적 등의 자료가 있다. 1945년 12월부터 1947년 10월까지 활동은 매우 활발했으나 이후의 행적이 묘연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러다 1949년 10월 11일 도하 일간지 2면 한 귀퉁이에서 실린 작은 기사로 그의 마지막 소식을 전하게 된다. <자유신문> <동아일보> <경향신문>등은 <북로당 간부 김명시, 부평서 유치장서 목매 자살>이란 제목으로 그의 최후를 간략히 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또 "<경향신문> 10월 14일자에는 김효석(金孝錫) 내무장관이 '지난 10일 오전 5시 40분경 자기의 상의를 찢어서 유치장 내에 있는 약 3척 높이 되는 수도관에 목을 매고 죽었다'고 발표해 그의 자살을 재차 확인해 주고 있다"며 "이때 그의 나이 42세였다. 물론 경찰에 의한 고문치사인지 자살인지 사인을 확인할 수 있는 다른 자료가 없다"고 이 단체는 설명했다.

그리고 열린사회희망연대는 "1948년 8월 한국정부 수립 이후 이승만 정권은 좌익 숙청작업에 온힘을 쏟았고, 이에 반발해 좌익은 제주 4‧3사건, 여순사건 등으로 대응하였다. 남한 사회 곳곳에서 이데올로기로 인해 유혈사태가 벌어지던 야만과 광기가 지배하는 시대였다"며 "이 무렵부터 약 2년간 김명시의 행적은 현재까지 알려진 것이 전혀 없는 것으로 보아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일단 활동을 중단하고 잠적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어 "그러나 김명시의 2년간 공백기간의 행적을 찾아내는 것은 민간단체의 노력은 한계가 있고, 정부기관인 보훈처에서 이에 대한 자료발굴을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그런 의지가 있었는지는 이 공적심사 결과 안내문만으로는 알 수가 없다"고 덧붙였다.

또 이 단체는 "1949년 10월 10일 김명시 사망 당시 경찰은 김명시의 직책을 '북로당 중앙위원' 이라고 발표했는데 그것은 경찰의 추정하는 혐의인지 아니면 사실인지 알 수가 없다"고 했다.

 "북에서 김명시를 과연 어떻게 판단하고 있을까?"라고 한 이 단체는 "북에서는 북한정부 수립에 공훈이 인정된 사람들을 모시는 국립묘지가 있다"고 했다.

이어 "그곳은 이미 남에서도 잘 알려진 신미리 애국열사릉이다"며 "그 능의 입구에 세워진 대형동판에 다음과 같은 글이 새겨져 있다. '조국의 해방과 사회주의 건설, 나라의 통일 위업을 위하여 투쟁하다가 희생된 애국열사들의 위훈은 조국청사에 길이 빛날 것이다'"며 "1989년 애국열사릉에 안치된 224위 명단에는 남쪽에서 활동하다 생을 마감한 활동가들이 여럿 있다. 그러나 김명시는 없다"고 했다.

열린사회희망연대는 "그렇다면 북로당 중앙위원이라는 직책이 사실이라 해도 그것만으로 북한이 판단할 때 북한정권 수립에 기여했다고 안정해 줄 만한 사유가 되지 못한다는 이야기다"며 "따라서 우리는 국가보훈처에 재심사 요청을 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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